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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발견 (양장) - 앞서 나간 자들
마리아 포포바 지음, 지여울 옮김 / 다른 / 2020년 2월
평점 :
840쪽이라는 분량만큼 대단한 것이, 다루는 인물들의 면면을 보면 이런 구상 자체를 했다는 것이 저자에 대한 무한한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이제껏 등장하지 않은 신비한 문양을 갖춘 직조물을 만나게 될 수도 있고, 코가 빠지고 비뚤어지고 색조차 흐린 품질이 떨어지는 천 조작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놀랍고 부러웠다.
소개에서 설명한 대로, 이 책이 다루는 시대는 1700부터 현재까지 4세기에 이른다. 과학과 문학의 문턱들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지성뿐만이 아니라 비평이든 역사이든 결국은 자신만의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해야 한다.
나는 이 책을 혼자 읽을 자신이 없어 지인들에게 랜선 책모임을 처음으로 제안했다. 전공과 관심사가 최대한 다양해야 뭐라도 붙여볼 이야기들이 조금이라도 나올 듯했다.
표지를 보는데 첫 모임 시간을 다 썼다. 내 눈에는 블랙홀의 구조를 도표로 옮겨 계산해보려는 시도처럼 보였는데, 기하심리학자의 작품이었다. 그런 분야가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인간 의식의 진화 과정을 형상화한 도표라니!. 의식의 출발점, 동물의 감각적 의식 그리고 의식의 정점인 초월성의 단계별 표현이다. 빅뱅과 진화와 의식Consciousness의 출현Emergence처럼 들리기도 한다. 자신의 틀로만 이해되는 바를 어쩔 수 없다.
4명이 하는 랜선모임 - 비대면임에도 5인 미만 -에서 무려 3명이 공통으로 지적한 내용은 요하네스 케플러에서 시작해서 레이첼 카슨에서 맺은 구성이다. 외부 세계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던 시절 인간이 모든 지성적 억지와 박해를 무릅쓰고 - 심지어 죽음을 각오하고 - 발견하고 연구하여 인간 세상의 테두리를 넓히던 시절로부터, 그렇게 얻은 지식으로 유일한 생존공간을 파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다 다행스럽게도 과학기술을 활용한 산업정책의 위험성을 깨닫고 경고하는 통찰로 이어지는 과정이 지극히 흥미롭다. 심리적으로나 학문적으로 먼저 만나고 더 가까운 케플러의 발제와 전공을 바꾸고 인생을 전환한 레이첼 카슨 , 두 인물의 발제를 모두 떠맡아서 강조하는 말은 아니다.
그리고 어쩌면 유명한 이 두 사람보다 더 중요한 인물들이며 메시지들을 전해준 그 사이의 모든 이들이 있다. 방대한 분량과 분야에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한 이유는 등장하는 이들 중 8명을 만나봤다는 점도 있었는데, 나는 주로 그들이 남긴 지식과 저서들을 읽은 정도라서, 이번에 이들의 구체적인 삶과 시대상에 촉발되고 후대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사상에 집중해서 다시 읽어본 시간이 참 좋았다.
대체로 남의 성애나 성정체성에 별 관심이 없이 살지만 - 편합니다. 관심이 적으면 편견도 적습니다, 특별히 저자가 마련해 준 ‘사랑’에 대한 이야기들이 재미가 없진 않았다. 전면적인 존재의 교류와도 같은 관계는 성별 불문 누가 되었든 부러운 일이다. 그런 의미로 이 책은 전기의 형식에도 상당히 충실한 편이라 할 수 있다.
다시 한 번 그들이 살았던 시대를 생각해보면, 사상가란 이토록 대담한 존재들이구나 하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평생을 시대와 불화하는 삶을 어떻게 살아낼 수 있는 것인가. 좌절과 초월도 거룩하게 아름답다. 내용과 태도만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별스럽게 대담하고, 평면에서 돌출된 입체처럼 이런 이들을 볼 때마다 진화가 신비롭고 인간에게 이런 복잡하고 복합적인 의식Consiousness이 출현한 이유와 쓰임이 무엇일까 다시 궁금해진다.
20여 년 전부터 궁금했는데, 막상 쓴 학기말 논문 주제는 동물의 의식Animal Consiousness이었다. 왜 그랬을까. 아마도 한국 사람들은 왜 개를 먹느냐, 인간과 가장 유사한 동물은 침팬지이다, 왜냐하면 개는 동물이라 할 수 없을 만큼 친밀하고 중요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등등. 처음 본 순간부터 만날 때마다 질문을 하듯 원망과 애원을 하던 제인 구달 선생에게 시달려 “그래, 내가 한 번 제대로 배워 보마!” 오기와 결심으로 그랬던 것일 수도. 왜 그러셨어요. 심정은 이해하지만 개를 맛있게 먹지 않는 입장으로 할 말이 별로 없기도 했답니다. 그래도 덕분에 많이 배웠습니다.
