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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페션 - 두 개의 고백 하나의 진실
제시 버튼 지음, 이나경 옮김 / 비채 / 2021년 4월
평점 :
제목보다 부제 - 두 개의 고백 하나의 진실 - 에 끌린 작품이다. 고백이란 일정 정도의 파격과 혼란을 야기하게 마련이니, 두 개의 고백이 상승효과를 가져올지 상반되고 상쇄되는 성격일지 성급하게 이야기 구성을 상상해보며 즐거웠다. 어쩌면 충격과 더불어 감동을 줄 ‘하나의 진실’로 수렴되는 큰 축이 될 거란 생각도 들면서, 고백의 발화자들이 어떤 캐릭터들일까 마치 남의 사생활이 견딜 수 없이 궁금해진 난감한 이웃처럼 조급한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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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렇게 감각적인 글을 쓸까. 장소들이 포함된 장면들은 무대미술가가 설치한 것처럼 선명하고 캐릭터들은 다면적, 입체적 그래서 현실적이다. 아무런 장식이 없어서 이토록이나 완벽하게 불완전한 인물들이 다큐가 아니라 소설에 등장하다니. 실수를 반복하고 충동적이고 그릇된 결정을 내리고 도저히 편들 수 없는 행동을 하고 타인에게 선명한 상처를 주는 혼란한 존재들, 그렇기 때문에 사는 모습이 더욱 궁금한 매력적인 캐릭터들이다.
삶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거부할 수 없는 사랑에 빠져, 자신의 일을 포기하고 사랑하는 이의 곁에 있고자 했던, 그 결정으로 인해 온통 상처 입고 상처 주고 오랜 부재로 남게 된 23살의 앨리스, 로즈의 엄마가 있다. 어리석거나 밉지 않다. 어리고 여리지만 자신의 진심에 진실로만 답했던 수많은 상처와 실패를 경험한 이들의 퀼트와 같은 인물로 느껴진다. 자신만의 사랑은 알아보았으나 자신만의 삶은 살지 못한 교환되지 않는 열기가 머무는 아픈 인물이다.
“앨리스는 내심 결혼이라는 개념에(상대와 하나, 하나의 새로운 사람이 되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고 여겼다. 생각해보라. 그런 식으로 자신을 소멸시키고 모두의 인정을 받을 수 있다니! 계속해서 한 사람으로 살기는 너무 힘겨웠다. 사려 깊고 상냥한, 더 나은 사람을 발견하고, 내 마음이 그날 밤 상대의 곁에 누워 있기만 하면 변화한다고 상상해보라! 두 사람이 어깨를 맞대고 나란히 걸어가는 느낌이면서도 상대의 인도를 받는 것을 상상해보라! 그렇게 쉬운 일이 있다니!”
“앨리스는 자기 목소리에 아무런 열의가 없고, 그럴 가망도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중략. 앨리스는 자신도 그를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적어도 둘 중 한 사람은 정직해야 할 것 같았다.”
엄마의 부재로 인해 심리적 결핍을 깊이 경험했고, 자신의 존재를 평가 절하하는 과정을 거쳐, 결국엔 자신의 정체성도, 원하는 바도, 행동의 동기와 동력도 찾지 못한 딸, 로즈가 있다. 엄마의 부재가 좀 더 위안과 격려가 되는 상상력으로 전환되어 자신만의 모험을 떠나고 삶에 굳건하게 자리를 찾아갔다면 좋았을 테지만, 35살이 되어서도 로즈는 여전히 ‘단서’라고 생각하는 것을 좇아 부재하는 엄마를 찾아 나서야만 했다. ‘가진 적이 없어 그리워할 수도 없다’는 자신의 말에 반한다는 의식도 미처 없이.
“내가 누구인지, 대체 나 자신을 가지고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 누구나 상실이 있고 부끄러움이 있고 집착이 있지만, 남들은 어떻게든 극복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어떻게든 해낸다. 포기하지 않고 혼자 힘으로 삶을 꾸려나간다. 나는 그러지 못했다. 중략. 내 손으로는 아무 것도 이루지 못했다.”
“내게 일어난 중대한 일은 단 하나였다. 나는 어머니가 곁에 있어줄 만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
60년대와 80년대라는 간극은 길기도 짧기도 한 시간이다. 격랑과도 같은 시절을 맞이한 나이도 다르고 결과적으로 선택도 달랐지만 앨리스와 로즈가 선택하고 기피한 모든 과정들이 아주 섬세한 심리 묘사와 잘 표현된 유려한 문장들로 채워져 있다. 소설적 분위기가 둘의 혈연적 관계를 확인해주는 듯 유사하다. 덕분에 나는 이들과 심정적 거리가 무척 가까워져 애정을 배제하고 삶을 바라볼 여지가 점점 줄어들었다.
자신만의 삶을 살지 못하는 모녀. ‘가장 하고 싶은 일을 즐겁게 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이런 정확한 문장들에 자신의 삶을 표현할 내용을 공유하는 이들은 공감할 수 없는 인물들일 것이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에 둘러싸이지도 못한 채,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대부분 마음이 가난한 채로 살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이들의 여정을 마음을 졸이며 따라 다닐 수밖에 없었다.
