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A, 중도 하차합니다 오늘의 청소년 문학 29
김지숙 지음 / 다른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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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상처는 깊어서 극복할 수 없기도 해그럴 땐 같이 살아가야만 하지.”

 

청소년 도서를 좋아해서 자주 읽는데참 이상한 경험은 나의 경험과 전혀 다른데도 어딘가 닮은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구체적인 내용들이 달라도 우리 모두가 한 시절성장하느라 실수도 하고 상처도 받고 다양한 고민에 빠지기도 하는 경험을 공유하기 때문인가 싶다.

 

어린이청소년청년어른 누구를 막론하고 모두 진지하게 자기 삶을 살려고 노력한다그러니 특정 연령층을 성급하게 일반화해서 이러저런 평을 하는 것은 지양해야할 일이다그런 말들은 너무 손쉬워서 싫다.

 

한편다른 연령층을 잘 이해하고 싶어도 아는 바가 없어서몰라서 못하는 일도 많다그런 면에서 김지숙 작가의 이 작품은 내게는 청소년들의 모습을 세세히 살펴보고 그들만의 분위기와 문화와 고민들을 느껴볼 수 있는 참 반가운 기회였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잔인했다그곳에는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생사를 결정하는 사람들만 존재했다살아남은 사람들은 기뻐서 울고떨어진 사람들은 억울하고 아쉬워서 울었다결국 모두가 울었다이 과정을 마지막 한 명이 남을 때까지 반복했다보면 볼수록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못생기고 서툰 사람들의 존재감은 사라지고예쁘고 매력적인 사람들만 살아남았다.”

 

특히 이 작품에는 나로서는 거의 처음 접한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한 아이들의 관심아이돌을 좋아하는 감정의 농도인터넷 댓글을 아이들이 활용하는 문화가 소재로 활용되어 개안을 하듯 읽어 나갔다또한 매력적인 타로 점술가 나나 언니의 인상적인 역할 덕분에이런 타로 점술가 현실에는 없나 잠시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미래를 만드는 게 바로 현재의 선택이야그런 사람들은 현재의 자신이 뭘 원하는지 모르잖아네 말대로 자기 마음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건 자기 자신이야모든 사람은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는 자신만의 수단이 있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야타로가 될 수도 있고음악이든 그림이든 글이든뭐든 좋지.”

 

왕따다이어트가난자살 등 각자의 기억에 묻어 둔 말할 수 없었던 비밀과 상처들을 지닌 채 자신들의 십대를 반추하며 불안하게 일상을 견디는 이들이 있다작가는 이런 상태의 원인을 차근차근 짚어 올라가듯 아이들이 하는 행동다소 극단적인 행동 이면을 들여다본다.

 

누군가 왕따를 만들기로 하면 왕따가 되는 것이었다나는 아무런 마음의 준비 없이 왕따가 되었다하긴누가 그런 걸 준비할 수 있었겠나.”

 

돈 있을 때는 들러붙던 놈들이아빠가 좁은 거실에서 술을 마시면서 한탄조로 말하면 우린 하나뿐인 방에 모여서 꼼짝없이 그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우리 집은 너무 작아서 각자의 불행을 숨길 공간이 없었다.”

 

어떤 과거로부터 비롯된 오해나 상처가 있는지자신들의 실수를 후회하고 지속적인 심리적 고통을 받는 그 마음들을 작가가 차분하게 드러내 보여준다따끔거리며 아프지만 읽다 보면 작가가 마련한 따뜻한 위로를 느낄 수 있다.

 

세상에는 고장 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상처 난 부분을 회복시키는 데 온 시간과 정성을 쏟는 사람들도 있었다그래서 세상은 그럭저럭 흘러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현실에서 때로는 수년간 아이들 사이에 놀림이나 가학적인 따돌림이 일어나고 있음에도 교사나 부모가 전혀 눈치를 못 채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특히나 언어로 가해지는 폭력인 경우에는.

 

몇 년간 그런 환경에서 견디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그 심정이 어떨지 너무나 마음이 아프다설사 개중 몇 건이 적발되었다고 해도 재발과 새로운 사건 발생의 가능성은 언제나 있으니 참 조마조마하다나는 표지를 보고 마음이 덜컥거렸다.

 

살면서 언제가 가장 힘들었냐고 물으면각자의 대답은 다르겠지만개중에는 십대라고 답할 이들도 많을 것이다지금의 십대 아이들은 어떻게 혼란스러운지 작가의 담담하지만 시종여일 진지한 분위기에 빠져 조용히 호흡하며 굉장히 집중해서 끝까지 읽었다과장이 없어 좋았다.

 

만약 가해자이자 버팀목이자 피해자이기도 한 혼돈과 불안의 시절을 견디는자신의 심정을 누군가 이해해주기 바라는 청소년이 이 책을 만난다면 분명 진심으로 내민 위로의 손길을 알아차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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