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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웃어주지 않기로 했다 - 친절함과 상냥함이 여성의 디폴트가 아닌 세상을 위해
최지미 지음 / 카시오페아 / 2021년 3월
평점 :
나와 큰 접점도 없는 사람들에게 받은 ‘착하고 괜찮은 여성’이라는 인정과 타이틀로는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기프티콘 하나조차 바꿔 먹을 수도 없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차라리 웃어주지 않는 여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중략. 더 이상 요구가 지나친 이 세상에 맞춰줄 생각은 없다. 중략. 라벨링하거나 말거나, 그저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갈 것이다.
이 책은 표지가 맘에 들었다. 저 채도의 빨간색은 다소 어려웠지만 운동화를 신고 바지를 입은 여성이 훌쩍 높이 멀리 뛰어 유리천장을 깨는 모습이 그야말로 시원했다. 의식하지 않았는데 긴 숨이 큰 소리처럼 새어 나왔다.
긴 제목 외에도, ‘친절함과 상냥함이 여성의 디폴트가 아닌 세상을 위해’란 부제와, ‘개소리는 음소거하고, 내 안의 목소리를 내는 법’, 뒤표지의 ‘당신이 참으면 상대는 용기를 얻는다’란 문장들이 사방을 둘러 싼 병사처럼 성벽처럼 무기처럼 배치되었다. 메시지는 선명할 것이다. 이런 책을 읽으면 내가 갖지 못한 에너지 레벨에 잠시 접속하는 듯 기운이 난다.
위풍당당한 목차는 대응, 무시, 중심, 연대로 직진 주행을 한다. 길을 잃을 염려 없이 같이 시원하게 달려볼 수 있는, 자주 만날 수 없는 일독에 다 이해시켜주는 책일 지도 모른다.
핵심은 ‘상대방의 공격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쩔쩔 맨다’는 뉘앙스를 주기보다 ‘불편한 침묵을 만듦으로써 상대의 발언이 잘못됐음을 전하고 차갑고 싸한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다. 생각보다 간단히 할 수 있다. 무표정한 얼굴로 상대의 눈을 3초간 빤히 바라보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가 “농담인데 왜 안 웃느냐”는 식의 적반하장으로 나온다면 “농담이면 재미있어야죠. 좀 재미있게 해보세요”라고 말하자. 받아들이는 상대가 기분이 나쁘다면 그것은 이미 농담이 아니다. 무례함을 웃어넘겨주다 보면 무례함은 계속될 것이며, 결국 나만 다칠 뿐이다.
김수미의 시방상담소에서
당찬 제안이다. 깊은 이해와 측은지심을 염두에 두고 살고 싶었던 마음에 자주 해보진 않았지만, 간혹 심신 상태가 난조이고 다른 이유로 지쳐서 인내심이 없는 날, 배려고 뭐고 계속 이럴 거면 이딴 세상 다 망해버리든지 싶은 심정인 날, 침묵시위를 한 적이 수차례 있다. 절친들 조차 웃지 않는 옆얼굴만으로 수군댈 살벌한 인상이란 정평이 있으므로, 작정하면 언어 없이도 의사전달은 확실히 할 수 있다.
사회는 먹고 싶은 걸 다 먹으면서 운동했다간 ‘건강한 돼지’가 되고 말 거라고 조롱했다. 그렇다면 여성은 건강한 돼지가 될 바에 건강하지 않은 사슴이 되는 편이 맞다는 건가?
체력이 가장 중요한 시기는 생각보다 빨리 온다. 부디 건강한 식사 잘 챙겨 드시고 가능한 부지런히 근육을 키우시길!
사회가 정의한 표준에서 벗어난 삶들을 살아가는 여성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야망으로 득실거리는 여성의 삶. 자신만의 삶을 영위하는 어느 40대 여성의 일상. 욕망으로 가득한 노년의 사랑. 인생에 오직 한 가지 길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란 걸, 생각보다 다양한 옵션이 있다는 것을 우리 여성 모두가 깨달을 수 있도록 떠들어야 한다.
적어도 눈길을 막 흘기진 않았으면 한다. 일면 여성들은 서로에게 너무 자주 옆 눈길만 보내며 살기도 하니까.
