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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질문 - 내 안의 두려움을 마주하는 인생의 지혜를 찾아서
다큐멘터리 〈Noble Asks〉 제작팀 외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1년 5월
평점 :
부처님 오신 날, 짧은 공부(?) 단상을 기록한 뒤 아쉬움이 남았다. 일 년에 하루나 이틀이라도 불교철학 강의를 듣거나 책모임을 하면 좋을 텐데. 부담도 없이 지속할 수 있는 일을 한 번도 생각을 못 했다 싶기도 했다. 맞춤한 강의를 찾기는 쉽지 않아서 - 불경 본격 강의는 부담이... - 지인들과 책을 한 권 읽기로 했다.
외부인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경험한 한국불교의 모습이라 불교계 내부에서 눈치 보여 우물쭈물하는 이야기들도 적을 듯하고 그 시선에 비친 사찰들의 풍경도 궁금하고 순정파(?)답게 오로지 법정 스님만 읽은 내게 다른 학승들의 이야기를 두루 접할 좋은 기회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명확하게 구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게 깨달음이죠. (...) 요즘 사람들은 너무 많이 알아요. (...) 쓸데없이 아는 건 많은데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지금 어떤 상태인지는 잘 모르고 살아가죠. (...) 내가 모르고 있다는 걸 모르는 것, 그게 가장 큰 병입니다.” 성파
그리고 데니스 노블은 영국 유학 시절 내 지도 교수님들 중 한 분과 친분이 있었던 반가운 분이기도 하다. 오픈 대학을 제안해서 설립하고 생물학과 생태학자로서 활동하시던 지도교수는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유명했던 리처드 도킨스와 논쟁적 대척에 서 있는 분이었다. 두 분의 맹렬한 논쟁 시간, 심지어 생물학을 전공하지도 않은 나는 난간한 기분으로 버티다 만류하는 동기들을 뒤로 하고 무례하게 자리를 떠난 적도 있다. 연구 논의를 비판할 능력은 못되지만 데니스 노블이 이기적 유전자 이론을 정면 반박함으로써 논쟁이 잠잠해진 일은 개인적으로 안심이 되는 감사한 일이었다.
“유전자라는 건 좋고 나쁜 어떤 이분법적인 존재가 아니고 이기적인 존재는 더더욱 아닙니다. 따라서 인간이라는 존재 역시 그렇습니다. 시스템 생물학의 관점으로 접근하면 그런 사실들을 쉽게 깨닫게 됩니다. 대부분의 경우 자연은 경쟁이 아니라 협동 속에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우리의 유전자는 이기적이지 않다> 데니스 노블
과학철학계의 대석학이 한국의 불교 사찰을 방문하러 오실 줄 몰라서 더욱 반갑고 기쁘게 읽었다. 깊고 넓은 철학에 온전히 담기진 못하고 이해가 가는 필요한 문장들과 단상들만 옮겨 본다.
“고통의 본질을 깨닫고 제대로 대처하는 법을 배우면 쓸데없는 고통의 연쇄에 매이는 일을 피할 수 있다.”
: 본질을 깨닫지 못하고도 어쨌든 ‘연쇄’에 매이는 일을 없애고 싶어 관련 내용에 집중해 보았다. 지나고 나면 쓸데없는 일에 소모된 모든 것이 새로운 고통으로 남는다. 그 또한 괴롭다.
“어떤 사람을 대하든지 내가 원하는 그 사람의 모습을 딱 정해두지 마세요.”
:안 그런다 하면서 반복하는 버릇. 이해하고 기억하는 인물정보라 착각하는 듯하다.
“‘지금 이 순간,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 즉각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는 건, 제대로 모르고 있다는 뜻입니다.”
: 매 순간 바뀌어도 문제이고 안 바뀌어도 문제란 생각이 드는 건 또 다른 미몽인가 싶다. 언제나 ‘가장’이 붙는 질문에는 대답을 못했다. 그 또한 쓸데없는 생각이 많아서 그런 듯.
“지금 여기, 이미 완전한 나의 존재를 알고 온전하게 살라는 말입니다. (...) 인간은 본래 완전한 존재다. 인간이 곧 부처다, 라는 말은 그런 뜻입니다.”
