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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로 나간 일기도둑 - 미취업 어른이의 세계 사람들 만난 이야기
박모카 지음 / 새벽감성 / 2020년 7월
평점 :
취업하면 고생이고 일은 하고 싶고, 미안하지만 나는 네 밑에는 못 들어가요. 이렇게 적힌 구절을 보고 보람 없는 일을 고생하며 견뎌야하는 최악의 상황도 있다고 말하려니, 미취업보단 나은 거라고 혼이 날 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듭니다.
저는 하기 싫은 일은 아니지만 좀 더 옵션이 있었으면 하고 늘 바라는 일이 참 많았습니다. 하루에 4시간만이라던가 4일 근무라던가. 돈, 승진, 출세는 원하지 않으니 자립 생활이 유지될 만큼만 벌고 더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시간 욕심을 부리고 싶었는데, 매번 그게 가장 큰 죄악인 듯 거부당했지요.
물론 그 이유를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고용인과 고용주의 계산기는 구조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지요. ‘누구에게 이익인가’를 아주 치밀하게 계산해서 티끌마저 다 모아야하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예전 독일 회사에서 만난 미국인 신입 사원이 회사채용에 합격하고 회사 측과 의논하여 6개월간 먼저 여행 다니다 출근하겠다고 계약을 조정했다는 이야기를 본인에게 들었습니다. 졸업하고 놀 시간이 없었으니 그렇게 하고 싶다는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인 것이지요. 건너 들었으면 의심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회사 동료들이 함께 한 자리니 저만 조용히 놀란 사실이었지요.
‘놀고 싶다’가 아니라 업무관련 자격증 공부를 하고 싶다고 시간을 달라고 해도 과연 그 말이 한국의 어느 기업에서라도 진지하게 받아들여질까…… 싶습니다.
생각해보니 해피타임이란,
자신과 어울리는 여유를 부리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가 취업 전 공식적인 일 년간의 백수 생활을 선언했다고 하니 오래 전 기억이 불쑥 났습니다. 그럼 여행 경비가 충분하지 않을 텐데, 저자는 어떻게 했을까요? 카우치 서핑이나 홈 익스페인지, 워크어웨이와 같은 각종의 방법들을 시도하고 소개합니다. 참 용감한 사람입니다. 그만큼 자신이 선언한 여행에 대해 책임감 있고 진지하게 실행했다는 뜻이겠지요.
여행을 하면서 많이 들은 질문 중 하나가,
왜 여행을 하느냐는 것이다. 중략.
앞으로 뭘 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여행을 하면서 생각해 보자는 것이었다.
시작은 미국에서, 브라질과 아마존 정글 속으로, 모로코와 몰타의 자연 속으로, 광활한 러시아로, 리가로 아름다운 에스토니아로, 그리고 키르기스스탄까지. 신기하고 재밌게도 제가 다니지 않는 지역들만 여행하니 흥미진진 가이드 여행을 간접 체험하는 것처럼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여행기입니다.
‘태어난 그대로 살아보자 아마존 정글’ 제목만 읽고도 부러운 기분이었습니다. 무려 7박 8일이나 머물렀습니다! 벼락을 맞아 인터넷이 끊기는 거야 별 문제가 아니지만 아무리 자연 경관이 아름다워도 사람들이 친절해도 자연에 식재료가 널려 있어도, 도시가 아닌 곳에서의 제 생존 능력이 한심할 스스로의 나약함을 아주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투어 가이드가 나무와 강의 흐름을 보고 길을 찾고 물고기가 사는 곳(?)에 찾아가서 낚시를 하고 보고 싶은 동물을 보고 싶다고 부르는(?) 일이 정말 멋져 보입니다. 저는 동물원에 갇힌 동물들은 보러 가지 못합니다. 기대할 것도 즐거움도 없이, 털도 눈빛도 빛을 잃고, 좁은 공간에서 그저 살아남아 있는 그 모습을 더 이상 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크루즈 여행은 제가 도버 해협을 건널 구실만 있으면 좋아라 했던 여행이라 그립고 부러웠습니다. 뭐 막 적극적으로 즐기기 보단 조용히 간식이나 먹으며 바다 구경하며 국경을 건너곤 했습니다만.
사람에 대해 알고자 하는 욕구도 컸다.
주위 사람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고민을 하고 눈치를 자주 보았다.
동시에 그들이 지닌 인격에 대해 흠집을 잡으며,
이 사람은 어때서 나랑 안 맞고 저 사람은 왜 마음에 안 드는지 이유를 만들었다.
내 기준에 완벽한 사람이 아니면 친하게 지내지 않았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다고 말하지만 나와 가까운 사람들은 완벽하기를 원했다.
여행이란 장소를 방문하는 행위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일이기도 하지요. 저자가 만난 사람들 역시 저자가 다닌 장소들만큼 참 다양합니다. 상상 이상으로 다채롭고 흥미로운 인물 유형들입니다. 당연히(?) 친절하고 행복하고 즐겁고 유쾌한 이들도 있고, 불쾌하고 이해불가능하고 위협적이고 힘들게 하는 이들도 만납니다.
소위 젊음의 힘인지, 저자 특유의 생명력인지 자주 감탄스럽게도 저자는 아주 용감합니다. 게다가 아주 솔직합니다. 사람에 대해서도 장소에 대해서도 별로는 별로야, 라고 그냥 말합니다. 어떤 주제에 대해서는 아주 자세히 귀에 대고 이야기를 들려주듯, 일기를 읽어주듯 그렇게 전해줍니다. 어떤 종류의 에세이일까 여행기일까 궁금했는데, 제가 읽기에는 여행일기(저널) 같습니다. 그 점이 저자와의 거리를 한층 가깝게 하는 매력적인 요소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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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의 눈과 사람의 눈이 다르다니 너무 웃기고 신기하다.
앞으로 뭘 하든지,
정말 하고 싶은 것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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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어떻게 사시나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잘 하는 일을 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하기 싫은 일을 하면서?
하고 싶은 일을 잘 하면서 산다, 말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갑자기 아무에게나 소원으로 빌고 싶은 기분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