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 - 수면과 꿈의 과학
매슈 워커 지음, 이한음 옮김 / 사람의집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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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과의 우여곡절 동거가 짧지 않으니 제목이 맞춤한 이 책을 뒤늦게나마 읽어 본다이 책을 읽어서 잠을 더 잘 수 있을 지는 확신이 없었다진료 역사도 늘어나다보니 문제점도 도움이 될 방법도 알만큼 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그러니 문제점도 겁이 날 정도로 잘 안다.

 

어쨌든 양질의 수면은 고사하고 수면 시간 자체가 줄어든 반갑지 않은 상황바꾸고 싶으면 뭐라도 할 밖에저자 매슈 워커Matthew Walker는 20년에 걸친 수면 연구를 한 세계적인 신경 과학자이자 수면 전문가이다신뢰하고 읽을 수 있다어쩌면 원하던 대로 살아가는 방식이 일부 바뀔 지도 모른다단순히 겁을 주는 내용들이 아니라 연구 결과들을 풍부하게 들려 줄 것이다.

 

지난주에 충분히 잤다고 생각하는지?”

 

첫 진료에서 담당의가 했던 질문과 아주 유사하다진료실 안으로 순간 이동한 기분이다.

 

수면부족으로 인한 여러 증상들 중에 심박이 빨라지고 혈압이 높아지는 증상은 아직이다고혈압보다 더 위험할 수도 있다는 저혈압저체온 증상자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유독 겁이 덜컥 나는 증상은 혈관 조직의 손상이다전조 증상으로 알 방법도 미리 검진을 할 방법도 마땅치 않으며 예방법 역시 기대는 높이 가질 수 있지만 효과가 어떤지 측정할 방법이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익숙하면서도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망원인심근경색증어떻게든 숙면을 취하자는 생각이 번뜩 드는 타격이다.

 

현대성의 특징 중 정확히 무엇이 그토록 본능적인 수면 패턴을 교란하고잠잘 자유를 빼앗고밤에 푹 자는 능력을 앗아가는 것일까?”

 

잠을 잘 잔다고 하는 지인들이 별로 없다잠을 좋아한다고 하는 이들은 더 없는 듯하다그보다는 자는 시간이 아깝다고 하는 푸념을 더 많이 들은 듯하고 그럴 때 우리는 아주 높은 확률로 커피를 마시며 얘기를 나누었을 것이다.

 

지구환경문제를 염려한다면 커피를 당장이라고 그만 마셔야 하는데나는 그 생각을 할 때마다 절망적인 기분이 든다육식섭취 중단새 옷을 안 사는 것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친환경식재료 구매화학세제사용중단텀블러와 장바구니 등등 일상에서 실천하는 많은 것들이 모두 괜찮지만 탈커피는 정말 자신이 없다가장 오래 갈등할 고민이다.

 

나 역시 나만의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했고 그 시간이 더 가치 있다 느꼈고 잠을 희생하는 것 역시 할 만하다 생각하고 산 시간이 길다사회가 가진 잠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에 동조했다기보다 내 지인들 말처럼 짧은 인생시간이 아쉬웠다그런데 이 책을 읽다 보니 매일의 시간을 아까워하며 잠을 줄이느라 어쩌면 나는 수명의 상당 부분을 리스크로 삼았을 수도 있다는 엄청난 깨달음이 든다.

 

잠을 소홀히 한다면당신은 매일 밤 자기 자신을 유전 공학적으로 조작하기로 결심하는 것과 같다.”

 

주요 정신질환 중에서 수면이 정상인 사례는 전혀 없다우울증불안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조현병양극성 장애(조울증)가 다 그렇다.”

 

수면은 면역계의 병기고에 있는 온갖 무기들을 써서 몸을 감쌈으로써 감염과 질병에 맞서 싸운다우리가 앓을 때면역계는 수면 체계를 적극적으로 자극한다전투력을 강화하는데 도움이 되도록더 오래 누워 있으라고 요구한다단 하룻밤이라도 수면 시간이 줄면눈에 보이지 않는 면역 복원력이라는 갑옷이 몸에서 너덜너덜 벗겨져 나간다.”

 

대략 요약해보자면세계 보건 기구는 수면 부족을 선진국 전체의 유행병으로 선언했다고 한다수면이 부족할 때 몸에서 일어나는 증상들로는면역계 손상암에 걸릴 위험성 두 배 증가알츠하이머와 당뇨의 전조 증상이라 할 수 있는 변화가 몸속에서 일어난다심혈관 질환뇌졸중울혈성 심장 기능 상실이 일어난다우울불안자살을 비롯한 주요 정신 질환 증상들이 심해진다수면의 시간이 짧아지면 수명도 짧아진다저자는 수면 부족을 <느린 형태의 안락사>라고 표현한다.

