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잖아, 다음에는 책방에서 만나자
김지선 지음 / 새벽감성 / 2021년 2월
평점 :
절판



말갛고 보드라울 것 같은 표정의 책이 도착했다.

베이비 핑크가 옅게 퍼진 표지에 이렇게 귀여운 곰돌이가 담긴 책을 읽어본 적이 있었을까.

손에 잡히는 무게조차 포근하다.

표지 글씨를 가만 보면 타닥타닥 타이핑 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소설이라고누군가의 일기장일 것만 같은 분위기이다.

 

무엇을 얻는다는 것은 무엇을 잃는다는 것과 같다책방의 책들은 종별로 한 두권많아야 다섯 권 정도만 갖추고 있는 책방이라서 하나의 책이 판매가 완료되면 그 자리는 새로운 책이 차지한다.”

 

두 걸음이면 충분하다는 작은 책방이라지만다락방도 고양이도 있다.

 

책방이 다락방까지 연장된 장소라니,

작가와의 만남도주제가 정해지면 모이는 모임도티타임과 수다타임도

낮잠을 자고 간다고 청하는 손님도 있다니,

 

사장은 참 다양한 모임을 만들었다얼마 전엔 공기 반 소리 반이라는 주제로 공기 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는데정말인지 공기 대회에서 사람들의 수다가 반이었다사장이 만들어 낸 모임 명이 기가 막히게 잘 어울리는 시간이었다수다의 절반은 공기놀이의 룰에 관한 거였다.”

 

한적한 골목간판 없는 작은 책방이라는데 다들 아시고 살뜰하게 즐기시는 일상이 뜨겁게 부러웠다.

 

어릴 적엔 문구점 주인좀 더 커서는 서점 혹은 북카페 주인꿈을 이루기 위해 아무 것도 애써 노력하지 않았지만, ‘이라고 하면 여전히 순위 안에 당당 자리하는 모습이다대신 문구와 책들이 가득한 대형서점을 신이 닳도록 다니는 것으로 욕구를 채워 왔달까들어가면 나오지 못하는 마의 공간매번 똑같은 고민을 하는 안타까운 나그래도 덕분에 갖가지 추억이 가득하다늘 그곳으로 만나러 나와 주던 친구들 보고 싶네.

 

서점을 하게 되면 제가 원하는 것좋아하는 소품과 간식과 음료만 잔뜩 쟁여 둔 엄청나게 불친절한 서점 주인이 될 것 같고편견과 편애로 공기가 무거운 사적 취향 가득한 책들만 가득할 것 같지만안 맞으면 서로 안 만나고 사는 거지이런 속 시원하고 후회 없는 태도로 삶을 살아볼 수 있지 않을까……참 신나는 상상이다.

 

사장은 책방에는 다양한 카테고리가 있다고 답했다어떤 곳엔 책을 사러 가고 어떤 곳엔 책을 읽으러 가고 어떤 곳엔 책을 쓰러 가고 어떤 곳엔 책이 있어 그냥 좋은 거라고.”

 

적요한데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 아는한적한 곳인데 햇볕은 잘 드는작은 공간인데 유리창 밖의 풍경은 널찍한방문한 누구나 둘러보면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하는책이 잘 읽히고 글이 잘 써지는그런 서점을 그려본다.

 

자꾸만 상상을 하다 보니 백만 년 만에 그냥 있어도 심장이 두근두근 거리는 게 느껴지고 행복해진다책 사는 거책 읽는 거책 쓰는 거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오고 가는 공간을 지키고 유지하고 사는 일.

행복한 상상의 끝에 후유증이 크고 오래갈까 두렵다.

 

책에 대해 잘 모르고작가에 대해 잘 모르는 내가 일 년 넘게 책방에서 일하면서 느끼는 것은 모든 책은 책마다 좋은 점이 분명 다 있다는 점이다.”

 

이 구절을 읽으며 나는 내가 좋아하는 구절이 떠올랐다.

 

본전 생각만 하지 않는다면 모든 책에서 얼마간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

독서에 관한 한 냉철한 낙천주의자가 되고 싶은 그는 일개 평범한 독자일 뿐이다.”

누가 커트 코베인을 죽였는가』 김경욱

 

간혹 서평글을 쓰면서 별을 네 개 표시하면 친한 이들은 그 의미를 알고 말을 건다무슨 일이냐고

읽으라고 만든 책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은 생각 없이 다 읽히면 별 다섯 개적어도 별 숫자로 다른 평가는 할 수 없다


그리고 나만 읽을 수 없는 글이라는 가능성이 언제나 있으니내가 받은 느낌이 무슨 대단한 평가씩이나 될까그저 이런 기분이 들더라그 정도만 적을 수 있는 것이 서평의 정체가 아닐까 싶다.

 

내가 일하는 동안 한 번이라고 책방에 들렀다면 당신의 이야기가 이 책 속에 담겨있을지 모른다아직 책방에 오지 않았어도 괜찮다다음 책엔 당신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으니 언제든 놀러 와 주라내가 일하는 동안에.”

 

놀러와 주라!

 

이 표현만큼 강렬한 제안을 당분간 찾지 못할 터이다.

 

놀러 가서 한참을 놀고 싶다.



그리고 참,

 

사장님책을 내는 작가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거예요?” 새벽 네 시를 지나 아침으로 향하는 시간이 시간이 이상한 걸까누군가는 꿈을 꾸고 있을 이 시간에 잠을 자고 있지 않으면 현실에서 꿈을 꾸게 되는 걸까문득 책을 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사장에게 물었다.”

 

이건 에세이다뭐가 실제로 일어난 일인지 찾아보자하는 마음이 설핏 든 순간도 있었지만곰돌이의 심리를 진지하게 살피고 그 변화를 알게 되니 이건 소설이야로 판단이 순식간에 바뀌었다모든 것이 환상 장치 같기도 하고 긴 초대장 같기도 하고 서점 브로슈어 같기도 한묘하게 매력적인 소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