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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시험은 왜 치나요?
이윤섭 지음 / 지식과감성# / 2021년 1월
평점 :
‘시험은 왜 치나요?’란 질문을 처음 한 것은 언제인지 정확한 기억은 안 나지만, 학창시절은 늘 시험을 통한 평가로 이루어진 시간이었고, 오로지 대학입학이라는 한 가지 목표만이 단조롭게 외길처럼 놓인 길이었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시험성적과 전교생 등수를 공개하는 방식을 시도했다가 교육청으로부터 경고를 받기도 했다. 고3까지의 삶은 그 이후의 진짜 삶을 준비하는 과정으로서의 의미를 갖는 것만 같았다. 다른 모든 계획과 꿈들은 ‘입시 이후’에만 예약이 가능한 메뉴처럼 미뤄졌다.
당시엔 교육정책이나 변화에 관심과 시간을 들여 알아보던 때가 아니라 전체적인 그림을 몰랐는데, 몇 년이 지나지 않아 교직에 선 친구들이 생기면서, 백년지대계와는 전혀 판이하게 뒤바뀌는 교육 정책과 일선 교원들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다.
장관이 새로 부임할 때마다 그 장관의 결제 서명이 찍힌 새로운 교육과정이 시도되고, 교원들은 방학에도 쉬지 못하고 새로운 교육과정 연수를 몇 주씩 들어야하고, 그 변화의 폭이 클 때면, 엄청난 예산이 필요한 교과서 변경과 수업 변경도 뒤따른다고 한다.
교육 당사자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마련하는 정책이 아니라 학생, 교사, 학부모들은 이리저리 휘둘리며 짜증스럽기만 했고 때때로 출판업계의 로비 과정이 드러나 보도가 되기도 했다.
물론, 교육연구자들이나 종사자들이 오래 고민하고 제안한 교육 목표들과 세부사항들 모두가 그렇다고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명암이 뚜렷한 시행착오를 계속 겪어 왔을 뿐이지만, 대입이라는, 개천에서 용나기를 바라는, 한 방에 인생을 결정하는 시스템을 두고서는 다른 여타의 교육개혁이란 수박 겉핥기나 단기 방책을 넘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를 매번 어쩔 수 없었을 뿐이다.
어쨌든 나는 더 이상 진학이나 취업을 위해 시험 평가를 받는 진땀나는 시절을 다 지나왔다. 그러니 오히려 약한 의지력에 도움이 되고자, 작은 성공을 쌓아가고자, 자발적으로 원하는 시험을 택하기도 한다. 결과로서의 평가는 내 스스로의 목표에 도달했는지 아닌지의 변별력만 있을 뿐, 다른 스트레스로 작동하지 않는다. 이제 내게 시험이란 그런 의미의 성취 평가이다. 객관식이든 주관식이든 실습이든 학습에 도움이 되고 기억을 돕는 방식이라면 대단한 창조적 방식을 일을 목표로 삼지 않는 한 큰 문제도 안 된다.
평가는 누군가를 심판하기 위해 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발전을 위해 치는 것이다. 그때는 자기 스스로의 성장에 대한 기대로 두근거릴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등급’으로 인간을 분류하는 방식이 또 다른 현실에 엄존하는 한, 대한민국 사회는 여전히 성과주의를 독려하는 현실에서 멀리 떠나오지 못했다고 본다. 출발과 기회와 과정과 결과가 모두 공정하고 신뢰할만하다면 모를까, 다른 방법이 없어 따르긴 하지만 불신과 냉소와 자포자기 또한 미리 마련된 그 현장의 모습들에 나도 무람한 기분을 느낄 때가 있다.
시험, 선발, 성적 관리, 내신 등급이 현재의 형태로 유지되는 한, 성적 거래 등의 범죄를 유발할 가능성 또한 언제나 있을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인생의 길목마다 합격과 불합격을 결정하고, 개인에게 크나큰 위험부담을 전가하는 고부담 시험이다. 이 방식으로 평가를 통해 성장한 이들이 경쟁과 선발에 익숙한 사람으로서 사회활동을 하는 것은 자명한 일.
평가로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머릿속에 있는 것이 얼마나 정확한지 확인하는 것이다. 평가로 ‘할 수 없는 것’은 그것을 제외한 모든 것이다. 중략. 평가는 아이들의 머릿속에 있는 것을 ...... 꺼내어 세상에 적용해 보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머릿속에 머물고 있는 지식 유통기간은 시험을 마치는 순간까지이다.
암기식이 아니라 창의성을 위주로 한 교육 플랜이라는 홍보도, 도무지 개념을 알 수 없던 열린 교육도, 객관식 문항들을 없앤다는 발표도, 그 외 다양한 교육 과정들 역시 바라던 성과를 내지 못하고 시간은 흐르고 문제는 반복되었다.
완벽한 제도가 어디 있을 것인가 싶지만, 대한민국의 시험제도라는 것은 파생되는 문제점들의 수도 대단하지만 그 정도도 지나치다. 불가항력이나 과실로 인해서가 아니라 ‘시험’ 때문에 학생들이 매년 자살하는 공화국이다. 문제점들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내 자식 일이 아니면 일단 넘어가지도 말고 교육의 주체로서 좀 더 의견들을 내주시면 한다.
좋은 결과에 좋은 과정이라면 더 격려하고 나쁜 결과에 좋은 과정이라면 더 위로하고 좋은 결과에 나쁜 과정이라면 더 충고하고 나쁜 결과에 나쁜 과정이라면 함께 고민하자.
코로나로 학부모도 학생도 교원들도 모두 힘겨운 시기를 지나고 있다. 어렴풋이 의무교육 시행 방식이 변화할 것이란, 변화가 필요하다는 정도의 의견들만 떠돌고 선명한 대안으로 제시된 것은 없다.
필요한 변화가 있다면 요구하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
시험을 예찬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은 이 책에서 지식 평가와 학습 효과라는 목표를 잘 성취하면서 다른 방식의 교육 활동들이 어떻게 가능한지 저자는 예들을 많이 들어 보여 준다. 교육 비관론에 빠질 만큼 복잡한 심경과 고민들을 나누고 정리하고 배우며 읽을 수 있어 도움을 받은 유용한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