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편의 이야기, 일곱 번의 안부
한사람 지음 / 지식과감성# / 2021년 1월
평점 :
절판



토지문학제대상이란 소개에 콧등이 시큰거리며 읽고 싶어지는 마음이 들었다시작한 이유는 기억이 안 나지만 10대에 <월간경향연재분을 읽기 시작해서 30대에 단행본으로 완독한 특별한 책이라 매번 지극히 감상적이다. 26년에 걸쳐 쓰신 작품을 20여 년 동안 읽었다한국 근현대사는 토지로 배웠고 덕분에 역사교과서가 더 재미없어지는 낭패를 겪었다.

 

 늘 장편문학을 더 좋아한다고 생각했다푹 빠지게 되는 과정과 몰입하는 느낌이 좋았다그러다 3월에 단편 11개를 매일 하나씩 읽고 뭐라도 써보았는데작품들이 훌륭해서였겠지만 매일이 가뿐하게 즐겁고깔끔하면서도 임팩트 있는 단편의 매력과 읽는 즐거움이 무척 컸다덕분에 퇴근 후 시간이 반짝이고 들썩였다누군가 재미난 단편들을 계속 제공해준다면 계속하고 싶단 애착도 생겼다.

 

다행히 이 책을 만나 이번 주 내내 설레며 읽어 보았다.



개가 주인공인 [안락사회]와 [코쿤룸]처럼 제목들이 범상치 않아 마음을 다잡고 비장하게 읽어야지 했던 글들은 묵직한 울림이 있었고 아파서 조금 울었다개나 사람이나 사는 모습도 형편도 천차만별애쓰는 내내 소모되기만 하고 말라가서 쓸쓸하게 사라지듯 안락하게 죽는 이들의 모습이 언제쯤 현실과 무관한 일이 될까 슬펐다.

 

집이 사람을 인식합니다.” 


언택트 시대는 점차 더 집에 대해 집중하게 만든다이미 누군가는 고치 속 애벌레처럼 버티고만 있을 것이다저자가 들려 주는 이야기가 이런 절망의 분위기는 아니다각자의 코쿤룸을 만들기도 하지만 허물기도 하는 살아가고 성장하려 애쓰는 장한 주인공이 있다.

 

[집구석 환경 조사서]라는 냉소적인 말투가 묻은 제목의 글은 냉철하고 날선 풍경을 웃프게 전해주었다딱히 화만 나지도 슬프기만 하지도 웃기기만 하지도 따뜻하기만 하지도 않은딱 그런 모두의 가족이야기.초등시절 가정환경조사를 하며 웃기게도 가구나 가전제품 유무를 물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 있다항목마다 손을 들라 했던가 적어오라 했던가.

 

그리고 대전의 친구와 돌발적으로 찾아가본 뿌리공원이 생각났다뿌리를 소재로 한 예술작품 전시공원일거란 짐작과 다르게 성씨의 뿌리를 찾아서공원이라 진심 놀라고 엄청 웃었던 추억이다우리는 현생 인류와 동일한 미토콘드리아를 전달한 모든 미토콘드리아의 조상 약 20만 년 전 아프리카에 살았던 여성의 후손들이자 모두 남이다.

 

가장 최근의 시사성과 현실성이 반영되었을 거란 짐작했던 [기억의 제단祭壇]과 [조용한 시장市場]은 짐작보다 넓고 풍부한 세상을 담고 있었다제대로 생생하게 아프고 힘든 이야기였다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었다.

 

뜻밖에 그리스신화의 인물이 등장해서 어떤 의미로 가장 새롭고 기대가 되었던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언제나 가장 먹고 싶은 것부터 먹는 버릇대로 가장 먼저 읽었다뜻밖에 중여성화자가 등장해서 내면을 가감 없이 들려주는 지라 어느새 제목은 잊고 유일한 상담사가 된 소명을 받은 양 어린 사람의 이야기를 정말 열심히 읽었다.

 

* Clytemnestra /ˌklʌɪtɪmˈnɛstrə/: wife of Agamemnon. She conspired with her lover Aegisthus to murder Agamemnon on his return from the Trojan War, and was murdered in retribution by her son Orestes and her daughter Electra. <Oxford Dictionaries>. 클라이텀네스트라, 가 더 익숙한 발음이지만 별 문제는 아니다.



한 날나는 다짐했었다가끔은 나를 속이기도 하는 저 소리에 침 흘리지 말자고.”

 

다섯 마리의 개가 곧 다가올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시력 장애로 버려진 197나이가 많아 오줌을 지린다고 버려진 254성대가 잘려 짖지 못하는 236새 아파트에서 키우기엔 덩치가 크다고 버려진 178번 그리고 156나였다.”

 

지난 10일간 이곳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쳐 왔다탈출은 실패했다중략. 156안락사했음.”

 

집구석이란 단어에선 애증의 냄새가 난다가정과 집구석 중에가족과 어울리는 단어는 단연 집구석이다.”

 

나는 나의 장래’ 앞에서 문제 많은 가족들을 생각했다중략생은 예측불가라서 의미 있다고들 하지만한 치 앞 정도는 내다볼 수 있기를 바랐다내 희망은 가족처럼만 살지 않는 거라고 해도 좋았다나는 모든 막연한 것들에 반감을 품고 있었다중략나는 장래 희망란에다 취직이라고 적었다.”

 

그렇게 나는 신용을 버렸다신용을 버리면 생도 끝장나는 줄 알았다중략그러나 웬걸다음 날에도 해는 떴고 나는 외려 이전보다 조금씩 살만해졌다중략신용불량자가 된 후에도 메일함에는 꾸준히 신용불량자 대출이라는 스팸메일이 도착했다바야흐로 대출 권하는 사회였다.”

 

나는 머리맡에 둔 수첩을 펼치고 닥치는 대로 썼다견디기 위해서나를 따라다니는나를 괴롭히는가끔씩 내 머릿속에서 타오르는 불씨나는 머릿속에 들어찬 무수한 를 증오하며 오직 잊기 위해 글을 썼다문장 안에 를 가두고 닫아 버렸다.”

 

욕 좀 하는 키보드 워리어로 게시판을 실컷 누빈 사내는 조금씩 감정이 누그러져 오는 것을 느꼈다변한 건 없어도 어쨌든 좀 살 것 같았고일단은 그걸로 족했다.”

 

평소 자신의 십자가임에 마땅했던 남자와 아들은 주일 예배를 통해 주님이 주신 은총으로 탈바꿈되곤 했다그럴 땐 할렐루야들이 고맙기도 했다얼마 못 가 다시 십자가로 전락했지만 주일은 또 돌아왔다중략실직도 일단은 회사에 들어가 봐야 겪을 수 있는 거라면 자신은 아버지보다도 못한 인생이었다.”

 

솔직히 지금도 나는 너무 일찍 세상을 알아 버린 포만감 때문에 남은 생이 좀 지루하다.”

 

어느 날 밤엄마는 락스를 가득 담은 대접을 앞에 두고 내게 말했다. “먹고 죽자.””

 

엄마는 순수하고 감상적인 사람이다당사자는 세상물정 모르 채로 살면 그만이겠지만지켜보는 나는 그 아슬아슬함 때문에 희생을 강요받는 기분으로 엄마의 인생에 적극 개입하게 된다.”

 

모쪼록엄마의 여성이 살 만해 하는 마흔의 생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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