어쨌든 나는 자꾸만 물리학의 용어들이 이해와 설명에 튀어 나와 지인들에게 저항을 한껏 받으며 함께 읽는 책모임을 해나갔다. 지금의 우리가 때때로 혹은 항시 발목을 잡아당기는 일상과 삶과 의무와 책임과 불완전한 사회체와 현실적 제약들에 마치 중력과 관성의 법칙이 예외 없이 적용되어 옴짝달싹못하는 기분으로 애를 쓰고 비틀거리고 주저앉고 드러눕는 것처럼, 이들 역시 그렇게 살았고, 그런 한편 또 우리처럼 더 나은 세상을 향해 끝까지 발을 옮겨보려 했던 애틋한 기록들이다. 그렇게 읽혔다.
장점은 이런 기록들이 내가 쓰는 일기 정도의 문장력이 아니라 불가리아 출신의 작가 - 처음 만남 - 마리아 포포바의 재능으로 탄탄하고도 창의적으로 쓰였다는 점이다. 읽는 중간에 등장인물에 대한 감탄 말고도 저자의 방대한 관심사와 이해력에 여러 번 감탄했다. 문화 비평가란 전공 수준의 이해 분야가 적어도 10여 개는 되어야 가능한 직업인가 보다.
오래 좋아했던 이는 더 좋아졌고, 새롭게 좋아하게 된 이들도 생겼다. 내게는 설레고 화려하고 실속도 있는 선물 같은 책이다. 덕분에 감사히 잘 읽었지만 번역은 해석과 문체에서 생경하고 아쉬운 부분들이 있었다.
원제는 Figuring이라는 더욱 도발적이고 담대한 제목이고 요약본과 해석본이 나와 있을 정도이니 내용의 풍부함과 깊이를 짐작해볼 수 있다. 영어책으로 책모임을 했으면 좋겠는데 - 극강의 도전을 요구했던 전공책들 읽어보신 경험들 있으니, 이 책은 정말 재밌게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원하시는 분들은 참여 의사를 미리 신청해 주십시오! 발표, 숙제, 비난, 절교 등등 없으며 ‘지성을 지닌 사람들끼리 친밀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라고 본문을 인용해본다. 읽고 느낀 점들 간략히 나누면 멋질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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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름다운 삶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성별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운명의 차이는 천공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이 땅 위의 문화의 작용에 따른 성별 구조에서 비롯된다.”
“우리가 습관적으로 잊곤 하는 한 가지를 알고 있었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을 상상하고 체계적인 노력을 통해 그 상상을 현실로 이루어낼 때 우리가 지닌 가능성의 범위가 확장된다는 사실이다. 중략. 이는 인간의 본성에 있습니다. 낭만으로 시작해서 현실로 지어나가는 능력이죠.”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최초로 인간의 자만심에 도전장을 내민 위대한 사상이다. 그 후 몇 세기에 걸쳐 세계 질서가 여러 차례 새롭게 편성되는 동안 인간의 자만심에 대한 도전은 진화론부터 시민권, 동성결혼까지 수없이 많은 형태로 모습을 바꾸어 나타난다. 이 모든 도전에 사회는 케플러의 고향 주민들이 보인 것과 비슷한 수준의 적대적인 반응을 보인다. 우주의중심이든 권력 구조의 중심이든, 중심에 있는 것은 그 대가로 진실을 희생할지언정 계속해서 중심에 남아 있어야 한다.”
“삶에 별빛을 섞으십시오. 그러면 하찮은 일에 마음이 괴롭지 않을 것입니다.”
“라플라스를 번역하고, <천계의 구조>를 발표한 이 여성은 최초의 과학자이다. 윌리엄 휴얼은 당시 흔하게 사용된 “과학의 남자man of science라는 표현을 적용할 수 없어 “과학자scientist”라는 말을 처음으로 고안해냈다.
“대화에 참가하는 데는 오직 한 가지 규칙만이 존재했다. 반드시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이었다.”
“별의 주요 구성 성분이 수소가스라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수소를 우주에서 가장 풍부한 원소의 지위에 올렸다.”
“천문대 계산자로 합류한 지 10년 만에 자신이 직접 분류한 1만 개 별의 분포를 기록한 400쪽에 이르는 일람표를 발표했다.”
