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하는 이상한 사람들 - 지금껏 말할 수 없었던 가족에 관한 진심 삐(BB) 시리즈
김별아 지음 / 니들북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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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도 때로는 무례가 된다중략.

그런 무지와 무례 속에서 우리의 가족은 남몰래 아프다.

기대는 실망으로실망은 분노로 바뀌어 서로를 사랑하면서도 죽도로 미워하게 된다.”

 

2009년 출간된 <가족 판타지>의 개정판이라니! 2009년도에 읽었으면 좋았을 것을 원통한 심정이다꽤나 지난 이야기이지만 서로에 대한 절절한 사랑으로 양가를 감동시키고 결혼한 친구들(부부가 모두 친구)이 상대방의 숨소리조차 소름 끼치게 미워하게 되고 별거를 거쳐 이혼에 이르는 과정을 무력하게 지켜본 경험이 떠오른다.

 

문제는 이혼을 너무 많이 하는 게 아니라 결혼을 너무 많이 하는 것이다결혼을 할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까지도 결혼이라는 제도에 몰아넣어야 속이 후련한 사회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을 이상 상태로 분류하고서야 안심하는 사회에 먼저 이혼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사회적인 문제로 부상한 만큼 이 분석은 무척 유의미한 통찰이다사는 일에 끝까지 정해진 순서가 있다는 생각은 어쩌다 하게 된 일일까.

 

뭐라도 쓴다는 일은 자꾸 누군가를 팔아넘기는 일 같지도 느껴지지만어쨌든 또 친구 얘기를 하자면결혼과 아이에 대해 아무런 욕망이 없다는 것을 비교적 일찍 알게 된 친구가 그렇게 잘 살다가 문득 혼자 살기가 지긋지긋해졌다고 했다나름 합리적으로 자신과 아주 비슷한 성향을 가진 이를 소개 소개받아 서로가 상세하게 계약서를 작성하듯 제안하고 합의하고 좀 더 신나는 미래를 꿈꾸며 결혼을 했다.

 

재밌게 같이 놀 친구가 생겼다고 무척 좋아했는데재미가 없었던 것인지 일상을 함께 하는 일은 재미를 목표로 해서는 도저히 짊어질 수 없는 어마어마한 일이었는지결혼하던 풍경과 비슷하게 이혼을 했다결혼하기 전에도 친구들과 함께 식사를 했고 이혼하기 전에도 친구들을 모아 함께 식사를 했다.

 

뭐랄까온갖 뜨거운 감정들말들행동들이 오고 가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사는 일이 애써 봐도 이렇게 쓸쓸한 시행착오의 연속이라는 것에 더 쓸쓸한 기분을 인정해야 할지 복잡한 기분이었다. ‘가족이 된다는 일은 결혼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절감한 경험이기도 했다.

 

가족이라는 지난한 기대이자 무거운 짐은 벗어버리되 인류애로 접근해 보면어쩌면 나와 닮은 이 이상한 사람들을 조금은 다른 시각에서 이해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부모님과 나와 내 동생은 심지어 닮은 부분도 참 없다. 4인이 외모도 성격도 취향도 모두 제각각이라비유하자면 앙케트 문항들 중에 일치하는 것이 없을 정도이다.

 

식구라는 말이 널리 의미하는 바처럼 같은 식사를 한다는 것이 가족을 이루는 중요한 일상이자 본질의 일부라면 그 점에서도 우리 가족은 집단으로 묶이지 못한다음식 취향이 제각각이라 밥의 곡물 구성국의 재료전통 음료명절 전의 종류 등등 거의 모든 것 식당에서 원하는 메뉴를 시킨 것처럼 각자의 음식 풍경이 달랐다.

 

내게는 의례적인 풍경이었는데 의외로 흔한 일은 아니었을까. 이후 다른 모임들에서 단 한 번도 짜장면으로 통일!”이란 말에 유쾌하게 웃지 못했다짜장면을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비밀이 없는 사이는 성숙한 인간관계가 아니다.

사람 사이에는 엄연한 경계가 있어야 한다.

