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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서 읽습니다, 그림책 - 어른을 위한 그림책 에세이
이현아 외 지음 / 카시오페아 / 2020년 12월
평점 :
그림책 에세이 재미있겠다, 라고 느긋한 생각을 했던 시간이 낯뜨겁게 머리가 쭈뼛하거나 마음이 떨리는 내용들이 한 가득이다.
저자들의 작업은 그저 아이들을 위해 그림책들 구비하다가 어느새 내가 더 좋아하네, 하고 깨달은 그런 수준의 애정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역시 창작으로 나서는 동력이란 다른 종류의 확실한 열망이 필요하다고 느껴졌다. 이 책을 만든 ‘좋아서하는그림책연구회’ 분들은 그림을 그리며 잃어버린 마음 조각도 찾고 자기반성도 하고 이해와 공감을 위한 매개로도 삼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좋아서하는그림책연구회의 두 가지 운영 철학>
* 아이들 곁에서 교사도 함께 창작하는 삶을 살아갈 것.
** 학교 안과 밖의 온도 차를 줄이는 통로의 역할을 할 것.
“직업인으로서의 정체성에서 한발 더 나아가 여성으로서, 엄마로서, 읽고 쓰고 운동하는 사람으로서, 가족과 사회의 일원으로서, 그리고 자신의 삶을 능동적으로 이끌어가는 한 명의 어른으로서 잘 살아가고픈 저자들의 면면.”
글을 쓰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떤 글을 쓸까 고민하고 흥분하는 그들의 모습이 나를 좋은 방향으로 자극했다.
평소 글쓰기보다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던 나는
먼지 쌓인 아이패드를 꺼내 드로잉부터 시작해보기로 했다.
살아있다는 건 말이야, 죽음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거야.
삶과 죽음이 맞닿아 있는 경계를 기억하면 삶의 무게 중심을 바로 잡을 수 있다.
죽음을 잘 준비하는 삶,
내가 떠난 후에 남겨질 것들을 헤아리는 삶을 살겠다고 다시금 다짐하게 된다.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들은 이렇게 얽히고설킨 인연으로 삶과 죽음 가운데에 순환하며 살아간다.
생명력을 가진 죽음이기에 아프지만 슬프지 않고, 애틋하지만 허무하지 않다.
마라톤에서 중요한 것은 옆 사람을 제치고 빨리 도착점으로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도착점에 가겠다는 목표를 포기하지 않는 것임을 배웠다.
나의 손길이 있어야 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
그 사람들이 나의 노동에 고마워한다는 것.
그것이 노동의 보람이자 가치다.
우리는 대체로 내가 살아온 삶의 방식대로 관성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타인도 나의 잣대로 섣부르게 판단해 버린다.
투박한 시선과 생각은 오해를 쌓고 대상과 거리감을 만든다.
공감의 핵심은 《가만히 들어주었어》의 토끼처럼 대답을 채근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것이었다.
상대방의 고통에 진심으로 눈을 포개고 듣는 것이었다.
상대방의 ‘때’에 상대방의 ‘방식’으로 그 존재를 존중해주며,
상대방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가는 것이었다.
때론 나와 전혀 다른 생각을 하더라도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게 공감의 핵심이었다.
내가 다수에 속할 때,
우리는 상대방에게 나의 기준을 들이밀며 쉽게 이야기한다.
내가 가진 일상적인 특권을 내려 놓고,
주변을 둘러보며 그 특권을 갖지 못한 누군가를 위해 익숙한 질서를 깨는 다수가 있다면......
자연스레 성장해나가는 생명을 믿고,
그저 곁에서 지켜보고,
보듬어주는 일.
이 따뜻한 손길 덕분에 이해할 수 없는 일들로 가득 찬 삶을 살아가면서도 우리는 모순과 얼룩을 툭툭 털어내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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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는 옷을 더 입어야 편할 듯하지만,
이렇게 나무 그늘 아래 긴 의자에 잠시라도 누워 본 적이 언제일까,
그런 일이 있긴 있었나,
얼굴을 책으로 덮고 깊이 잠들었나,
궁금하고 부러운 마음이 차오른다.
일 년에 한 마디만 성장하는 소나무를 보고 있으면 시간이 천천히 가는 듯 느껴지지만,
열심히 몸집을 키우는 삼나무를 보면 여름 한 계절도 쏜살같이 빠르게 지나갔구나 싶다.
식물들의 시간 의식을 보고 있으면,
작은 들풀,
커다란 나무,
울창한 숲 등 자연은 그 누구 하나 계절을 쉬이 보내지 않는 것 같다.
이 책이 첫 눈에 마음에 들었던 이유 중 하나는, 그림책 읽기가 조금 민망하기도 한 어른들 보라고, 어른을 위한 그림책 에세이라고 해준 것이다. 경험과 생각들이 밀도가 높아서 솔솔 풀어가며 제대로 읽고 충분히 상상하는 일에도 필요한 시간은 다 들이게 된다.
읽을수록 확실해지는 생각은 ‘성장을 마친 어른’이란 존재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특정 나이가 닥치면 법적으로 이런저런 것들을 할 수 있다는 증명서를 주고, 대접은 변변치 않게 해주면서 ‘어른다움’이나 ‘어른구실’에 대한 강요가 강한 사회가 불편하고 어려워지는 것이다.
이런 이중적인 태도에서 솔직하게 갈피를 못 잡겠다, 그건 당신 생각일 뿐이지, 알아서 살겠다고 하는 이들도 있지만 묵묵히 요구받은 방식으로 살아가고자 애쓰는 이들도 많다. 그런 분들의 처진 어깨, 흔들리는 눈빛, 지친 얼굴이 마주칠 때마다 늘 아프다.
이 책이 그런 어른들에게 얼른 도착했으면 좋겠다. 마음을 들여다보고 서로를 이해하고 그래서 자기의 속도에 맞는 성장을 비로소 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 텐데……. 자신이 겪은 억울한 일들을 되풀이하지 않고 오히려 다른 누군가를 위해 남아 있는 폭력의 질서를 깨는 제대로 ‘출세한(세상으로 나아간)’어른들로 말이다.
《타인의 고통》을 쓴 수전 손택은
‘연민이 내 삶을 파괴하지 않을 정도로만 남을 걱정하는 기술이라면,
공감은 내 삶을 던져 타인의 고통과 함께하는 삶의 태도‘ 라고 했다.
처음에 수민이는 캄보디아 아이들과 멀찌감치 떨어져 맨발로 축구하는 장면을 관망했다면,
종내에는 그들 사이로 성큼 들어가 함께하기로 결정한다.
그들의 삶에 동정이나 연민을 보내지 않고,
공감한 것이다.
대충 살고 싶은데 자꾸만 ‘똑바로 제대로 살라’는 매력적인 글들이 천지사방에 가득하다. 심지어 표지의 촉감조차 격려와 응원인 듯 매혹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