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떠났고 다시 만났다
하상인 지음 / 지식과감성#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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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소설 장르로 분류되어 있다장편을 좋아하는 나로선 짧은 느낌의 작품이다소설에 자전적 이야기를 어느 정도로 두냐는 것은 작가의 결정이기도 하고 글 자체가 끌어내는 인력에 비례하는 분량이기도 할 것이다그런 면에서 이 소설은 주인공과 작가가 자주 겹치는 자전적 에세이처럼도 읽히는 소설이다.

 

“‘작가라고 불리고 싶어 글에서 발을 완전히 담그지도 빼지도 않은 어정쩡한 자세로 살아왔다어정쩡한 인간은 항상 결단력이 부족하고 책임지지 않는 태로도 삶을 일관하기에 방금처럼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도 돌려 말하거나 제대로 답을 듣지도 못하고 끝나기 마련이다뜨겁지도차갑지도 않은 미온적인 삶을 살면서영원히 자신을 성공할 가능성있는 상태에만 놓고 최선을 다해 어려움에 맞설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이다.”

 

작가라는 단어만 바꾸면 여느 직업에도 모두 그럴 듯하게 대입할 수 있다그냥 직업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라 사는 태도 전반을 아우를 수도 있을 듯하다.

 

판데믹 시절 친구의 표현을 빌자면 너무하다 싶을 만큼의 책읽기로 지내는 일이 익숙해졌다책을 펴지 않는 날이 기억에 남을 정도이다지난 주 지루한 느낌 없이 몰입해서 영화 한 편을 보고 정말 오랜만에 즐겁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책읽기가 즐겁지 않다는 말이 아니라 거의 유일한’ 무언가를 가진다는 것이 해소보다는 긴장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그날의 탈선(?)은 행복한 휴식이었다.

 

어쨌든 책과 지내는 날이 많아지니 작가들과도 가까워지고작품 이외의 방식으로 소통하는 것에 큰 관심이 없어 여전히 생경하고 때론 어색하기도 하다한편으로는 책소비자나 독자에 한정된 입장으로부터 창작자의 말과 글을 듣고 읽고 대화를 나누며 직업으로서의 창작 활동에 대해 생각해 보는 기회를 만난 것은 마음에 드는 세계의 확장이다마침 5월의 북클럽 책은 제목 자체가 소설이고 당연히 소설에 관한 많은 이야기이다.

 

예전엔 나이가 들어도 하고 싶은 거 눈치 보지 말고 하면서 지내면 된다고 생각했었는데악상 나이가 드니까 그렇게 못하는 나 자신이 보이더라고. (...) 게다가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게 아니기도 했었고. (...) 나이 때문이라고 했지만 결국 오늘처럼 시간을 보낼 수도 있는 거였는데 선택하지 않은 건 결국 나였거든.”

 

줄거리를 굳이 상세하지 않아도 작가가 되고 싶은 이들이 견뎌야 하는 많은 것들은 익히 아시리라 믿는다등단까지도 지난하지만 등단 후에도 순탄치만은 않다그저께인가 좋아하는 작가에게 초판 1,000부가 팔리면 통장에 100만원이 들어온다고 작가의 기부나 후원 소식을 들으면 형편을 짐작해서 마음이 아릿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배운 대로 살지 못하는 이로서 변명의 여지는 없으나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는 내 전공으로 지원할 데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연구소나 재단을 스스로 만들지 않는 당시 어느 대학과 기업에서도 배운 바를 활용할 가능성은 전무 했다다른 말로 하자면 돈이 되는 않은 공부를 오래 한 셈이다그제야 유럽 떠돌이 생활이 싫어졌단 다소 낭만적인 이유로 지나치게 여유롭게 귀국했다는 실감이 들었다.

 

여전히 돈으로 잘 환산되지 않은 공부나 일을 고집스럽게 치열하게 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빈부격차와 불평등이 극심하고 노동가치가 쓰레기 취급 받는 한국에서 여전히 그런 꿈과 노력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고 신비로움이다그런 의미로 인간은 참 강인한 존재이기도 하다타협과 설득과 다른 선택이 불가능한그런 이유로 어찌 되었든 짧은 유일한 삶을자신만의 시간을 그려나가는 존재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와 심정이 이해 불가한 것이 아니라 애틋한 마음으로 그래도 여전히 응원하고 싶다지난주의 어지러운 일상을 격하게 마무리하고 푹 쉰다는 기분이 들기도 전에 한 주의 시작을 맞는 아까운 일요일 아침, 맞춤한 분량과 메시지가 담긴 글을 잘 읽었다


다들 다시 힘을 내시라


계속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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