 

깨어 있을 때 온갖 일들에 심란해졌기에바로 잡기 위해 들어가야 하는 상태가 잠이라는 것이다하지만 이 논리를 뒤집으면 어떻게 될까잠이 대단히 유용한 것이라면우리의 모든 측면에 생리적으로 유익한 혜택을 주는 것이라면그렇다면 질문은 이렇게 바뀌어야 할 것이다생물은 왜 굳이 깨어나는 것일까.”



늙으면 잠이 줄어든다와 늙으니 기억력이 약해진다는 필연적인 동반 관계일 지도 모르겠다늙어서가 아니라 잠이 줄어들어서 기억력이 망가지는다행히 저자는 이 책에서 두려워하지 말라고확실하게 단번에 해결할 공짜 치료법이 있다고 자신한다반갑고 기쁜 반면에 울고 싶은 기분이 드는 처방이다여덟 시간 이상 충분히 잠을 잔다.”

 

나는 인구의 1%도 안 된다는 선천적으로 유전자의 영향으로 잠이 없는 사람이 아닐 것이다잠에 대한 일반적인 착각과 신화 등등을 과학적인 근거로 모두 싹 쓸어버리는 멋진 내용들은 재미있었다분명 일상에서 잠을 쫓아내려고 애쓰는 이들에게 아주 인상적일 것이고 생각이나 태도를 바꾸게 할지도 모른다하지만 지금 나는 어떻게 하면 잠을 줄일까가 아니라 잠이 잘 올까로 고민하는 중이다.

 

1. 수면 시간표를 지켜라.

2. 운동은 좋지만너무 늦게 하지는 말라.

3. 카페인과 니코틴을 피하라.

4. 잠자러 가기 전에는 알코올 함유 음료를 피하라.

5. 밤에는 음식을 많이 먹지 말라.

6. 가능하다면잠을 못 이루게 하거나 설치게 하는 약을 피하라.

7. 오후 3시 이후에는 낮잠을 자지 말자.

8. 잠자리에 들기 전에 긴장을 풀어라.

9. 잠자러 가기 전에 뜨거운 물에 목욕을 하라.

10. 침실을 어둡게 하고차갑게 하고침실에서 전자 기기를 치워라.

11. 적절히 햇빛을 쬐어라.

12. 말똥말똥하다면 잠자리에 누워 있지 말라.

 

예전에 의사에게 받은 불면증 처방 내용과 아주 많이 유사하다나는 이 중 많은 것들을 지키고 있고 카페인은 오전에 한 잔어쩌면 긴장을 잘 못 풀고 잠자리에 들 때도 있을 것이고알레르기 때문에 햇볕을 많이 쬐지 않기 때문에 부족함은 있을 것이다아무리 봐도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것은수면과 지구환경을 위해 바로 할 수 있는 일은 카페인을 피하는 것이다.

 

국가가 허용하는 합법적인 마약이라는 커피카페인 실험은 영상 자료를 직접 봤으면 아무리 나라도 소름이 끼쳤을 것이다인간이 아니라 거미니까혹은 난 이미 중독이니까끝까지 즐기겠다고 저항할 수도 있겠지만다른 약물도 아니고 필로폰마리화나 등등을 모두 이겨 넘긴 생물 교란 영향력 1등이 카페인이라니실험에서 카페인에 노출된 거미는 거미집을 짓지 못한다(뭔가 짓기는 하는데 집 형태를 이루지 못한다.).



놓친 잠은 복구되지 않는다.”

 

아깝고 후회가 많이 된다복구 불가한 일이라니나는 나를 죽이고 있다나는 내가 죽는지 모른다.”는 타이틀만으로 최고의 공포 영화다확증 편향이라고 해도 할 수 없다나는 이 책에서 말하는 거의 모든 내용을 신뢰하고 지지한다잠은 보약이 맞다.

 

내 사정에 지나치게 골몰하느라 언급하지 않은 부분들이 많다혹시나 책 전체에 대한 인상을 흐릴까 한 가지만 언급하고 싶다저자는 수면의 사회적 측면에 대해서 아주 진지하고 고찰하고 지적하며 분명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인류의 역사를 두루 살펴서 수면에 대해 인류가 규정한 여러 위험하고 그릇된 점들을 힘껏 고치려는 의지와 연구 결과를 두루 갖추고 있다학문적 성취와 의미가 큰 내용들이 널리 수용되고 변화를 마중할 수 있기를 힘껏 지지하며 인용문 몇 개를 남긴다.

 

더 이상 수면 소홀을 초인적 노력이라 찬양하지 말자.”

 

잠에 투자하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이 단어들이 거슬린다면수면 건강을 귀하게 여기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사람들이 으레 하는 말이 있다기존 이론신념관습이 바뀌려면세대가 바뀔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말이다하지만 대화와 싸움은 어딘가에서든 시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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