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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병 인류 - 균은 어떻게 인류를 변화시켜왔나
박한선.구형찬 지음 / 창비 / 2021년 4월
평점 :
“우리는 늘 팬데믹 지구에서 살아왔습니다. 코로나19 유행으로 팬데믹이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팬데믹에서 낯선 목록이 하나 더해진 것뿐이죠.”
지금까지 지구상에 살았던 사람 수를 모두 합치면 500억 명 정도로 추산되는데, 그 중 절반 이상이 감염병으로 죽었다고 합니다. 그 원인에는 기원전 약 1만 년 전부터 현재까지 인간과 만난 1400여종의 감염균이 있었습니다.
제목처럼 이 책은 인류가 감염병과 싸우고 적응하고 공존하며 진화한 역사를 다룹니다. 그리고 그 진화는 질병과 직접 연관이 있는 면역 체계나 유전자 단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감정, 인지, 행동패턴, 종교적 관습, 사회문화적 금기, 성관계와 관련된 도덕적 기준 등에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며 시차를 두고 읽은 인류학, 인문학, 생물학, 의학 도서들이 이 주제 덕분에 모여서 서로의 경계를 허물고 대화를 나누는 듯한 독서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
* 그중에는 충격적(?)으로 생소하거나 어렵게 느껴지는 의학적 지식들 - 항원, 항체, 경체인, 중체인 구조 등등 - 이 있기도 하지만 포기나 좌절하지 말고 내용을 살피고 계속 읽으시면 좋겠습니다.
공/수로 나누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미생물과 인간은 수억 년에 걸쳐 공진화했고 일부는 인간의 몸속에 자리를 잡아 살고 있습니다. 인간의 세포 수는 37조개(학자에 따라 20조개에서 70조개로 달라지긴 합니다만), 우리 몸에서 살고 있는 미생물은 100조 개. 이 정도면 인간은 공생체라 불려야 하지 않을까요.나는 나 혼자만의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혼자여도 혼자인 기분이 안 듭니다.
“인류를 괴롭히는 1400여 종의 병원체 대부분은 인류 스스로 불러들인 녀석들입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인류의 진화사는 곧 감염병의 진화사입니다. 인류 스스로 끊임없이 감염병을 만들고, 만들어낸 감염병을 두려워하고, 그 원인을 애꿎은 곳에 전가하면서 증오와 혐오, 공포에 시달렸습니다. 그러면서 효과가 미심쩍은 규율과 규칙, 교리와 의례를 만들어, 그걸 지키지 않는 사람을 배제하고 추방하고 죽였습니다. 이러한 증오는 집단 수준에서 거대하게 증폭됩니다.”
- 인도에서는 소의 오줌이나 똥을 몸에 발랐다.
- 이란에서는 공업용 알코올을 마시고 700명이 넘게 사망했다.
- 한국에서는 마늘과 김치에 대한 보도들이 급증하고 소주에 고춧가루를 타서 마신다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 이 외에도 언뜻 요오드, 말라리아약, 예방 목걸이, 물마시기 등이 떠오릅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사회적 갈등과 심리적 고통을 보면서, 역설적으로 ‘우리 조상의 삶, 우리 조상의 마음’이 어땠을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원시의 인류가 역병에 접했을 때 보이던 행동입니다. 바로 지금 우리가 생생하게 목도하고 있는 ‘우리 안의 원시인’입니다.”
<총 균 쇠>를 읽으신 분들은 아시는 내용이겠지요. 제러드 다이아몬드가 농업혁명이라는 것이 인류에게 가지는 의미를 전복한 충격적인 주장이 이 책에서도 인용됩니다. “그동안 우리를 보다 나은 삶으로 이끈 결정적 단계로 믿었던 농업의 도입이 사실은 여러 면에서 도무지 회복할 수 없는 수준의 재앙적 선택이었다.” [인류역사상 최악의 실수] 실수들 중 하나도 아니고 최악의 실수라고 합니다.
“집 주변에 가축과 곡물을 키우기 시작했고, 음식쓰레기도 쌓였습니다. 분변과 오물이 넘쳐났습니다. 자연스럽게 쥐와 모기, 파리가 찾아왔습니다. 물론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도 더부살이를 시작했죠.”