“그녀의 계산 결과는 훗날 우주가 팽창한다는 에드윈 허블Edwin Hublle의 법칙을 증명하는 기초가 되었다.”
2.
“이 세계에서 남자 기사도는 소멸되었지만 여자는 마지막 순간까지 기사로서 편력을 이어나간다. 세르반테스가 좀 더 위대했더라면 돈키호테의 Don을 Dona로 썼을 텐데.”
“‘파랗다’라는 것은 파란 양말bluestocking에서 따온 표현으로 당시 지적인 여성, 정신의 삶을 누리기 위해 여성성과 가정을 희생했다고 여겨지는 여성을 경멸적으로 일컫는 말이었다.”
“호스머의 걸작은 처음 런던의 왕립미술원Royal Academy of Art에 전시되었다. 이곳에 여자가 학생으로 입학하기까지는 3년을 기다려야 한다. 중략. 이것에 여자가 교수로 입성하게 된 것은 2011년, 설립된 지 243년 만의 일이다.”
“누구를 희생해야 한다면 누구도 완전하게 자유롭고 고귀해질 수 없다. 중략. 하나의 창조적인 기운, 하나의 쉴 새 없는 폭로를 이어가도록 하자. 중략. 소외된 집단은 자신만의 노력으로는 사회의 중심으로 이동할 수 없다. 이것이 힘의 역설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힘과 특권에 가까이 있는, 같은 대의를 지닌 동류 집단이 이끌어주는 힘이 필요하다.”
“어떤 순간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음을 인식하면서도 그 순간의 풍부함과 달콤함이 흐려지지 않게 하려면, 그 순간을 더할 나위 없는 존재의 충만함으로 순수하게 누리려면 얼마나 마음이 단단해야 하는 것일까?”
“그런 시대에 메두사를 조각한다는 것은 선견지명이 있는 대담한 선택으로, 고대부터 여자를 보로해주지 않는 사법 제도의 끔찍한 결함과 피해자를 비난하는 사회를 고발하는 행동이었다. 모든 것을 피해자 탓으로 돌리는 문화는 사실상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
“지금 경제적으로 독립하게 되니 무시무시할 정도로 여자다운 기분이 들어. 왜 이렇게 거룩한 기분이 드는지 설명하기가 어렵네.”
3.
“재능이란, 애정의 연소이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지성이 아니라 헌신에서 비롯되는 고양감이다. 이를 할 수 있는 능력에 비례하여 우리는 재능을 경험한다.”
“삶이란 다른 삶과 얽힐 수밖에 없으며, 그 삶의 직물을 바깥에서 바라보아야만 인생의 핵심을 파고드는 질문에 어렴풋이나마 답을 구할 수 있다.”
“책을 닥치는 대로 읽어치우는 독자라면 정신의 바벨탑에 듀이 십진분류법 같은 것은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미로 같이 복잡한 서가 사이를 걷고 있으면 아주 오래 전에 읽은 방대하고 수많은 책을 덮고 있는 티끌에서 먼지를 뒤집어 쓴 토끼처럼 생각이 우리 앞으로 튀어나오는 법이다.”
“이 집의 한쪽에 종이 공장을 만들 겁니다. 그리고 내 책상 위로 풀스캡판 크기의 종이가 끊임없이 풀려나오게 만드는 겁니다. 그리고 그 끝없이 펼쳐지는 종이 위에 수천 가지, 수만 가지, 수억 가지 생각을 적을 겁니다. 전부 당신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형식으로 말이에요.”
“우리는 평생 우리 존재가 어디에서 끝나는지, 나머지 세계가 어디에서 시작되는지 알고자 애를 쓰며 살아간다. 우리는 존재의 동시성에서 삶의 정지 화면을 포착하기 위해 영원, 조화, 선형성이라는 환상에, 고정된 자아와 이해의 범위 안에서 펼쳐지는 인생이라는 환상에 기댄다. 그러면서 줄곧 우리는 우연을 선택이라 착각한다. 어떤 사물에 붙인 이름과 형식을 그 사물자체라 착각한다. 기록을 역사라 착각한다. 역사는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니며, 판단과 우연의 난파 속에서 살아남은 것들에 불과한데도.”
“허공에 성을 지어보지 못한 소년은 절대 땅 위에서도 성을 짓지 않게 됩니다. 중략. 꿈과 실천 그 어느 쪽도 희생하길 거부하고, 꿈꾸는 자와 실천하는 자로서 자신을 동등하게 엮어 존재의 충만함을 성취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중략. 또한 진실과 아름다움을 나누길 거부하면서 이 두 가지가 합쳐져 의미를 낳는다고 주장했다.”
