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의 탄생 -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에 숨은 과학
캐스린 하쿠프 지음, 김아림 옮김 / 생각의힘 / 2019년 3월
평점 :
절판



탐보라 산에서 터진 화산재가 전지구적인 영향을 끼쳤던 것처럼 콜레라 또한 대단한 흔적을 남겼다콜레라는 인도에서 처음 시작되어 (......) 1819년 20년 사이에만 12만 5000명이 죽었다. (......) 그러던 6월 16일에 바이런이 이렇게 제안했다. “우리 각자 유령 이야기를 써봅시다.”



Frankenstein 1994


<프랑켄슈타인> 읽어 보셨나요꽤 오래 전에 무척 인상적인 영화로도 개봉되었습니다. SF팬이라면 저자인 메리 셸리를 잘 기억할 수도 있겠지요잠깐 퀴즈<프랑켄슈타인>은 누구의 이름일까요(누가 진정한 괴물인가하는 철학적이고 비평학적인 논의는 잠시 접어 두시길 바라며.)

 

1. 창조자 박사

2. 창조물 괴물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이후에 등장한 거의 모든 미치거나 사악한 과학자 캐릭터의 전형이 되었다. (......) 하지만 히스테리와 집착사악한 야망에 가득 찬 과학자라는여러분이 머릿속에 그리고 있을지도 모를 과학자 상은 1816년에 메리 셸리가 창조한 캐릭터와는 무척이나 다르다메리가 묘사했던 주인공은 자신의 과학적 시도에 대해 분명히 목적의식이 있었고 (......) 미친 사람으로 그리지 않았다. (......) 그에게 선견지명이 없었을지언정 메리는 결코 빅터의 의도를 사악한 것으로 보여주지 않았다.

 

어린이 판본으로 처음 읽고 나서는 여러 차례 우스꽝스러운 꿈을 꾸기도 했습니다위협적이지 않은 조각난 몸들이 움직이는 꿈들이 대부분이었지요성장하면서 의학적으로 신체 이식이 가능하다는 걸 알고서 무척 놀라기도 했고 일부를 이식받은 이들이 모두 괴물로 변하지 않는 현실에 안도하기도 했습니다.

 

오랫동안 공상과학이란 모멸적인 장르로 불리던 과학소설이 지구공동체를 문학적으로 경험하고 훈련하는 좋은 자료로도 쓰인다니 고색창연한 표현감개무량이 떠오릅니다십 대(19)의 여성이 쓴 최초의 과학소설여전히 읽히고 회자되고 재평가되니 반갑기만 합니다.

 

메리 셸리의 대뷔 소설 프랑켄슈타인은 괴물 하나를 만드는데 그치지 않았다이 소설은 과학소설이라는 새로운 문학 장르의 시발점이었다.

 

특히 이 책은 화학자가 쓰고 생물학과학사과학철학을 합동 연구한 과학자가 번역한 책이라 두근두근합니다역자의 이력에 심히 공감하는 유사한 여정을 저도 오래전에 열심히 걸었거든요제가 더 멀리 갔습니다길을 완전히 잃을 정도로여긴 어디 나는 누구.

 

그리고저는 저자와 가족과 사적인 일화가 있습니다물론 그들은 모르고 저만 압니다만영국에 머무는 여러 해 중 어느 여름기숙사를 박차고(?) 나와 해안가가 아름답고 절벽 바위틈에는 고생대 삼엽충 화석이 있다고 하는제인 구달의 고향이기도 한 본머스(Bournmouth)에서 체류한 적이 있습니다한 낮에 책 한 권 들고 슬슬 산책하다 앉아 쉬려고 들어간 교회에서 이 가족들을 만났습니다모두 런던에 계신 줄 알았는데!


그때 제가 들고 있던 책은 [여성의 권리 옹호]로 번역되는 <A Vindication of the Rights of Woman>(1792), 메리 셸리를 낳고 11일 후에 사망한 메리 울스턴크래프트(Mary Wollstonecraft)의 책이었습니다전혀 몰랐던 일이고 찾아 간 것도 아니라서 너무 놀라 책 떨어뜨릴 뻔했습니다정신 챙기며 둘러보니 이 가족들의 이름이 여기저기서 저를 쳐다보고 있더군요그렇게 우연히 만났습니다.



St. Peter’s Churchyard, Bournemouth, Dorset, England 

Mary Wollstonecraft with Husband William Godwin and next to Daughter Mary Shelley.

 

개인사나 가족사말고 작품 이면의 과학적 배경들에 대해 특히 재밌게 읽었습니다. 통시적인 관점은 특히 제가 좋아하는 역사 서술 방법론인데 과학사를 읽는 일은 종종 반복해줘야 빠진 것들도 채워지고 오류도 수정되면서 전체적인 그림을 선명하게 볼 수 있게 됩니다.

 

18세기는 과학 발견의 시대라 할 수 있습니다엄밀하게 말하자면 근대 이후 서양학문을 배우는 한국인들에게도 익숙한 벤저민 프랭클린의 번개가 전기현상이라는 증명볼타 전지 발명생물 전기와 전기 화학 간의 논쟁 등이 있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새로운 발견에 놀라 전기란 죽은 자를 되살릴 수도 있고 오늘날의 심박 조율기는 실제로 그 역할을 해내고 있습니다 전기 자체가 생명력이나 생명 자체일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메리 셸리는 이 점을 작품의 과학적 배경으로 영민하게 활용했습니다.