그래서 현재까지 추정하는 최초의 코로나바이러스의 출현은 아마도 기원전 8000년경이라고 합니다. 이 시기는 신석기 시대가 시작되었던 시기입니다.
“감염병이 크게 유행하는 상황이라면 오염강박이 심해집니다. 오염강박을 자극하는 단서와 정보가 넘쳐나기 때문입니다. 감염병의 위험과 현황을 보도하는 각종 매체에서 온통 더러운 이야기가 쏟아집니다. 오염강박 환자에게는 불난 곳에 기름을 붓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중략. 도시를 활보하는 원시인이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과거 조상이 살던 원시시대의 방식을 여전히 고수합니다. 감염병 상황에서 타자에 대한 혐오와 배제가 쉽게 일어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 중세 유럽에서는 한센병에 걸린 사람들의 시민권을 박탈하고 사회에서 격리시켰다.
- 세종대왕 때 나병으로 불린 병이 제주도에서 크게 유행하자 환자들을 격리시켰다.
- 치료약이 개발된 뒤에도 한국에서는 한센병 격리를 계속했다.
- 1978년에는 ‘법’에 따라 한국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대상으로 격리, 강제 정관수술, 강제 임신중단수술이 진행되었다.
- 2020년 판데믹 이후 대한민국의 방역은 혐오와 격리와는 완전히 결별한 방식이었나요?
감염병과 맞서 싸우며 인류가 체득한 진화적 산물로서의 혐오와 배제는 현대에 와서 오작동을 할 때가 많다는 지적에 깊이 공감합니다. 실제 감염이나 오염된, 즉 위험 대상에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조건이 비슷하다고 판단하면 전혀 위험하지 않는 대상에게도 작동하는 오염강박 - 오염을 피하려는 강박적인 사고 - 사례들이 현재 진행 중에 있습니다. 전 세계 곳곳에서 일상의 아무 때나 혐오에 기인한 테러를 당하는 이들이 있지요. 그 입장을 상상해보면 얼마나 두려울지 안타깝고 아픕니다.
마치 신체의 과민 반응처럼 느껴지는 이 사회현상은 두려움과 불안에서 자신을 지키려는 심리의 발동처럼 느껴져 모두에게 안타깝기도 하고 - 가해자를 두둔하거나 변명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행동기제의 유형이 그럴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 나또한 일정 정도의 강박이 전혀 없다고는 차마 말할 수 없어서 심란하기도 합니다. 부디 오래 제 정신을 유지하고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기만을 바랍니다.
“그(피르호)는 이른바 공중보건을 창시한 사람입니다. 공공보건제도를 만들고 식품위생법, 상하수도 개선 등 거대한 사회 개혁에 나섰습니다. 중략. 피르호 본인도 위대한 병리학자였습니다. 독일 국민의 건강은 좁은 의미의 의학이 아니라, 이렇게 거대한 규모의 의학을 통해서 보장될 수 있었습니다.”
의학은 사회과학이며 정치는 대규모의 의학에 불과하다.
사회과학으로서의 의학은 이론적 해결책을,
정치와 인류학은 실제적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루돌프 피르호 Rudolf Virchow
https://news.naver.com/main/read.nhn?oid=028&aid=0000140116
"의학의 역사를 통틀어 한 사람이 이렇게도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경우는 극히 드물다. 1821년 프러시아에서 태어난 루돌프 피르호(Rudolf Ludwig Karl Virchow)는 1902년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세포병리학의 창시자, 사회개혁가, 정치가, 인류학자, 사회의학의 원조 등 다양한 타이틀을 얻으며 명성을 날렸고, 이 모든 분야를 의학에 통합시키고자 노력한 이론가이며 행동가였다."
