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게 갔었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책 내용보다 작가의 근황이 궁금하여 읽기로 결정한 책이었다결론이 난 일이지만 존경과 사랑과 감사를 모두 거둬들일 순 없었던한 시절을 갖가지 감정들로 채워주던 신경숙을 다시 만나보고 싶었다그래서 다소 복잡한 심정으로 불안과 기대가 어지럽게 교차하는 기분으로 책을 열었다.

 

문장들이 담백해서 호흡이 곧 안정이 된다여전히 촘촘하고 정교하고 서두르거나 자극적으로 감정을 달구지도 않고통찰력과 정서는 비슷한 듯 다르게 절절하다.

 

가령, ‘그 집을 떠나본 적이 없는 흙먼지 같은 일생을 살기도 하는 게 인간의 삶이기도 하다.’ 평범한 문장에 별 다른 일이 아닌 듯도 한데마음이 잠시 흙먼지처럼 부옇게 되고 만다.

 

그리고 어젯밤엔 문득 내가 아버지를 보호하러 왔는지 내가 보호받기 위해 왔는지 구분이 안 될 만큼 불안해져 나는 작은 방 책꽂이에 꽂힌 내 오래된 책들 앞을 서성거렸다.’

 

이 문장은 괴이하게도 내 전생의 장면인 듯, 내가 본 영화의 장면을 기억해내듯 심상으로 빠르게 전환되었다친했지만 너무 오랜만이라 잠시 어색했던 이를 금방 알아보고 기억해내듯 신경숙의 글이 스며들어왔다.

 

딸을 잃은 작가가 고향에 계신 아버지를 찾아가 함께 지낸 이야기이다문득 신경숙 작가도 글을 잃고 찾아갈 고향과 아버지가 계셨을까 뒤늦게 잠시 궁금해본다찬찬히 살펴보면 이 글에서 그의 그간의 세상살이들을 오롯이 다 보게 될 것도 같았다.

 

바쁜 시간에 어쨌든 쉼표가 찍혔고 순전히 내 짐작일 뿐이지만 그 시간의 틈에서 지나온 생을 분명 한번쯤은 훑어보게 되었을 것이다온전히 혼자 살아온 삶이 아니니 가족과 고향과 이웃들을또 그들과 얽히고설킨 많은 이들을 떠올렸을 것이다그러다보니 아버지의 비밀도유년시절의 기억들도고향의 풍경들도고향집에 남은 추억들도동네사람들의 모습도 체온과 체취가 고스란히 느껴질 듯 그렇게 되돌아오지 않았나 싶다사진을 찍은 듯한 묘사와 서사들이 빼곡하다.

 

오래 슬퍼하지는 말어라잉.

우리도 여태 헤맸고나.

모두들 각자 그르케 헤매다가 가는 것이 이 세상잉게.

 

할머니들은 내 곁으로 바투 다가와서 손을 잡고 어깨를 만지고 머리를 쓰다듬고 등을 두드렸다나는 산보를 하다가 할머니들에 에워싸여 느닷없는 위로를 받고 있었다내 마음에 팬 것들이 흐릿하게 뭉개지는 느낌이었다.

 

중간에 읽지 않고 덮을 수 있는 그런 힘없는 글이 아니라서 반가움과 안도감이 동시에 든다출간작부터 신경숙문체라고 느껴지던 문체는 거의 그대로이다아주 새로웠다면 섭섭했을 것이니 새롭지 않다고 실망스럽지는 않다.

 

모든 걸 다 계획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꺼낸 화제처럼 이야기가 전개되니느긋한 산책길에 잠시 의자에 앉아 친구랑 이런 저런 얘기를 오래 나눈 느낌이 든다부모님은 별 일 없으시냐고 물었다가뜻밖에 모르던 일화를 듣게 된 기분날씨가 좋아서 울컥 슬퍼지지도 않고 바람이 좋아서 화가 치밀지도 않고그냥 다들 그런 슬픔이 있지힘들고 아팠겠다그렇게 차분히 건네는 위로 같은 분위기.

 

어떤 사실들은 때로 믿기지 않을 만큼 비현실적이라 시간이 흘러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끝내 사실일까싶은 의문과 회의가 든다어떻게 그런 일이싶어서 사실이 우연이나 조작에 의한 것처럼 보이고 어떤 형식에 맞추기 위해 도식을 끌어온 것처럼 여겨지며 상상에 의한 허구가 오히려 사실처럼 느껴진다.

 

단죄도 비난도 판단도 아무 이유도 의도도 없었지만소설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자꾸만 작가의 모습을 찾아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 끝끝내 방해가 되었다신경숙은 자신의 서사를 아주 소중하게 작품에 담는 이라는 것을 기억하기 때문이라고그 버릇 탓이라고 변명해본다.

 

어쨌든 나는 이 책을 결국 오독하고 만 것 같다.

 

꽉 짜인 미스터리서스펜스스릴러추리 작품이 아니라면 반갑지만은 않은 분량의전혀 끌리지 않는 제목의 책을 신경숙이란 이름에 붙잡혀 읽었다.

 

마음이 뻐근하다.

 

그가 이렇게 돌아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