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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라는 이름 - 부모의 뇌를 치유해야 아이의 뇌가 달라진다
도모다 아케미 지음, 김경인 옮김 / 마인더브 / 2021년 2월
평점 :
모든 문장이 아플 것 같은 책이었다. 학대로 인해 사망에 이른 아동의 이름으로 분노하고 아파하며 법원에 손으로 눌러 쓴 탄원서를 보내는 시기를 거치자 마자 연이은 아동 사망사건들을 접하느라 통증이 생생한 기분으로 읽었다. 소아정신과 의사이자 뇌과학자인 저자가 간단하게 분석 정리한 내용도, 울음이 울컥, 하는 기분이 느껴져 이를 꼭 닫고 읽으며 필사를 했다.
‘차일드 멀트리트먼트(child maltreatment)’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중략. ‘부적절한 양육’, ‘부적절한 관계’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스웨덴은 1979년 자녀 양육 관련법을 개정하여 세계 최초로 아이에게 어떤 체벌도 심리적 학대도 할 수 없도록 법률로써 금지한 나라다. 그리고 이 법제화를 계기로 아이에 대한 학대를 격감시키는데 성공했다.
스웨덴의 성공 사례를 좀 더 살펴보면, 아동학대 금지를 법제화하고, 캠페인을 실시하고, 아이를 때리지 않고 키우기 위한 충고나 지원 방법을 정리한 책자를 배포하고, 소아과 임산부 클리닉과 연계해서 지원하고, 사회 전체의 의식 향상을 위해 우유팩에 계발 문구를 인쇄하거나 공익 광고 제작 방송을 해서, 체벌에 대한 전체 사회의 인식이 크게 달라졌다고 한다.
누구나 생물학적 부모는 갑작스럽게 될 수 있다. 하지만 ‘좋은 부모’가 되는 일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모두가 불완전한 부모에게서 태어나 모두가 불안전한 육아로 성장했으니 피할 수 없는 결과이기도 하다. 보완할 방법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고민하고 배우고 결심하는 학습 말고는 없다. 나는 사전 예방적인 부모 지원의 측면이 사회 전체에 더 다양해지고 대중화되는 것이 사후 처벌과 대책만큼 중요해 보인다.
2장에서 자녀를 치료하려고 센터를 찾았다가 자신의 문제가 더 위급하다는 것을 깨닫고 돌아가는 부모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을 저자는 지당하다고 했고 나는 놀라며 읽었다.
아니라고 할 이들도 많겠지만, 대한민국은 폭력과 혐오가 쉽고 빈번하게 목격되는 사회이다. 때리는 사람을 문제 삼기보다 맞는 사람이 맞을 짓을, 잘못을 했을 거란 이해와 공감이 뿌리 깊었던 사회이다. 아직 제대로 규제할 사회적 합의도 법도 마련되지 않아서 합당한 처벌도 어렵다.
이 와중에 의도적으로 폭력적인 혐오를 이용하여 사람들을 균열시키고 반목하게 만들어 제 이익을 차리는 후안무치한 이들이 공적 지위를 차지하는 일도 가능한 사회이다.
사적 관계와 공간, 즉 사생활로서의 권리는 과장되고 온갖 미화된 가치들의 생성지로서의 가족과 가정 역시, 감시도 처벌도 관리도 없었던 오래된 잔혹한 폭력의 현장들이기도 하다.
어떤 이유로 선정되는지 정확히는 모르나, 간혹 환기를 주의시키려는 듯, 부모에 의해 다치고 살해된 아이들, 가르치는 이들이나 선후배간의 스포츠계 폭력 피해, 여성과 노인 폭행과 살해 기사가 하이라이트 된다.
매일 누군가는 맞고 죽임을 당하고 극심한 불안 속에 살고 트라우마와 함께 살아남는다. 학대와 폭력은 가정에서 사회로, 혹은 사회에서 가정으로, 양방향으로 거침없이 번지고 대물림*되기도 한다. * 학대는 최대 70%의 확률로 다음 세대에 대물림된다.
다른 범죄와 마찬가지로 이 범죄 역시 단호하고 적합한 처벌과 피해자 구제와 회복으로만 중단될 수 있다. 법과 제도, 사회 공동체의 의식 내에서의 공감이 필요하다.
정신의학 분야에서는 심각한 트라우마를 경험하거나 만성적인 스트레스를 안고 생활하더라도 잘 순응하는 능력 혹은 그 과정이나 결과를 리질리언스*라고 한다. ‘정신적 회복력’, ‘정신적 탄력성’이라고도 한다. *resilience
연구결과, 한 번의 옥시토신 투여로 애착장애 아동의 좌뇌 복측 선조체에서 보수계의 반응 개선이 관찰되었다. 그것도 증상이 중증인 아이일수록 뇌에 미치는 작용이 강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한편, 아이를 학대하는 부모의 뇌에도 문제가 있고, ‘차일드 멀트리트먼트(child maltreatment)’로 인해 다친 아이의 뇌도 그 고통에 적응하기 위해 뇌 스스로 변형된다고 한다. 이 내용을 읽으며 나는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기도 했다. 물적 증거가 있으면 치료와 지원 역시 구체적일 수 있으니.
뇌 부위들 중 전두전야는 체벌로 위축되고, 그 결과 본능적인 욕구나 충동을 제어하기 어렵게 된다. 시각야는 성적 멀트리트먼트나 가정폭력을 목격할 때 위축되며, 시각적인 기억 용량이 감소하고, 이는 11-13세에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다.
청각야는 폭언을 경험하면 비대해지는데, 함께 하는 시간이 많은 부모의 폭이 많은 경우, 심인성 난청, 정서불안, 사람과의 관계를 갖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게 된다.
해마는 유소아기 시기의 멀트리트먼트로 위축되며 3-5세에 이미 학습능력과 기억력이 저하된다. 공통적으로 멀트리트먼트를 경험한 아이들은 좌뇌 발달이 크게 뒤처져서, 사람에 따라 사회적 장애, 정서적 장애, 인지적 장애, 기분 장애, 불안증, PTSD, 해리성 장애, 경계성 성격 장애로 나타날 수 있다.
부모 트레이닝을 통해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과정, 대물림을 끊기 위한 사회적 지원과 공동 육아 등의 구체적이고 실체적인 내용들이지만, 일본 내의 치료법과 사례와 대안이라 한국에서도 충분히 활용 가능할까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 ADHD: 일본에서는 발달장애의 한 분야. 한국의 장애인복지법상 발달장애는 자폐성장애와 지적장애만을 포함한다.
각자의 복잡한 사정으로 살아가며 서로를 다치며 죽이기까지 하는 이들, 단일 관계 내의 가해자를 최대한 비정하게 다루는 기사와, 책임을 방기한 이들을 찾아 고발하지 않는 엉성함과 최소한의 안전망도 마련하지 못한 사회는 무고한지 묻고 싶을 때가 많다. 어렵고 힘들겠지만, 폭언과 폭력을 근절하지 않고 살 수는 없는 일이니 함께 노력해봐야 하지 않을까…….
“중요한 것은
아이에 대한 행위가 ‘학대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그 행위로 인해 아이가 ‘상처를 입었는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