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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딸의 심리학 - 서운한 엄마, 지긋지긋한 딸의 숨겨진 이야기
클라우디아 하르만 지음, 장혜경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3월
평점 :
품절
매번 어렵고 멈칫하게 되는 주제이다. 모두 각자의 사정이 있을 거라 생각하면 심리학이라는 학문으로 접근하는 것이 정말 도움이 될까 싶은 생각도 든다. 만약 책을 읽고 배우고 생각하고 결심을 하거나 행동을 바꾸는 일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상황이라면 그야말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단계일 것이다. 다행히 그런 심각한 상황은 아니고 별 다를 바 없이 간혹 마음이 부대 끼는 것들이 있으니 다시 책을 읽어 본다.
독일 작가가 쓴 책이고 한국 작가가 옮겼다. 딸의 시각에서 이야기하고 이해와 화해를 위한 책이다. 얼버무리기 보다는 솔직한 입장을 솔직하게 옮긴 책이고 8장의 <더는 못하겠다면>을 읽고는 조금 놀라기도 했다. 잘 지내든 그렇지 못하든 그럴 수 있다는 정확한 현실에 대해 가감 없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처음인 듯도 하다.
이론을 풀어 적용하는 내용이라기보다는 심리치료사인 저자가 연구 결과들과 치료 경험을 통해 만난 사연들을 소개하는 자료에 충실한 책이다. 사연들마다 저자가 전하려 하는 메시지는 빠지지 않는다. 사례 중심의 이야기들이 주는 공감과 위로는 생각보다 기대보다 크다. 다양한 이들의 다양한 상황들을 만나면서 일단 자기 비하와 비난과 위축 등의 축소되는 사고 판단의 함정에 빠지지 않을 수 있고 그로 인해 관계와 삶에 대해 공통적인 면면들을 이해하고 용기가 나기도 한다. 가독성 높은 대화 방식의 에세이처럼 읽힌다.
“왜 가도 가도 끝이 없을까요?”
“엄마와의 문제는 절대 끝나지 않는 걸까요?”
“엄마에게 다가갈 때마다 그 모든 해묵은 상처가 화산처럼 폭발하는 듯한 분노를 느끼는 딸들의 이야기.”
“내면아이의 깊은 상처”
“이 세상 모든 딸들과 엄마들이 지닌 상처의 백과사전이자 치유 모음집.”
“성장하는 모든 이들에게 바치는 응원의 책.”
모두 다 낯설지 않은 문장들이지만 단 하나의 선명한 정답도 못 만난 문제이기도 하고, 무섭지만 말 그대로 ‘끝나지 않는’ 문제이기도 하다. 엄마라 해도 자식에게 ‘완전히 충분하게 완벽하게’ 사랑을 줄 수는 없다. 당연한 일이기도 하지만 문제는 자식들에게 결핍성 욕구가 생길 수 있고 그 욕구는 살다가 불쑥 튀어나와 삶을 어지럽히기도 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엄마에게 무엇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딸에게 제안한다. 성장하고, 스스로를 치유하고, 원하는 삶, 더 나은 삶을 살아내고, 가능하면 엄마의 상처까지 치유하는 존재가 되라고.
“오늘 상처 입은 아이는 훗날 상처 주는 어른이 된다.”
딸에게만 가혹한 것이냐 반발할 수도 있겠지만, 나조차 아무리 생각해도 그 방법 밖에는, 현재에서 출발해서 미래로 나가는 방법 밖에는 없다. 이런 여정을 살아가려면 우선 이해해야한다. 그리고 화해해야한다. 생각보다 어려울 수 있다. 서로의 삶에 깊숙이 관여되어 있을수록 더 어려울 것이다.
작가 역시 심리치료를 하면서 가족의 애착과 관계 역학이 성인인 딸에게 미치는 영향에 집중하여 연구하고, 임상 치료 시에는 신체지향적 심리치료와 대화치료를 가장 많이 활용한다고 한다.
“엄마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영화를 보듯’ 엄마의 삶을 바라보고, 여성이자 인간으로 이해하고, 딸인 자신도 독립적이고 온전한 인간으로 인지하고, 그러면서도 유기체처럼 완전히 떼어지지 않는 관계라는 것도 이해하고, 이미 살아 온 엄마의 삶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아무도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진실로 이해하고, 내 엄마는 완벽해야 한다고 기대하지 말고, 인정하고 존중하는 부분들을 늘리고, 가능한 관계를 평화롭게 유지하자는.
르누아르 풍 책 표지가 아름답고 평화로워 무척 슬프다. <Young Mother> 메리카스사트. 작품 제목을 알게 되니 더 슬프다. 표지 그림 속 엄마가 어려서, 내 나이로 짐작해 본 내 엄마가 엄마가 된 나이가 아득하게 젊어서, 저 말간 얼굴의 어린 딸이 성장하며 느끼고 생각하는 모든 순간들이 쉽지 않아서.
세상에는 어떤 상처에도 불구하고 더 나은 존재로 성장하고 거듭나는 이들이 있다. 그에 비해 나는 대단한 상처도 대단한 부담도 없지만 작은 일에도 지치는 기분이 든다. 사랑을 간절히 구하지도 않고 원망과 비난을 쏟아내지도 않지만, 잘 엉키는 감정 덩어리는 사라지지도 않는다. 깜냥이 이 정도 밖에 안되는 게 안타깝긴 하지만 변명처럼 자주 사용하지는 말아야겠다. 저자는 분명히 ‘성장하라’고 제안했다.
생각해보면 부모보다 해주는 것 없이 요구만 많고 무례한 이들도 만나게 된다. 다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쉽지 않은 어느 하루가 무한 반복되는 듯 난감한 기분은 어쩌면 사라지지 않고 어쩌면 옅어지겠지만, 일단 무척 마음에 드는 인용문을 만났다.
“빛이 있는 곳을 바라보자. 어둠은 안 봐도 이미 잘 알고 있다.”
하인리히 베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