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언니의 방구석 극장
양국선 지음 / 지식과감성#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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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장르와 구성보다 저자 소개를 읽고 아마도 저자에 대한 호감이 급상승해서 책도 읽어 보고 싶었다좋아하는 일과 함께좋아하는 일 속에 사시는 분들에 대한 부러움이 작용했을 것이다.



더구나 추천글을 보니 영화평론도 아니고 - 전 전문가들의 영화평론은 어쩐지 예전부터 별 재미가 없습니다. - 영화사용설명서이고등장하는 영화들도 정말 좋아하는 작품들이 많다신이 난다.


취향이 강한 편이란 말도 들었지만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영화를 가리며 적게 보는 편이 아니라 시간을 낭비하며 영화를 많이 보는 편이 더 낫다는 태도로 살았고나름 여름휴가에 보는 영화연말에 보는 영화새해에 보는 영화 등의 다양한 목록도 있었다.

 

그러다 작년에는 개봉작을 영화관에서 두 편 밖에 관람하지 않은 특별한 한 해를 보냈다그러다보니 여름쯤에는 보상심리였는지 뭐였는지그야말로 방구석극장이 생활화되고결국 넷플릭스에서 더 찾아볼 이유가 없어질 때까지 무지막지하게 보았다.

 

어쩌면 방구석극장이 더 오래 이어질 지도 모르는 시절지난 가을쯤에 그 굴레에서 빠져나와 이번엔 영화 볼 틈이 없어서 서글픈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이럴 때 영화에 관한 책을 읽고 한숨 돌리며 조금 더 분별력 있는 시각을 갖추려 노력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스스로 위로해본다서로를 소모하고 소비하는 태도 말고 제대로 된 취향으로 만들어 나가는 단정한 감상법을 익히고도 싶다영화와 삶을 나누는 저자의 이야기에 대해 한껏 기대하며 읽었다.



너무 예쁜 사람들이 나와서 어찌나 자연스런 연기를 하는지 아마도 입을 벌리고 봤을 듯한 <8월의 크리스마스>이다. 20대였고 유학 가기 전 마지막으로 친구들과 본 영화였고한 친구가 단역으로 출연했다그 친구를 못 찾아 다시 봤지만 두 번째에도 지나친 몰입으로 친구를 못 알아봤다너는 어디에…….


특별한 애정과 추억이 담긴 영화라 일단 반가웠고내게 기억된 색과는 전혀 다른 상황과 감정을 저자가 떠올리시는 것이 놀랍고 신기했다당시 영화를 감상하던 내 연령과 상황이 감정을 읽어내는 결을 달리하게 만들었을 것이다아주 오래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영화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고 반가운 한편그 주제가 너무도 묵직하여 오랜 생각에 빠져들었다정답이 없이 부딪혀야 하는 일들은 늘 두렵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 ‘나이든 부모와 자식이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화두는 개인을 넘어 사회문제로 확대되고 있다나도 팔순의 노부모와 매일매일 어려운 숙제를 하나씩 풀어나가는 느낌이다한없이 크고 항상 나를 지켜줄 것 같았던 부모님이 나이가 들어 어제와 오늘이 달라지고어제는 할 수 있던 일도 오늘은 할 수 없을 때그리고 나와 가족에 대한 기억을 서서히 잃어갈 때 우리는 여전히 부모님을 사랑할 수 있을까.



Vis ta vie. 

네 인생을 살아라.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은 내가 소장하는 영화들 중 하나이다정확한 이유가 이것이다라고 정리할 수는 없지만자꾸 다시 보게 된다다 아는 내용인데 볼까 말까하다가 영화가 시작되면 꼼짝없이 끝까지 보고 만다심지어 매번 긴장되고 두근거리기조차 한다기억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서 더 긴장이 되는가 생각해본 적은 있다.

 

누구에게나 마음이 지치는 날이 있다.

어떤 엄청난 사고가 생겨서 방방 뛰고 머릿속은 헝클어지고 마음이 갈피를 못 잡고 뜨거워지는 그렇게 힘든 날 말고그저 그렇고 그런 날 말이다.

  

나에게 좋은 영화란 한 번 더 보고 싶은 영화다.

두 번 본다면 세 번도 볼 수 있고 평생도 볼 수 있다.

혼자 오롯이 나의 감정에만 집중해서 한 번을 더 볼 수 있고

그래서 평생 그 감정을 함께 할 수 있는 영화다.

영화를 혼자 볼 때만 느낄 수 있는 혼영의 미학이다.

 

워낙 겁쟁이라 꽤나 먼 미래에나 영화관에 가게 될 것 같다.

그리 오래 된 것도 아닌데 놀이터 가듯 편하게 하서 마냥 느긋하게 지내던 모든 순간들이 그립다.

 

우리가 쉽게 행복이라고 말하는 것들은 얼마의 돈이 필요한 것인지,

그 행복의 기준이라는 것은 누가 어떻게 만들어놓은 것인지,

입고 먹고 살고 머무는 것이 행복의 요소보다 앞설 수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장르가 무엇이든 새로운 것에 들뜨는 기분을 좋아하면서도좋아하는 것을 꾸준히 좋아하는 보수성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책도 영화도 이런 두 가지 선호가 모두 동기가 되어 선택하고 감상하게 된다이 책 읽기가 즐거웠던 이유는 내게 익숙한 이 두 취향들에 잘 들어맞는 작품들이 골고루 등장해서 더 반갑고 재미있었다영화를 좋아하고 전공하고 영화와 함께 살아가는 저자가 들려주는 영화 이야기모르는 정보와 내용들도 추억을 환기시키는 익숙하고 반가운 이야기들이 가득한 멋진 책이다.



마지막으로 아주 사소한 일로 감정이 휘둘려서 짜증이 일고 마는 불쾌한 경험을 하고 숨 고르는 시간에더 이상 반가울 수 없는 분의 말과 글이 실려 있는 것을 보고 감사한 마음으로 적절한 위로를 받았다. 2월 첫째 날의 선물 같은 안배였다.

 

왜 나는 콩나물 50원 어치의 분량에 대해서 구멍가게 주인과 싸우고 분개하지만

수천 명을 죽인 독재자에 대해서

수십억을 횡령한 기업인에 대해서 분개하지 않는가.”


박완서 <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

 

콩나물 때문에 짜증이 난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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