: 그렇게 알고 살고 싶지만 최대 보상액 500만원 보험을 들고 할 일 다 했다고 생각하는 기업 현장에서 매일 사람들이 사고사를 당하는 현실에서는 나의 존엄성을 생각으로도 온전하게 지켜나가기가 힘이 든다. 매일의 현실이 인간이란 사실 무가치한 노동력이라고 보여주는 현실에서는. 무섭고 슬프다. 전 국민의 90%가 불교 신자라는 미얀마의 상황은 더 끔찍하다. 이 와중에 한국가스공사는 미얀마 군부와 투자 사업을 가속하고 있다.
“탁한 마음을 씻어내고 초심으로 돌아가면, 지금 이 순간을 생생하게 볼 줄 아는 지혜가 생깁니다. 우리 본래의 마음으로 돌아가려면 마음을 푹 쉬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수행이지요.”
: 일종의 작은 깨달음이 느껴지는 감사한 구절이다. 수행이란 없던 능력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가려진 본성을 드러내는 일. 뭘 열심히 해서 쌓아가고 높여가는 일이 아니라는 것. 반대로 덕지덕지한 것들을 벗겨내고 버리는 일. ‘마음을 푹 쉬는 일이 수행.’ 울컥했다.
“나 아닌 다른 것을 다루는 기술도 역시 빼어나죠. (...) 온갖 최첨단 기계들을 잘 다루잖아요. 그런데 정작 자기 자신을 다루는 실력은 별로예요.”
: 매뉴얼이 없어서 그렇다고 하면 혼날까, 하는 그런 생각을 잠시 했다. 제품이야 사양이 똑같지만 인간은 모두 다르니 아무도 방법을 가르쳐 줄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니 결국 스스로 열심히 자신을 보고 배우고 깨닫는 수밖에. 그러니 어려울 수밖에.
“우리는 늘 일상이 아닌 다른 어딘가로 떠나 지혜를 구한다. 이 책을 펼친 것도 그러한 여정의 하나일 것이다. 그렇다면 방황이 끝나고 돌아갈 곳은 어디일까. (...)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거창하게 보일지 몰라도 실은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문제다. 특히 아무도 보지 않는 자기만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가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 지적은 받아들이지만 그래도 나는 어쨌든 당분간 - 어쩌면 오래 - 매일 일상을 떠나 책을 펼칠 것이다. 때로는 지혜를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도피라는 것을 알지만 그렇게 한다. 그런 시간이 지나면 하루를 마무리하고 다시 하루를 살아갈 - 방법은 확실하게 몰라도 - 심신으로 리셋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시간을 보내는 나는 누구인가…….
“진정한 삶의 변화는 (...) 바로 지금 내가 발 딛고 선 자리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 5월 마지막 주라니, 6월 일정이 벌써 채워지고 있으니…… 나는 아무 때나 울고 싶기도 하다. 짐작해보는 미래와의 거리가 멀수록 더 슬퍼진다. 5월을 잘 살았네~란 안도감과 보람은 느껴지지 않는다. 잘 해치우며 살았단 생각이 드는데도 감정은 요지부동이다. 이럴 때를 잘 넘기는 방법은 서글프게도 그냥 할 일을 하는 것이다. 아주 조금 더 부지런을 부려서 귀찮아서 마지막까지 미루자 했던 일을 처리하면 조금 더 힘이 붙는다. 이런 방법이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아서 다행이고 이런 식으로 사는 나에게, ‘너는 누구인가 혹은 무엇인가’하는 낯선 느낌이 붙기도 한다.
“인생에서 좋은 때라는 건 따로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을 온전하게 살아내는 것이 바로 가장 좋은 때이자 좋은 삶입니다.”
: 살면서 지금 참고 노력하고 포기하면 나중에 좋은 때가 온다고 사기 쳤던 어른들. 처음엔 미웠는데 세월이 지나니 그 때 그 어른들도 이런 말을 들으며 살았고 어른이 되어서도 스스로에게 이런 말을 들려주며 살았을 거란 생각을 하니 정말 슬프고 안타까웠다. 지금이라도 누구라도 참 좋은 삶의 순간들을 만나고 계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