이들과 삶의 결을 달리하는 콘스턴스의 냉랭한 성격마저 어쩐지 이야기 속 인물들의 불완전함에 완벽하게 어울린다. 사회적으로 인지되지 못한 아픔으로 인해 겪어야하는 괴로움과 외로움과 온갖 심정과 차디찬 현실을 아무리 애써 봐도 이해와 공감이 어렵겠지만, 동성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부재한 60년대, 그는 모든 이유로 힘들었을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콘스턴스는 바로 그 상처들로 인해 소설로 거둔 성공이 제공한 새로운 환경에 그토록 쉽게 흔들렸는지 모른다. 상처받은 만큼 상처주기 쉬운 성격으로 공격을 방어하기 위한 오만한 성격으로 길들여진 감정에 휘둘리게 되었을 지도 모른다. 때론 감추고 싶었고 두려웠으므로 당시의 콘스턴스를 통과한 진심과 진실은 본인조차 낯설게 뒤틀린 형태로 발산되었는지 모른다.
“언제나 새로운 무언가가 나타나 후회를 밀어내주죠. 좋든 나쁘든 간에요. 모두 언제나 변해요. 그러니까 동등하지만 상이하게 풍요로운 두 길, 똑같이 고난을 겪을 두 길의 갈림길에 서 있다고 생각해봐요. 그 생각에 익숙해지면, 어느 길로 가더라도 성공과 실패를 다 겪을 거라고 여기게 되면, 그땐 마음을 정할 수 있을 거예요.”
“인간은 실제로 잃기 전에는 무엇을 잃을 준비를 해야 하는지 알기 어려워요. 후회할 줄 몰랐던 결정을 후회할 준비를 해야 하죠. 하지만 내 경험상 후회가 결코 영원하지는 않아요.”
삶이 갈라지는 날선 한 지점에 섰을 때, 도움을 구하거나 청할 수 있는 방법이 보이지 않을 때, 인간은 견디거나 포기하거나 해결 - 어떤 형태로든 - 할 수밖에 없다. 콘스턴스가 시대의 한계에 부딪혀도 가만히 있지 않고 애썼던 삶을 살았다고 한다면, 앨리스나 로즈 역시 애쓰며 살려 했다. 제 의지와 존재를 때론 배반하고 외면하는 삶과 힘겨루기를 하다 앨리스는 어디로 흔적 없이 사라진 것일까,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전형적인 안부 한 조각이 없어 내내 마음이 쓰렸다.
“살아 있으려고, 머리를 수면 위로 내놓으려고 애쓰는 행동에 날마다 짓눌리는 걸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나아가고 싶다. 이것이 바로 당신이 만드는 당신의 이야기니까. 너무나 불완전하고, 이따금 너무나 그릇되고 불행할지라도.”
그렇다면 로즈가 콘스턴스의 소설 속에서 자신의 엄마 앨리스의 이야기라고 생각한 것은 간절히 보고 싶었던 로즈의 기대가 어떻게든 찾아낸 결과일까. 그렇다고 믿어버린 오롯한 허구일까. 진실은 사실에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
“작가는 소설에 자신을 써넣으니 원래의 생각이 아무리 바뀌어 새 형태를 띤다 해도, 여전히 그 속에 어느 정도의 진실은 있을 거라고 믿었다.”
기대한 내용도 아니지만, ‘딸은 엄마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의 어머니를 이해하게 되었다.’ 이런 메시지는 이 소설에 없다. 양보도 타협도 없는 상처들이 생생하게 드러나는 긴 여정이라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가 손톱자국이 남을 만큼 긴장하며 추리소설을 읽듯 작가가 섬세하게 파고든 이들의 삶을 찾아다녔다.
“내 행복보다는 타인의 행복을 훨씬 더 강렬하게 맛볼 수 있는 느낌이다.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지 말할 수는 없을 테지만, 끊임없이 발전하려 노력하는 데 지쳤다. 내가 가진 숱한 시시한 자아 사이에서 최고의 자아를 찾으려 노력하는 것도.”
힘들구나. 누구나 이런저런 결함들을 가진 불안한 존재들로 존재하는데 우물쭈물 삶을 낭비하지 말고 최선의 삶을 찾아야한다고 하니. 찾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짧은 일생 찾을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나 그 과정이 이렇게 처절한 분투인 것이 서럽다.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우주의 진화의 방향이 무심하게도 그러하다. 원자들이 생겨나고(물리학), 원소들이 끊임없이 결합/분해되고(화학), 유기화합물들이 생겨나고(생물학), 독특한 원자 결합체인 인간이란 생물종에게서 복잡한 사고가 가능한 의식이 출현하고(철학). 우주는 그렇게 최대한 복잡해지는 방식으로 팽창하고 식어가다 소멸할 것이다.
그러니 인간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혼란스러운 질문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우주의 시작점을 비로소 알게 된 이후가 아니라면 최선의 형태는 사로잡히는 시간이 잠시 잠깐인 경우일 것이다. 어머니란 한 인간의 시작점이므로 엄마의 부재로 상실한 ‘나’에 대한 질문은 ‘우주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와 본질적으로 같은 질문이다.
우리 모두는 알고 싶다, 내가 존재하는 이유를, 모체로부터 분리되어 독립한 나의 존재 의미와 가치를. 로즈가 자신이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 ‘로라’로 행세하면서 점차 ‘로라’와 닮아가는 것은 애초에 그 인물을 창조한 개념이 자신이 되고 싶은 모습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코니를 통해 로즈만이 아니라 인간의 오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어떤 개념을 찾고 있었다고 생각해요. 자기 자신을 찾고 있었던 거죠.”
코니에게.
사랑하는 로즈.
초록 토끼, 래빗이라 불린 여인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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