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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살 자연주의자의 일기 - 지구에 무해한 존재가 되고 싶은 한 소년의 기록
다라 매커널티 지음, 김인경 옮김 / 뜨인돌 / 2021년 3월
평점 :
읽기 시작하니 곧 바로 낭패다 싶은 생각이 스며들었다. 남의 일기를 몽땅 필사하는 일이 생길 것 같았다. 기막힌 묘사가 이어지고 아프고 아름다운 정서가 문장 마다 느껴지고 구체적이고 다양한 많은 지구생명체들이 등장한다. 지적으로 정서적으로 온전히 굴복하게 되는 글이다. 마음의 무릎이 스륵 접힌다.
"내 이름은 다라다. 도토리를 맺는 참나무처럼 커다란 나무로 자랄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아이라는 뜻이다. 엄마는 예전에 나를 론두라고 불렀다(론두는 아일랜드어로 대륙검은지빠귀라는 뜻이다). 엄마는 요즘도 가끔 그렇게 부른다."
"나는 자연주의자의 심장과 (지금은 장래희망인) 과학자의 머리와 자연에 가해지는 무관심과 파괴에 지칠 대로 지친 뼈를 지녔다."
"잊고 있던 장소가 갑자기 기억날 때의 느낌을 아는지? 나는 작은 숲에서 막 걸음마를 배우던 때로 돌아갔다. 엄마가 나를 들어 올릴 때까지 라일락꽃을 밟아 뭉개고 있었다. 그 기억을 뒤로하고 빠르게 두 해 정도가 흐르더니 쇠똥구리를 찾으려고 쇠똥을 뒤적이고 이끼 낀 둑에 올라가 뭔가를 찾던 때가 떠올랐다.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땅바닥에 누워 참나무 가지를 올려다본다. 그림자로 얼룩덜룩한 빛이 우거진 가지 사이로 비치고, 나뭇잎이 고대부터 내려온 주술을 속삭인다. 이곳에 뿌리내리고 살아오면서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광경을 보고 소리를 들었을 이 나무는 숱한 멸종과 전쟁과 사랑과 상실을 목격했을 것이다."

"자폐 스펙트럼이 있는 사람에게 학교는 뭔가 학습하기에 좋지 않은 환경이다. 소음을 걸러 내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집중하는 데 너무 많은 에너지가 든다. 나는 오후 3시 정도면 완전히 진이 빠진다. 하지만 집에 와서 숙제를 해야 하고 기상 알람을 맞춰야 한다. 그리고 다음 날 이 모든 것을 다시 반복해야 한다."
"뒷문 계단에 앉았는데 새소리의 힘과 강렬함이 이전보다 줄어든 느낌이 들었다. 뭔가 절박함이 부족했다. 봄과 이른 여름의 업무가 끝나 가고 있었다."
"대륙검은지빠귀와 다른 모든 새들은 내년에 다시 시끄럽게 노래할 것이다. 돌쟁이 때부터 침실에서 그림자를 바라보며 알게 된 사실이다. 노래는 멈추지만 항상 다시 시작된다."
"나는 숨을 들이마시며 해 질 녘의 향취를 맡았다. 어둑어둑한 그림자가 휙 날아갔다. 박쥐가 각다귀를 잡아먹으려고 나오고 있었다. 나는 눈을 감고 간질간질 스치는 만족감을 만끽했다. 오늘을 버텨 낸 나 자신이, 이 하루가 씁쓸하게 끝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은 내가 자랑스러웠다."
"나는 어두운 마음이 나를 완전히 삼키도록 놔두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이 존재하는 것이다."

Anne Hailes: Young naturalist Dara McAnulty has certainly proved naysayers wrong
출처: www.irishnews.com
작가는 자신만의 예민함으로 아주 날카롭게 관찰하고 통찰하지만 전하는 방식은 무척 솔직하고 따뜻하다. 의도적으로 배려하는 기획이 아니라 할지라도 위로를 받는다. 야단법석을 떨며 온 세상을 불편하게 하는 그런 종류의 예민함이 아니다.
외부로 향하지 않은 모든 에너지들이 갈고 닦은 능력일까, ‘글쓰는 법’을 배운 것 같지도 않은데 아주 잘 다듬어진 예민함을 ‘자연스러운’ 문장들로 폭발하듯 넘쳐흐르듯 기록했다.
봄과 여름을 읽다, 문득 (만약 있다면 혹은 아직 남았다면) 나의 예민함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지금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고민에 빠졌다.
편리한 이유를 들어 애써야 유지할 수 있는 예민함은 적당히 밀쳐 두고 사는 건지, 세상을 인지하는 태도는 성실한지, 누구의 취향도 그대로 인정하는 용기는 팔아넘기지 않았는지, 다른 일들로만 정신없이 바쁘면서 아직도 관심이 있는 ‘척’ 다른 이들만 지적하며 예민하게 굴지는 않았는지, 고민이 커진다.
누군가의 고통이 멋져 보인다고 말하거나 함부로 닮고 싶다고 해서는 안 되겠지만, 예민함으로 충만한 저자의 멋짐을 닮고 싶다.
예민함은 어떻게 갈고 닦아야 하는 것인지……. 귀찮은 것 많고 게으른 나로서는 멋져서 부럽다가도 알 듯 모를 듯, 알고 싶기도 하고 모르고 싶기도 하고.
변화란 스스로 독려해도 어려운 일, 앞으로도 내가 누군가를 바꿀 수 있다는 허황된 생각은 말자는 교훈을 급하게 얻었다. 나는 원체 언제나 꿈이 작은 부류였다. 변화와 혁신 말고 조금씩 가다듬고 살자.

"지구의 공전 덕분에 특정한 시기에만 접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오늘은 뻐꾸기 소리를 무척 듣고 싶었다. 나는 계절의 시작을 알리는 ‘첫 번째’ 것에 집착하는 편이다. 모든 것의 처음은 매우 특별하다."
"막 날기 시작한 어린 새들조차 프랑스, 스페인, 모로코를 경유해 사하라 사막을 넘어 아프리카 서쪽 해안으로 돌아가거나 나일 계곡 동쪽을 거쳐 남아프리카로 가는 위험한 장거리 여행을 하는 어른들 틈에 낄 준비를 해야 한다."
"새들의 믿을 수 없는 여행을 생각하면 언제나 감탄이 나오는 동시에 용기를 얻는다. 이렇게 작은 몸집으로 굶주림과 탈진과 싸우면서 6주 동안 매일 300킬로미터를 날 수 있다니. 학교, 사람, 교실 같은 새로운 것들에 대한 걱정이 시작될 때면, 제비의 회복력과 투지를 생각한다."
"이상했다. 너무나 평범한 하루다. 평소에는 바람만 조금 불었다 하면 태풍으로 변하기 일쑤였다. 지금은 바람도 잔잔하고, 한바탕 폭풍이 휘몰아친다 해도 나는 웃을 수 있다. 행복하다. 동시에 좀 더 까다롭고 단단해진 느낌이다."
"햇살이 이 모든 것을 통과해 들어오기 시작했지만 나는 내내 조심스러웠고 과연 얼마나 오래갈지 의심을 떨치지 못했다. 담장과 담쟁이넝쿨에 그늘이 드리우면서 의심도 자라났다. 나는 빛과 그림자 둘 다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둘은 내 일부고 그것을 바꾸는 것은 내 능력 밖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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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커널티, 란 저자 이름 발음 확인하신 것 맞으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