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계절
임하운 지음 / 시공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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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숨을 길게 내뱉었다.

이름을 알게 되는 순간 어떤 식으로든 관계라는 것이 생기기 때문이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듣고 싶지 않은 것을 들으면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았다.

 

다시 만나자우연히

 

혼자 있으면 힘들지 않아?

그런 건 같이 있을 때도 늘 있는 거잖아.

그래도 약간은 다르겠지.

어떻게?

네가 힘들 때 기댈 수 있잖아.

만약에 사라져버리면?

 

내가 살아가는 이 세계에서 내게 소중한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것에만 금을 그었다.

그리고 금 바깥에 있는 것들은 어떻게 되든 신경 쓰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나에게는 남의 것까지 챙길 능력이 없었다.

나 하나 살아가면서 버티는 것도 버거웠기 때문이다.

내 것이 아닌 것에 욕심을 부려봤자 결국 상처받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애들은 좋게 말하면 늘 말을 안 듣는다니까.

네가 정말로 나루를 생각한다면 옆에서 없어져주는 게 맞지 않니?

네가 나루한테 해 줄 수 있는 게 뭐가 있다고 생각해?

뭘 해주지 않아도 같이 있는 게 친구라고 생각해요.

아주머니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순간 좋든 싫든

그 사람은 나라는 존재의 한 조각이 된다고 생각해.

그 한 조각이 엄청 클 수도 있고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을 수도 있어.

그 조각의 크기가 클수록 소중한 사람이겠지.

그 한 조각이 빠져나가면 공허해질 수밖에 없을 거야.

 

누군가를 사랑하면 내가 불행해지는 건 상관없이 그 사람만 생각하게 된다는 거야?

생각해봐세상에 있는 모든 걸 준다그런데 사랑은 할 수 없다그럼 어떡할 거야?

나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이 없었다그런데도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참 이상했다.

그런 큰일에는 누구나 성인군자가 되는 것이다.

옳고 그름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듯

그들은 그 애의 잘못을 객관적이고 견고하게 쟀다.

이들은 정말로 옳은 것을 좋아하는 걸까?

그저 한 사람을 비난함으로써

자신이 짊어지고 있는 짐을 잠시 내려놓고 싶은 것은 아닐까?

 

사람에게는 각자의 사정이란 게 존재한다.

그러니까 자신이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지켜내기 위해,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방법을 선택할 때도 있는 것이다.

 

읽다가 나이가 의식되고 진땀이 나는 책들이 있다.

 

어쩌다 세상이 이 지경인지,

우리는 왜 이렇게 망가졌는지,

대답해 보라고 할까 봐 조마조마한 기분.

 

오늘은 부끄러움과 미안함과 대책 없음이 들락날락하는 책들을 자꾸 만났다.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을 한 것을 이해한다.

별거 아니지만 그렇게 말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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