오랜 고민 끝에 임신과 출산을 하지 않기로 한 내 선택이 전체주의 사상에 따르지 않는 이기적인 것으로 치부된다면, 그냥 이기적인 사람이 되겠다. 여성에게 임신과 출산은 온전한 개인의 선택이며 나는 세상에 아기를 빚진 적도 없다.
빌 게이츠도 경험할 수 없는 일, 임신과 출산은 여성의 육체가 독점하는 일이고, 부디 이 감탄스럽고 경이로운 경험이 온전하게 당사자의 몫이 되길 끝까지 응원한다.
내 꿈은 철없는 이모가 되는 것이다. 아마 주변에 이런 이모가 한 명쯤 있으면 좋지 않을까. 중략. 얼마간 안 보이는가 싶었는데 남태평양에 있는 어느 섬에 다녀왔다며 까맣게 그을려서 나타나고 친척 어른들에게 샤르도네 와인을 너무 많이 마신다는 의심을 사는 이모, 누군가는 혀를 끌끌 차지만 고등학생 조카들에게는 인기 만점인 그런 이모 말이다. 엄마가 되는 것이 디폴트인 세상에서 우리에게는 좀 더 많은 쿨한 이모들이 필요하다. 여성들에게 더욱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꽤나 많아지는 분위기인데, 골드 미스, 골드 미스터인지 뭔지 하는 우습지도 않은 호칭들은 얼른 꽉꽉 밟아 버려 주길!
어렸을 때만 해도 단단한 자존감을 세우지 못한 나를 책망했던 것도 같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중략. 자존감은 사실 별거 아니고 스스로와 관계를 맺으며 ‘이 인간 말이야, 완전무결한 건 아니지만 이 정도면 괜찮지 않아?’라고 평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예전 같았으면 비수를 꽂는 말을 들으면 잘 때까지 그 말을 곱씹었을 텐데, 지금은 코웃음 치며 지나치는 여유가 생겼다.
출처: https://www.pinterest.co.kr
당신이 좀 더 재수 없어지길, 이겨먹길, 하고 싶은 건 다 하고 살길 바란다. 흘러가는 시간에 몸을 담근 채 그저 가만히 서 있지 않고 적극적으로 물살을 가르며 삶을 살아내자. 중략. 당신 스스로가 정의 내린 모습으로 존재하자.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당신을 불편하게 하는 감정들을 입 밖에 꺼내는 것부터 시작하자.
물살을 가르는 건 힘겹게 느껴지는 표현이지만 일단 꾹 참고만 살지는 말자. 대면해서 당사자에게 정확한 의사 전달이 어렵다면 블로그에 글이라도 남기자. 읽게 된 누군가 공감과 댓글로 위로와 격려를 전할 수도 있지 않은가.
진지하고 어려운 이론에 기초한 글들 말고 용감하게 사회에서 이리 저리 부딪히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적어도 불편함과 불쾌함에 대해서는 시원하게 설명해주는 효용성 높은 글이라 평하고 싶다. '그렇구나, 그거였구나', 그렇게 재밌어할 독자들을 상상해본다. 도대체, 남에게 웃어라 마라, 이런 무례는 누가 허락해준 일인지. 얼른 얼른 과거의 유물이 되길.
“웃어 봐라, 용돈 줄게” 이런 극강의 모욕적인 말을 들어본 경험자로서 여러 일화들에 공감한다. 이 역겹고 무례한 발화자는 내가 졸업한 후 여러 해 지나 학생 성추행으로 직권면직 당했다. 어째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았는지 분했고, 다시 여러 해가 지나 다른 대학에 어찌저찌 취직했다는 소식을 듣고 기가 막혔다. 비릿하고 음침한 남성연대는 때론 만리장성급이다.
저자의 꿈은 ‘꿈은 여전히 제멋대로 살고 바운더리 밖으로 용감하게 진출하고, 그러다가 쪽을 당하더라도 금방 다시 회복하는 그런 멋진 할머니가 되는 것’이라 한다. 이 중 지금은 회복력이 가장 탐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