자기만의 은밀한 영역 속에서 휴식하고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

 

외모가 붕어빵처럼 닮았거나 의견 일치를 잘 하고 음식 취향이 같은 친구들과 가족들의 모습이 궁금하고 부럽기도 했다언젠가는 벅차고 버겁지만 외로울 틈 없는개인이라고 자신을 인식할 여유도 없는 끈끈하고 질척한 관계란 어떤 기분일까 궁금해한 적도 있다그 역시 부러웠을 것이다그랬다면 나도 타인들과 으쌰으쌰하는 법을 배울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으니까.

 

나는 얼마 전까지 이런 나쁜 품성은 모두 성장 환경의 탓이라 생각하고 있었다중략스스로를 괴롭히는 결핍이 성장기에 충분한 애정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거라고 생각했다중략그래서 사춘기 시절의 나는 그토록 엄마에게 가혹한 딸이어야 했던 모양이다중략나는 그럴 자격이 있다고 믿었다.”

 

같은 반이었다면 친구가 되지 않았을 사람들이 모여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사는 일은 신기하고도 힘든 일이다사랑하지만 좋아지지 않는 이들이 가족이랄까그래도 무척 운이 좋은 편이다가정 폭력과 학대와 차별이 일상인 관계는 아니었으니까우리는 그럭저럭 서로를 못마땅해 하면서도 어느 순간부터 타인이자 성인으로 받아들이고 서로의 생사를 확인하며 각자 살아가고 있다.

 

가족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다만 달라질 뿐이다.”

 

“...... 가족 붕괴와 해체의 책임을 비정상에게 돌리며 비난하는 사람들에게당신의 가족은 정말 행복한가 묻고 싶다호주제 때문에 남편과 아내는 서로 더 존중했는지소위 결손가정의 자녀와 친구 관계를 맺지 않은 아이는 몸과 마음이 건강한지동성애를 혐오하고 장애인을 멸시하기에 당신의 가족은 더욱 안락하고 안전한지......”

 

쓰다 보니 생활이 분리된 시간이 걸어서인지 어느새 나의 첫 번째 가족에 대해 남은 감정도 못 다한 말도 별로 없구나 싶다책의 내용은 무척 풍부한데부모와 나의 관계에 집중해서 쓰다 보니 빈약한 소개 글이 되었다이 책은 제목도 압권이고 내용은 기대 이상으로 재밌다거침없지만 거칠지 않게 써 준 저자에게 감사하다.이러 저리 얽힌 부모 자식의 여러 형태와 부부사회적이고 성적gendre 존재로서의 풍부한 이야기들이 재미나니 재밌게 읽어 보시길 바란다.*

 

피할 수 없는 노화와 기저 질환을 감당하시느라 매일 일정량의 통증과 함께 지내시는 부모님 역시상황에 비해 무척 잘 지내고 계신다는 생각도 새삼스럽게 든다다들 늙어 가느라 기운이 왕창 빠져서 날 선 기운으로 딱딱한 에너지로 부딪치는 일이 없어졌다는 것이 살짝 서글프면서도 안심이 되는 비교적 정확한 분석일 듯하다어쨌든 나 역시 구원도 절망도 아닌 가족이라고 불리는 이상한 이들과 서로 열심히 봐주며 살아간다. 거듭 말하지만 무척 운이 좋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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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보기 발췌

 

“...... 아이가 아니었다면나는 누군가를 먹이고 어르기 위해 한밤중에 꿀 같은 잠을 억지로 밀쳐 내며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중략 아이가 아니었다면나는 우리 주변에서 그토록 많은 턱과 계단이 존재하는지 몰랐을 것이다...... ”

 

어떤 심리학자는 현대의 아이들이 불행한 원인 가운데 하나는 부모의 눈에 너무 잘 띄는 것이라고 한다.”

 

사람은 모두 다르게 태어나요아이들은 각각 자기만의 밑그림을 가지고 있다고요엄마가 할 수 있는 건그 밑그림이 어떤 것인지 가만히 살펴봐 주는 것뿐이에요엄마가 할 일은 없는 재능을 만들겠다고 우기는 것이 아니라아무리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재능이라도 아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북돋워 키워주는 게 전부라고요.”

 

부모와 자식의 투쟁은 한 인간이 성숙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기도 하다중략특히 반성할 줄 모르는 부모자식의 인생을 자기 소유라고 여기는 부모에겐 타협과 이해가 없다사랑이라는 이름도 때로는 가혹한 상처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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