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은퇴 형사 동철수의 영광
최혁곤 지음 / 시공사 / 2021년 4월
평점 :
현실감이 팍 드는 그럴 듯한 설정에 본격 내용을 읽기 전 웃음이 났다. 미제사건은 그 자체로 마음이 한없이 무거워지는데, 이 책의 미수반은 다행히(?) ‘미심쩍은 사건 조사반’이다.
특채로 경찰이 된 전직 기자, 정치적 출세 야망이 있는 경찰청장 앞길을 닦아 주기 위한 변방부서, 사무실은 경찰청 옥탑방. 다른 두 명의 팀원은 은퇴한 반장과 형사로서의 의욕이 전무한 맛집 탐방에 집중하는 경위. 경찰청장 앞길을 닦기 위한 배려라고 보기도 너무 신경 안 쓴 구성이 아닌가 싶었다. 곧 오해로 밝혀짐!
“인문학적 소양이 깊지 못하나 얕고 넓게 아는 잡학 박사다. 동네방네 간섭이 심하고 엉뚱한 질문으로 주위를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다. 눈치 9단에 능청 연기의 달인이시다. 의전에 예민하셔서 잘 삐친다. 커피 애호가이고 반려견과 반려묘를 사랑한다. 그리고 노래방 흥에 능하시다.”
근무태도 역시 범상치 않다. 여가생활처럼 여유만만한 총책이자 주인공인 동철수는 오래 전 형사 콜롬보도 문득 생각나게 하는 캐릭터인데 정말 뜬금없는 방식으로 사건 해결의 실마리들을 마구 제공한다. 그 능력을 잘 알고 채용한 것인지 우연인지 헷갈린다. 뭐가 되었든 사건 해결이 제일 중요하지!
<사건 1> 가왕의 이름은 하필. 현실 가왕이 떠오르면서 그의 삶과 죽음의 면면을 알고 나면 반전 내용과 이름에 무릎을 탁! 칠 작명이다. 이권과 유언과 죽음이 어우러진 사건.
<사건 2> 유명 유투버의 이름은 탁해서. 방송 수익금이 떨어지는 형편. 노천탕. 서재책상. 고향집, 해혼식. 사건 전반에 걸쳐 뭔가 찜찜하고 탁한 느낌이 느껴진다. 탁하다 탁해.
<사건 3> 유명 냉면집 <행복면옥> 백사장. 라이벌 가게 <효자면옥>. 사업실패한 아들. 의문의 심야 손님. 돈을 받아야할 사채업자. 자금사정으로 그만 둔 주방장. 유산과 보험금. 결말은 짐작보다 더 슬펐다. 더한 일이 현실이 있을 것 같아 상상 속에서도 무척이나 안타까웠다. 이렇게 살고 이렇게 죽고.
<사건 4> 연예 기획사, 뮤지컬 배우. 악명 높은 인터넷 사이트 운영자. 악플. 음독자살. 살해. 인물들간의 긴장도가 가장 높을 듯했던 이야기는 사연 역시 그러했다. 오래전 시작된 사건으로 말미암은 이어지는 복수들.
<사건 5> 학원이사장 집에서 벌어진 인질 사건. 총격전. 범인과 경찰 사망. 또다른 경찰 상해. 당시 사망한 경찰이 미수반 팀원 주혜순 경위의 남편이다. 재수사가 재개되며 20년 전 사건의 의혹과 비밀과 진실이 드러난다.
어느 동네인지 궁금해지는 지극히 현실적이라 오히려 더 잊지 못할 경고의 의미가 큰 작품일 수도 있다. 돈벌이를 위한 자극적인 개인 방송, 연예계의 무자비한 경쟁 체계, 젠트리피케이션의 비극, 더 이상 타협이 불가능한 정도의 강제와 개별성, 늘 문제인 정경유착과 사학재벌 등등.
이야기 속 사건피해자들이 대부분 노년층이라는 점에 불편하고 아팠다. 현실의 약자들이 된 노년층의 모습이 자꾸만 겹치기 때문이다. 가난과 사기와 폭행. 노년층들이 경험하는 2021년의 불안과 공포는 어떤 모습일지. 기분이 한없이 가라앉으려 했다. 급작스러운 관심이 아니라 오랜 시간 진지하게 관심을 둔 저자의 시선과 마음이 느껴져서 뭉클하고도 서글프다.
즐겁게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시간을 기대한 미스터리스릴러 작품에서 함께 살지만 잘 보이지 않는 분들의 처지가 어떤지 차분하게 생각할 기회를 만났다.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