“˝한 세기 반이 지난 후 어슐러 K. 르 귄(SF 소설의 대가)은 말한다. ˝말은 무언가를 하고 무언가를 바꾼다. 말은 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을 모두 변화시킨다. 말은 에너지를 전하고 되받으며 증폭시킨다. 말은 이해 혹은 감정을 전하고 되받으며 증폭시킨다.˝ 초월주의 운동에서 지고의 지성적 도구로 대화를 공식 채용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중략. 자유롭게 주고받는 말의 전류로 여성해방운동의 힘을 충전시킨 것도 의 공이다.”
“혁명가가 된다는 것은 곧 상상력을 펼친다는 뜻이다. 친숙한 것의 한계를 뛰어넘고, 새로운 질서를 머릿속에 그리며, 새로운 질서 안에서 얻게 될 것이 잃어버릴 것이 주는 잘못된 위안을 뒤덮고도 남을 것이라고 상상하는 일이다.”
4.
“우리 안의 모든 창조적인 힘과 수학적 계산과 사납게 날뛰는 사랑의 감정은 수천년에 걸쳐 진화해온 신경조직을 따라 1초에 24미터의 속도로 진동한다. 이 사실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정신의 작용 또한 일련의 전기 자극일 뿐이다.”
“공시성이란 외부에서 일어난 어떤 사건과 관찰자 내면에서 일어난 상황의 유사성과 비인과관계를 정리하는 체계이다. 어떤 사건을 경험한 관찰자는 자신의 주관적인 상황을 기반으로 자신과 그 사건의 연결고리를 찾는다. 즉 내면의 현실과 외부의 현실이 만나는 접점이라 할 수 있다.”
“국가의 진정한 부는 지구의 자원입니다. 바로 흙, 물, 숲, 광물, 야생생물들입니다. 미래의 세대를 위해 이 자원을 보존해야 하는 한편 이 자원을 현재의 필요에 따라 이용하려면 폭넓은 연구에 기반을 두고 정교하게 균형을 잡을 수 있으며 지속적으로 운용될 수 있는 계획이 필요합니다. 자연 자원의 운용이 정치적 문제가 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뿐더러 그래서도 안 됩니다.”
“반쪽짜리 진실의 안정제를 먹인다. 중략. 거짓된 확신을 어떻게든 끝장내야 한다. 입에 맞지 않는 불쾌한 진실에 대한 사탕발림을 끝장내야 한다. 중략. 시간과 공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미칠 결과를 진지하게 고찰하면서 단기 이익만을 생각하는 기업 세력들의 고질적인 질병을 비판했다.”
“권력이 부패할 때 시인은 정화에 나섭니다. 시와 과학을 서로 나누어 생각하기를 거부하며 살아온 카슨은 자신의 두 가지 재능을 결합해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권력의 정화하는 업적을 이루었다.”
“재능으로 세계의 일원이 되었다. 나는 재능으로 세계에 속한다는 실존적인 상태가 인생을 실현하는데 가장 단순하면서 가장 완벽한 방법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우리의 작디작은 세계를 아득히 먼 곳에서 찍은 이 사진보다 인간의 자만심과 어리석음을 증명하는 훌륭한 증거도 없을 것이다. 나는 이 사진을 보며 우리가 서로에게 좀 더 친절해야 한다는 책임을, 이 창백한 푸른 점을 보존하고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책임을 다짐한다. 이곳은 우리가 알고 있는 유일한 고향이기 때문이다.”
“우리를 둘러싼 우주의 신비와 현실에 우리가 좀 더 분명하게 주의를 기울일수록 파괴를 향한 인류의 성향이 약화될 것입니다. 중략. 경탄하는 마음과 겸허한 마음은 건강한 감정입니다. 이 감정은 파괴에 대한 욕망과 나란히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제 겨우 이해하기 시작한 아주 오래된 시간을 배경 삼아 마치 깜박이는 찰나 같은 우리 일생을 생각하니 불현 듯 우리 존재의 덧없음이 우리를 아프게 찌른다. 우리는 혼돈과 엔트로피가 혼재하는 우주의 강물 위에서 아주 잠깐 섬을 이루었다가 다시 비존재를 향해 영원히 떠내려가는 존재일 뿐이다.”
“나도 죽으리라. 당신도 죽으리라. 우주적 관점에서 아주 잠깐 자아의 그림자 주위로 뭉쳤던 원자들은 우리를 만들어 낸 바다로 돌아가게 되리라. 우리 중에 살아남게 될 것은 기슭 없는 씨앗과 우주먼지 뿐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