 

놀라운 점은 결과가 그렇게 나빴는데도 전기에 대한 관심이 그토록 오래 유지되었다는 것이다의학적인 효능은 의심쩍었지만 전기는 확실히 몸에 어떤 효과를 일으켰다화학적이거나 기계적인 자극이 살아 있는 동물은 물론이고 움직임을 멈춘 지 한참 지난 죽은 동물의 몸에서도 근육에 경련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이다전기 자체뿐만 아니라 전기와 신체의 상호작용은 어딘지 특별해 보였다.

 

나는 생명의 기구들을 내 주변으로 그러모아발치에 놓여 있는 생명 없는 물체에 존재의 불꽃을 불어넣으려고 했다.”*

 

갈바니즘Galvanism: 사체의 근육에 전기로 자극을 주어 움직이게 한다는 뜻개구리 다리소 머리사형수의 머리 등으로 실제 실험되었다.


Galvani: Galvanism, 1791 is a photograph by Granger which was uploaded on September 26th, 2013.

 

물론 의학의 발달이 중요한 과학적 자극이 되었지요해부학이 필수과목이 되고 신기하게도 대중적 인기까지 얻으면서무덤 도굴시체 판매가 창궐했다고 합니다작품 속 빅터 박사 역시 신선한 시체를 구해부패하지 않게 보존하고조립 이식 수술을 시행합니다아직 혈액형의 존재도 몰랐던 시절이니 여러 문제들이 연이어 발생했을 것이고 놀랍게도 면역 반응이나 새로운 종의 출현까지 언급됩니다새삼스럽게 19세 저자의 천재성에 감탄을!

 

아직 완성되지 않았을 때 가만히 뜯어본 적이 있었다그때도 흉측했다하지만 근육과 관절을 움직일 수 있게 되자 그것은 단테마저 상상하지 못했을 끔찍한 존재가 되었다.” 그동안 이 프로젝트에 푹 빠져 있던 빅터는 자기가 얼마나 무서운 존재를 만들고 있는지 알아차리지 못했었다그것이 생명을 얻은 순간에야 비로소 그는 자기가 무슨 일을 했는지를 실감했다창조물의 생김새에 혐오를 느낀 빅터는 그것을 괴물’ ‘악마’ ‘더러운 피조물이라 불렀다이 살아 숨 쉬고 생각하는 존재의 정체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상상으로서는 완벽한 창조였으나 잘못 퍼진 이미지처럼 창조물은 어눌하고 지능이 나쁜 괴물이 아니라 뛰어난 지성을 가진 생명체였습니다누구도 그 과정을 모두 밝혀 내지 못한 놀라운 아이디어와 메시지는 200년이라는 세월을 무색하게 합니다우리가 성취한 유사하게 가능한 방식은 유전자 조작이나 줄기세포 연구이겠지요.

 

메리의 원작에서 창조물은 지적이고 사려 깊으며 감정을 잘 표현했고 움직임이 우아했다빅터만 한 과학적인 지식은 없었어도 창조주의 행동이 불러일으킨 윤리적이고 사회적인 결과에 대해서는 빅터보다 훨씬 잘 이해하고 있었다스스로 깨우친 지혜가 대학 교육을 받은 빅터보다 뛰어났던 셈이다.

 

퍼시와 메리 셸리는 노예무역을 비판한다고 알려져 있었으며 프랑켄슈타인은 주변 사람들과 겉모습이 확연히 다른 인종의 사람들에 대한 취급방식을 다룸으로써 노예제를 비판했다고 해석되었다.

 

메리가 소설의 등장인물을 잉골슈타트로 보낸 것은 흥미로운 선택이었는데그 이유는 (......) 1472년에 세워진 이 대학은 18세기에 들어 여러 음모의 진원지가 된 비밀 결사일루미나티Illuminati(계몽을 뜻하는 라틴어)의 중심이 되었다. (......) 뚜렷한 반종교적 성향을 띤 동시에...... 평등주의 같은 개념에도 흥미를 가진 자유사상가들의 모임이었다. 19세기 독자들은 이 소설에 등장한 잉골슈타트 대학교를 비밀결사 그리고 위험한 혁명적 실천과 연결지어 이해했을 것이다.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은 과학과 문학과 영화 각각에 번개’가 내리친 충격처럼 강렬한 영감과 생명력을 선물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독자로서 여러분들은 어떤 분야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으셨나요?

 

1. 신의 생명창조 레시피를 얻은 것처럼 전지전능한 조작기술을 끝없이 키워나가는 과학

2. 세상에 없었던 장르가 탄생하고 수많은 자극들이 전 세계에 전기 충격파처럼 번져나간 SF문학

3. 일일이 다 헤아리기도 벅찬 작품수와 공포에 질린 관객들의 새된 비명소리로 명성을 가늠하는 기기묘묘한 공포영화들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에 필적할 수 있는 현대 창작물로는 무엇을 꼽을 수 있을까요?

저는 생각이 안 떠오르네요. 늦은 밤, 만성 피로, 길어지는 불면 , 노화 탓을 해봅니다.


1831 edition of Frankenstein by Mary Shelley


정말 즐거운 멋진 책 읽기였습니다. 세상엔 재미난 책들이 끝없이 태어나나 봅니다. 오로지 시간이 부족한 것만이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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