이 신문 연재를 읽을 때만 해도 판데믹 상황에서 다시 소급될 거란 상상은 못했습니다. 질병이 아니라 사회구조 전체를 조망해서 필요한 체제를 현실화시킨 엄청난 인류사적 업적에 대해 뒤늦게나마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 번 반복하지만 인류의 역사는 감염병의 역사입니다. 중략. 또한 감염과 관련된 강력한 불안과 두려움, 공포, 강박의 심리적 반응, 그리고 혐오와 배제, 차별의 사회적 반응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다 같이 힘내자고 우리는 바이러스와의 전쟁, 승리, 극복, 근절이란 용어들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사실 그 어느 것도 적어도 현재 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어쩌면 그런 표현들은 오히려 사실을 가리고 진실을 받아 들여야하는 우리에게 유예 기간만 늘리는 적합하지 않은 표현들일 지도 모릅니다. 바이러스로부터 모두가 안전해질 수 있는 방법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마냥 두려워하며 다 포기하기에도 이릅니다. 두려웠던 신종 플루가 독감으로 관리되는 것처럼, 예방과 치료를 병행하며 공존할 길이 마련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할 수 없는 일에 대해 왜 못하냐고 소란스럽게 구는 일, 유한한 자원과 인력을 낭비하는 일에 모든 힘을 다 쓰지 말고, 할 수 있는데 하지 않는 많은 일들에도 적절하게 사회적, 개인적 자원과 에너지를 배분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효과적인 또 다른 실천일 수 있지 않을까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출현과 판데믹 이전에도 중요한 문제들이었던 수많은 의제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어쩌면 더 악화되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잠시 생각해보니 여러 개가 떠오르네요. 사회 공통의 것들도, 각자에게 중요도가 다른 개별적인 것들도.
작년 말과 새해 초에 내가 생각하는 시급하고 중요한 목록들을 한번쯤은 정리해서 써 두고 싶었습니다. 벌써 목록들 순위가 바뀌기도 하고 지워지기도 새로 생기기도 합니다. 사는 것이란 그런 변화이기도 하지요. 지금, 여기 밖에 가진 게 없는 유한한 삶을 살고 있으니 솔직한 나의 우선순위를 알고 기억하고 그에 따라 살아보려 애쓰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마음먹은 대로 다 살지는 못하지만 가끔 별다르게 더 중요한 일은 없다는 생각도 합니다.
“인간들은 늘 똑같은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그들의 힘이고 순진함이기도 하다. 중략. 의사 리유는, 입 다물고 침묵하는 사람들의 무리에 속하지 않기 위하여, 페스트에 희생된 그 사람들에게 유리한 증언을 하기 위하여, 아니 적어도 그들에게 가해진 불의와 폭력에 대해 추억만이라도 남겨 놓기 위하여, 그리고 재앙의 소용돌이 속에서 배운 것만이라도, 즉 인간에게는 경멸해야 할 것보다는 찬양해야 할 것이 더 많다는 사실만이라도 말해두기 위하여, 지금 여기서 끝맺으려고 하는 이야기를 글로 쓸 결심을 했다.” (<페스트> 알베르 까뮈. 마지막 내용.)
감염병이 아니라하더라도 자신의 정확한 수명을 아는 이는 별로(?) 없을 테지요. 그러니 중요한 일,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 후회와 아쉬움으로 남기고 싶지 않은 일부터 하면서 살고 싶지 않으신가요. 저는 인류가 좀 더 자신에게 집중하면 타인을 향한 과장되고 격앙되고 부당한 관심과 혐오와 차별과 폭력도 조금은 줄지 않을까 그런 희망적인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이렇게 잠시 착한 마음이 든 것은 이 어려운 이야기를 두 저자께서 무척이나 다정한 어조로 들려주셨기 때문입니다. 읽고 나니 어쩔 수 없이(?) 내게도 그 다정함이 묻었나봅니다. 정확한 정보 전달 이상으로 애쓰시며 농담과 비유와 반전까지 열심히(?) 담아서 재밌게 읽으라고 만들어 주신 책이란 느낌이 듭니다.
오직 제가 야기한 혼란한 틈에서 냉큼 제 이익을 취하려는 계산에만 뜻이 있어, 정보가 가짜이건 악의가 있건 개의치 않고 수많은 사람들이 혼란스럽고 두려워할 것은 안중에도 없이 떠들어대는 비열한 범죄 수준의 가짜 혹은 유해한 뉴스보도들 말고, 친절한 이 두 저자가 들려주는 자상한 설명을 대신 읽으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