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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초식동물과 닮아서 - 초보 비건의 식탁 위 생태계 일지 ㅣ 삐(BB) 시리즈
키미앤일이 지음 / 니들북 / 2021년 6월
평점 :
욕구와 열정이 모자란 덕분인지 식습관을 바꾸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익숙한 육식 재료의 혼합식보다 공들인 채식 음식들이 더 입에 맞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식습관을 바꾸고 싶어도 이전에 맛있게 먹던 너무 먹고 싶어 포기하지 못하는, 육식으로 힘들어 하는 이들의 심정을 사실 나는 잘 모를 지도 모른다. 마치 수학이나 물리에 대해 누가 물어도 왜 그 부분이 그토록 어려운지 몰라 잘 가르쳐 줄 수 없는 것처럼.
“인간에게 필요한 모든 에너지원은 식물에서 얻을 수 있도록 태초에 누군가가 만들어 놓았다는 생각. 인간에게 꼭 맞는 에너지는 육식으로부터 공급받는 것이 아니라 식물에서 시작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분명 잘못된 채식은 영양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 그러나 정확히 이야기하면 채식이든 육식이든 영양불균형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20년도 더 전의 일이지만 당시의 자료로도 육식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거나 선호하지 않을 이유는 내게는 충분했다. 이타적이고 환경적이고 철학적이고 고상한 이유를 다 두고라도 사육환경이 충격적이었다. 도무지 식재료로서의 ‘고기들’을 신뢰하기가 힘들었고 일단 사진이든 영상이든 자료를 보고 나면 그 이전으로 돌아가 잊어버리고 사는 일이 불가능했다.
철학자 피타고라스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이 동물을 학살하는 한 서로를 죽일 것이다.”
대문호 톨스토이는 또 이렇게 말했다.
“도살장이 존재하는 한 전쟁터도 존재할 것이다.”
이 말이 어떤 의미를 품고 있는지 이젠 완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무엇을 먹는지 말아라, 그러면 나는 그대가 누군지 말해보겠다.” (...)
나는 그동안 뭘 먹은 건가.
적어도 내가 먹는 것이 어디에서부터 왔는지 알고는 먹어야 하는 것 아닌가. (...)
어쩐지 속이 메스꺼워지는 것만 같다.
당시엔 대학원생이었고 주변의 친구나 지인들은 뭐든 충분히 존중하는 이들이어서 별 다른 어려움을 실감하지 못했다. 유학을 가서는 더욱 더 채식하기 편한 환경이었고 초보 채식주의자인 나는 눈에 띄지도 않을 정도로 다양한 채식/완전채식하는 이들이 많고도 많았다. 채식 메뉴도 쉽게 찾아 먹을 수 있었고 정말 맛있었으니 불만도 어려움도 몰랐던 세월이었다.
그렇게 학교와 학계와 친구와 지인들이라는 안전한 울타리를 벗어나 취직하고 귀국을 하니 2010년에 가까운 시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것’이 매일 어려웠다. 더구나 거대 조직사회에서 과중 업무와 야근과 출장이 일상인 일이라 섭식을 선택할 수 있는 창은 점점 더 좁아졌다. 그제야 한 식당 건너 하나씩 고기집인 현실이 보이기 시작했고 거의 모든 반찬에 설탕과 (육식재료가 포함된)조미료가 들어갈 가능성이 높은 한식의 정체(?)도 입맛으로 경험하게 되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인 ‘일반적인 것’을 선택하는 건 본능에 가까운 행동이다.
일반적이지 않은 것에는 반드시 차별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것이 무엇이건 간에,
다만 어떤 것들은 너무 미비하여 차별이라고 인지하지 못할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다르면 차별받는다는 것을.
다시 10년이 더 지나 현재, 체력약화에 비례하는 느슨함과 적당주의로 나는 베지테리언이나 비건보다는 플렉시테리언에 더 가까운 섭식 생활을 한다. 물론 할 수 있는 한 채식 메뉴를 선택하려 하지만 원칙 고수와 저항의 강도가 더 높아질 수 없을 것도 같다. 그러니 종종 다른 채식주의자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찾아 읽게 된다. 상상과는 달리 그들이 사는 모습이 우울하고 심각하고 고통스럽지 않고 유쾌하고 즐거워서 참 좋다.
이 책은 귀여운 일러스트는 물론 솔직하고 명쾌하고 따뜻한 이야기들이 아주 멋지고 감동적인 책이다. 뭔가 인간적인 것들이 결여된 내 경험과는 달리 이분들은 비건으로 사는 삶의 어떤 부분들이 정말 힘든지 잘 적어 주셨다. 공감의 토대를 마련해 주어 좋아하실 독자들이 많을 것 같다.
“우리 영혼에 깊숙하게 새겨진 음식에 대한 이해와 맛의 정의, 영양소에 대한 상식, 이 기본 값으로부터 벗어나는 음식이나 식단은 어색할 수밖에 없다.”
“변명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나로서는 채식을 방해하는 최대의 적이 향수다. 그렇게 시킨 통닭을 한 입 베어 물고 나면 곧장 후회가 밀려온다.”
보송보송하고 포근포근한 분위기의 글이 전해주는 분위기에 해탈을 경험하게 해주는 날카로운 논거의 깨달음이 없어도 심정적으로 동조하고 싶어진다.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배우는 것들이 참 많다. 아내와 내가 서로 사랑하며 배운 감정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채식에 닿았다. 그리고 채식은 동물과 이 땅을 사랑하라고 우리에게 말했다.”
“흙길이 이토록 푹신푹신한지, (...) 하늘에 별이 이렇게 많은지, 밤이 이토록 어두운지, 모든 것을 녹일 것같이 무더운 여름조차 밤이 되면 얼마나 시원한지, 자연과 가까이 지내면서 알게 됐다.”
사랑스럽고 무해한 이들의 목소리로 전달되는 ‘생명체들 중에 우위에 있는 것들이 있을까요’, ‘이웃을 사랑하고 동물도 지구도 사랑해야하지 않을까요’, 이런 질문에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 싶다. 동시에 외식이 힘들고, 버터 냄새가 참기 힘들고, 금연도 힘들다는 얘기들에 토닥토닥하는 격려의 말을 전하고 싶다.
여러 번 얘기하지만 뭐가 되었든 사람들이 죄책감을 느껴서 불편함을 감수하고 힘들여 뭘 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유는 많지만 무엇보다도 그런 식으로는 꾸준히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무리하지 말고 조금만 다르게 살짝만 바꾸며 살아보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어떤 저자는 아침식단만 바꿔도 지구를 구한다는 행복한 낙관을 열정적으로 펼치기도 했다 - 정말 그럼 좋겠다!
대신이라기엔 뭣 하지만 부디 내가 하지 못하는 좀 더 큰 변화나 노력을 하는 이들을 미워하지도 않으면 좋겠다. 상대를 모욕하고 부정하고 올라서려는 곳이 어디인지 잠시만 찬찬히 생각해보면 누구라도 잘 볼 수 있는 열띤 감정을 흥분시키는 대신 가라앉히시길! 그렇게 바꾸며 바뀌며 다 같이 즐겁게 오래 안심하고 사는 것이 오래되고 지친 나의 꿈이다.
다정한 책을 읽고 레시피까지 발견했다. 오늘 늦은 저녁은 이것으로! 메이플 시럽은 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