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우리집
미나코 알케트비 지음, 전화윤 옮김 / 난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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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의미로 기억에 남는 영화들 중에는 over-dramatised 혹은 under-dramatised란 느낌이 드는 작품들이 있다. 1800년 대 고단한 삶에 지친 농부들이 막 욕실에서 나온 것처럼 아주 깔끔 깨끗하고 빛나 보일 때그 장면은 20여 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뇌리에 꽤나 생생하게 남아있다.



<사막의 우리집>의 가족들이 등장할 때마다 그때처럼 의아하고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견디지 못하고 사진작가인 친구에게 도움을 청했다사진 속의 피사체로서의 존재들이 dramatised된 것 맞냐고 물었더니크게 웃으며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교양강좌같은 내용을 다 삼키고 한 마디로 하면동물을 목격(?)한 내 경험이 갇힌묶인도시 생활에 적응된요컨대야생성에서 멀리 떨어진 개체로서의 동물을 보는 일에 익숙해져서 그렇다고 한다여러 가지 건강 문제가 있고간혹 슬프거나 우울하고간혹 영향상태가 나쁘거나 정신적으로 포기해서 털의 윤기조차 사라진 동물들과는 달라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고 한다.

 

신뢰하는 친구의 말이 아니라면 좀 더 의심해볼만 하지만나는 대신 내 뇌가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에 충격을 받았다그리고 슬프고 서운했다아름다운 동물들을 보고 살 기회가 드문 삶을 사는구나그랬구나



눈빛이 맑고 밝아서 감정 상태가 보이는 표정의 동물들몸짓에 경직이나 두려움이 없이 느긋하고 기쁜 동물들적의나 폭력이나 오해와 같은 의사소통의 불확실성이 없는 관계있는 힘껏 친구를 신뢰하며 계속 넘겨다본 장면에는 정말 믿을 수 없는 모습들이 담겨 있었다.

 

어릴 적 확실한 애정을 느끼고 믿고 아무 의심도 하지 않고 살아본 경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점점 더 나는 합리적 의심을 신중함으로 여기는 버릇이 들었다그래도 의사소통이 어려우니 동물은 동물이라고 인정하는 것이 서로에게도 더 편한 일이지 않을까그런 태도를 지지하는 편이었다.

 

친구와의 오랜 대화 속에서 알고 있었지만 잊고 싶었다고 애써 순화시키고 싶은 경험은, ‘언어를 사용해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동종 인간들과의 사이에서 무수한 오해와 불통이 더 많았다는 점이다심지어 그 언어가 한국어라고 할지라도


유일하게 억지와 혼란이 없었던 언어는 언제나 수학뿐이었다그래서 나는 최루탄을 너무 많이 마셨을 때도슬픔이 가득할 때도두통이 그치지 않을 때도불안이 팽창할 때도물리학의 이야기를 차려입은 수학을 몇 장씩 풀며 진정을 했던 것 같다.



사막에 가고 싶다.

 

예전처럼 멍청하게 한 겨울 이집트 피라미드나 찾아 나서지 말고,

 

자연스러운 모습들이 가득한 사막에 가고 싶다,

 

맑고 바람이 잔잔하고 노을이 차분한 참 좋은 날엔

사막에 누워 밤새 밤하늘을별들을공간을우주를 쳐다보고 싶다.

 

밤이 지나고 잠이 깨면별빛을 닮은 이런 눈빛과 표정을 동물들을 만나고 싶다.

 

사락사락 모래를 헤쳐 밟으며 이들과 하릴없이 걸어 다녀보고 싶다.

 

계절에 따라 하늘의 색도 사막에 남는 발자국도 달라진다는 것,

아침에 보름달이 고요하게 지평선 너머로 진다는 것,

아무것도 없는 듯 보여도 이 사막에는 많은 생명이 숨쉬고 있다는 것,

만나야할 가족과 만나서 있어야 할 곳에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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