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력 - 자주 말문이 막히는 당신에게
이도영 지음 / 창비교육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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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 좋아하는 두 분 변영주 감독과 정준희 교수가 뉴스타파에서 만든 영화 족벌 두 신문 이야기를 보고 관련 이야기를 나누는 영상을 보고 나서 어쩌다보니 바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언어력에 관한 정확하고 상세한 나만의 정의는 없지만그렇다고 하더라도언어력에 관한 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두 분의 이야기를 듣고 난 뒤라읽는 내내 기분은 양 극단의 방향으로 줄다리기를 했다.

 

인간의 언어력이 예술의 경지라 해도 과할지 않을 정도로 인간 정신의 아름다운 완결적 형식미를 갖춘 전달 능력인 한 방향과이 나이에도 가장 하고 싶은 말조차 간명하게 전하지 못하는 내가 서 있는 방향으로.

 

우리 모두는 어떤 형태로든 언어의 세계에 살고 있다. 혹시 장애가 있다면 직접 경험의 범위가 한정될 수도 있지만눈을 뜨면서 다시 잠들 때까지 온갖 종류의 언어들에 노출되고 언어활동을 계속하며 살고 있다심지어 꿈에서조차 언어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문제는 그렇다고 평생 연습하고 사용한 언어에 모두가 능숙하지만은 않다는 기막힌 현실이다억울한 마음이 먼저 들지만호소를 하거나 화를 낸다고 바뀌는 것은 없으니 능력이든 기술이든 필요한 것들을 갖추어야 원하는 삶이 가능해진다.

 

뒤늦게 모국어를 제대로 배워 보겠다고 한 나에게 지인들은 정답을 가르쳐 주었다많이 읽고 많이 쓰라고.

 

무슨 배짱인지 그 정답을 두고 나는 한국어능력시험준비를 시작했다그러다 한자능력시험도 보고 한국어강사자격시험도 보고 대학에서 강의도 하고자격증은 늘어났지만 언어력은 요지부동더 어색해지기만 했다거의 모든 문장이 비문 폭탄이랄까.

 

언어 구사력이 문제인데 어휘력만 늘려보려 했으니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수년이 지나고 테스트로 할 수 있는 방법이 고갈되니 대안이 없어서 읽고 쓰기를 시작했다올 해는 매일 읽고 쓰는 것을 새해 결심으로 삼았다.

 

여전히 번역된 책들 중 일부는 영어책 원본이 더 쉽게 읽히는 경우가 꽤 있다한국어는 참 어렵다감을 못 잡는 것인지 맞춤법은 아무 진전이 없고 서너 번을 읽어도 늘 오타가 남는다.

 

시간을 보내지 않은 분야들의 책을 많이 읽다보니 용어들에 적응하는 데에도 꽤 시간이 걸리는 분야들도 많다인문/사회과학 전공자 분들 많이 부럽습니다. 언어가 정리되지 않으니 그 분야에 대한 사고 역시 갈팡질팡누덕누덕하다어쨌든 훈련 중이다그러니 이런 효과가 있다는 말에 귀가 온통 솔깃하다.



 

갑론을박 끝에 현재는 언어와 사고는 같지 않되언어가 사고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에는 다들 동의합니다우리는 특정한 언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습니다그러다 보니 그 언어에 영향을 받아 그 언어의 사고법을 부지불식간 받아들입니다.”

 

편하든 불편하든우리는 대화할 때 상대방의 나이지위직업친밀감 등을 고려해서 말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상대방을 의식하는 거죠그러다 보면 존경비하겸양차별수직적 관계’ 등과 관련된 사고가 내면화됩니다한국어 사용자의 숙명이라고나 할까요.”

 

특정한 단어를 계속해서 사용하지 못하면 그 단어가 의미했던 개념도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우리는 어쩔 수 없이 언어를 사용하여 사고를 갈고 닦을 수밖에 없습니다우리말이 소중한 이유죠거의 유일한 사고의 도구가 아닌가요?”

 

현재 교육학을 가르치는 분이라서인지책 내용이 친절하고 배려가 넘친다아주 친근한 매체들가요 가사나 문학의 구절을 소개하며 조용히 독자를 이끈다혹시나 집중력이 떨어질까 중간에 무척 기분 좋게 풀고 자신감을 얻을 수 있는 문제들을 풀어 보도록 배치해 두었다테스트에 익숙한 세대라 정말 기분이 좋아진다.

 

한 조사에 따르면듣기는 우리 언어생활의 50퍼센트 정도를 차지한다고 해요우리가 알고 있는 것의 85퍼센트는 들어서 안 것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죠듣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에너지도 꽤 많이 소비하고 고도로 집중해야 하는 일이지요


전문적으로 말하면능동적 이해 활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영어에서는 들리기’(hearing)와 듣기(listening)를 구분하고 있습니다사람들이 손쉽게 잘하는 듣기는 hearing이죠. listening을 잘 해야 하는데 말이지요


잘 들으면 인생 전환도 가능합니다.”

 

수다와 유머로 위장한 새로운 정보들이 가득하고 도전 욕구를 채워주는 난이도의 내용들이 뇌를 자극한다내 언어력에 집중하기보다 자연스레 느껴지는 저자의 언어력에 감탄하며 읽는다이 책을 교재로 한 학기 정도 수업을 받으면 더없이 좋겠다는자꾸만 체제 교육으로 향하고픈 기분이 또 들었다.

 

유익한 정보와 팁을 제공하는 실용서의 수준을 훌쩍 뛰어 넘어자신의 언어생활을 민감하게 살피고 남에게 차별을 행하고 있는지 고민하는 저자의 글이라 마음이 편하고 행복해진다.

 

장애우라는 단어의 차별적 내용에 대해서는 십여 년전 활발한 토론에 참여한 기억이 나는데맙소사아직 사용 중인 줄 몰랐다역시 사회 전체의 변화란 획기적인 계기로 소문이 크게 나지 않으면 참으로 더디게 이루어지는구나 새삼 절감한다.

 

가장 새롭고 특이한 용어는 집사람아내와이프 대신 현려자(현재 반려자)’라는 단어를 사용하신다는 것이었는데뭔가 세상 현실적이고 적확한 표현에 웃음이 크게 났다폭력과 혼란을 지양하고 책임감 있는 언어생활을 하자고 독려하고더 따뜻한 공동체를 같이 만들어 보자는 말을 재밌게 조용히 차분하게 따뜻하게 하는 분의 언어이니당분간 기회가 닿을 때마다 소개해보려 한다#현려자

 

언젠가 다른 책에서 말이란 원래 적과 아군을 판단하기 위해 탄생한 도구라는 내용을 읽은 기억이 난다문화사회적 배경을 이해해야하지만 일부는 동의한다어쨌든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이 책의 저자 이도영 교수는 물리적 폭력 없이 모든 문제를 언어로 해결하는 사회를 꿈꿔봅니다.”라고 뜻을 밝히셨는데나는 물리적 폭력 이외에 다른 폭력도 한 번에 다 없어졌으면 하고 정월대보름을 맞아 큰 꿈을 바라본다물론 물리적 폭력은 확실히 가장 먼저 없어졌으면 한다.

 

무척 재밌게 읽었지만 내 언어력이 환골탈태한 효과는 아직더 잘 이해해서 기억하고픈 문장들만 잔뜩 생겼다그나마 밑줄 긋는 버릇이 없어 책이 멀쩡하게 살아남았다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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