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소크라테스 헬스클럽 - 나는 운동한다 고로 존재한다
현상필 지음 / 을유문화사 / 2021년 6월
평점 :
아주 간단하게 짐작했던 바로는 고대 도시 국가들 간의 전쟁이 빈번했으니 승리를 위해 전사들을 양성하는 것이 생존과 번영의 기본일 거라 생각했다. 제 1순위가 정해지면 그 밖의 모든 사회문화도 개념을 공유하기 마련이다.
“그리스의 중무장 보병은 다른 어떤 나라의 병사들보다 육체적 본능을 더 잘 억제했고, 전쟁터에서의 무서움을 통제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군사 훈련과 더불어 체력 단련이 중요했다.”
따라서 건강한 남성의 육체가 찬미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고 실제로 고대 그리스 조각들의 남성상들은 거의 나체이다. 르네상스 이전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발달된 골격과 근육을 아주 사실적이고 역동적으로 표현하였다.
그래서 이 재미난 제목의 책 역시 그런 내용에 집중한 것인가 했는데, 간단 정보의 차원을 훌쩍 넘어 고대 그리스 철학과 역사를 탐구하고 있다. 물론 그에 더해 문학, 심리학, 과학 등 다른 분야의 지식도 데려와서 신체 단련에 관해 후회 없이(?) 사색할 수 있도록 가이드 한다.
육체를 상품으로 사용하고 가꾸는 직업이 따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는 직군에 관계없이 외모에 대한 기준과 차별과 제약이 극대화된 사회이다. 오래 전이긴 하지만 한 때는 모든 인구를 다리 길이로 분류하고 재밌어 하던 아찔한 시절도 있었다.
어떤 시대 어떤 용도이든 - 생존, 수입, 건강 등등 - ‘운동이 개인의 성품, 인격, 삶의 태도, 철학을 단련하는 수단이자 공동체를 형성하는 활동으로 바라보는’ 이 책이 전해 줄 이야기는 흥미로울 것이다. 정재승(뇌과학자)의 추천사는 이 책을 한층 더 신비롭게(?) 만든다.
“이 책이 그리스 철학과 그리스 신화 사이에 꽂혀 있을 때, 당신의 책장 속 ‘그리스 코너’는 비로소 완성될 것이다.”
‘희랍철학’이란 과목명으로 수업을 듣던 젊은 날에는 내려오지 못하는 회전목마에 탄 것처럼 멀미가 났지만 나이가 드니 후대에 태어난 장점과 오만함을 좀 내려놓고 이해하게 된 내용들이 늘었다.
그리스 신화는 황당한 장면들이 많아 애착을 가지기 어려웠지만 어벤져스 시리즈 재밌게 봤잖아! 하고 용기를(?) 내어 오디오북을 오며가며 들었더니 재미나게 잘 들렸다. 어원학을 좋아해서 새롭게 배우고 알던 것을 확인하는 재미도 컸다.
이제 무려 고대 그리스인들이 운동하고 산 이야기를 만났다. 공영종합운동연습장과 같은 체육시설-김나시온(그리스어: Γυμνάσιον, Gymnasion)과 레슬링 학교 또는 연습장이었던 체육관- 팔라이스트라(그리스어: παλαίστρα, Palaestra)도 있었다. 이 곳들은 운동만을 위한 곳이라기보단 운동을 마치고 난 이후 대화를 나누고 토론을 하는 활동을 포함한 중요한 사교 클럽이기도 했다. 이 두 곳을 특히 자주 찾아와 대화하기를 즐긴 인물이 소크라테스이다.
기록상으로 그는 적어도 세 차례 군사 원정에 참가한 강인하고 뛰어난 군인이었다고 한다. 신체 능력도 탁월해서 식량 보급이 어려울 때는 배고픔도 잘 견디고 참전한 동료가 부상을 입고 쓰러지자 적을 막아내고 생명을 구했다고 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철학자의 이미지와는 완전히 다른 삶이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몸을 성실히 단련한 것만이 아니라 몸을 돌보지 않은 사람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는 당시 그리스 도시국가가 처한 상황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건강하지 않은 자유민은 잦은 전쟁에서 죽거나 노예가 될 수 있고 이는 곧 자유로운 인간으로서 삶을 영위할 수 없는 비참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오직 체육과 의술만이 몸의 덕을 위해 무엇이 좋고 나쁜지를 아는 기술이며, 그 외의 기술들은 자유민답지 않다고 여겼다. 나아가 입법이 사법보다, 체육이 의술보다 더 훌륭하다는 그의 견해는 우리의 상식과도 부합한다.”
플라톤 역시 기원전 그리스에서 열린 레슬링 경기에서 두 번이나 우승하였다. 플라톤이란 이름 자체가 그리스어로 ‘넓다’라는 뜻인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 누구나 다 인정할 만큼 독보적으로 어깨가 넓었나보다. 문장 표현이 풍부(플라티테스)했다거나, 이마가 넓었기(플라티우스)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고 한다.
무척 유용한 공식을 가르쳐준 수학자로 알려진 피타고라스는 사모스 섬 출신의 권투 시합 우승자였다. 놀랍게도 훈련 방법은 우리가 권투를 떠올릴 때 익숙한 방법들과 거의 유사하다. 권투란 기원전에 이미 완성된 스포츠였나 보다.
“가죽띠 대신에 둥근 모양의 것들을 감아 묶는데, 이는 (...) 충분히 단련을 받도록 하기 위해서죠. (...) 우리는 생명 없는 모상을 걸어 놓고서도 이를 상대로 훈련을 하려 들지 않겠습니까? 또한 더 나아가서 (...) 연습 상대로 없이 우리 자신들을 상대로 그야말로 섀도복싱을 하려 들지 않겠습니까?”
일부러 시간을 내어 하는 운동을 꾸준히 못하게 된지 오래라 시공간의 제약 없이 생각날 때 바로 할 수 있는 운동만 한다. 나이가 들수록 근육은 생존 자체를 위해 필요불가결하고 늘 아쉬운 것은 체력이다.
세어볼 것도 없이 빈약한 운동량이지만 어쨌든 108배, 맨 몸 스쿼트. 계단 오르기는 매일 하고 있고 계속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별 즐거움이 없다는 것이 단점이지만 이젠 계단 오를 때 숨을 헐떡이지 않는 것만도 가끔은 기쁘다.
운동은 그 순간만큼은 명상과 유사한 몰입을 가능하게 해주고, 크지 않더라도 확실한 변화를 느끼게 해주며 작은 성공과 성취감도 제공해준다. 우승과 수상의 기쁨은 없지만 일상의 다른 분투에 힘을 더해주는 몸으로만 사는 시간은 무척 중요하다.
갑상선암 수술을 한 친구가 정기검진을 받으러 갔는데, 종양수치는 괜찮고 “혈액검사결과 콜레스테롤, 칼슘, 000, 000, 000 수치가 너무 훌륭하네요!”란 이야기를 들었다 한다. 친구는 몇 달 간 지속한 달리기의 효과라 믿는다. 덕분에 나도 달리기란 무엇인가 새삼 생각했다.
“우리가 행복하지 않은 건 달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과장일까?"
“운동선수를 통해, 우리는 죄가 없다고 해서 신성하다고 부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질병이 없다고 해서 건강하다고 부를 수는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설명하는 건 본질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발자취가 인생의 행보를 의미하듯, 달리기는 삶의 은유다. 하루하루 내가 달린 거리의 총합은 나라는 존재를 증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