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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한일기 - 코로나19로 봉쇄된 도시의 기록
팡팡 지음, 조유리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2월
평점 :
이 책의 저자 팡팡은 2020년 우한 봉쇄 사흘째부터 우한의 참상, 중국 정부의 진실, 은폐, 왜곡, 관리들의 부실 대응, 그리고 시민들의 절규를 기록하기 시작했고, 총 60편의 글들을 중국 소셜미디어 웨이보에 올렸다. 그의 글이 영향력을 행사하고 각국에 알려지자 중국 정부는 검열을 시작했고 글은 차단되었다. 그리고 서프라이즈처럼 나온 책이 [우한 일기]이다.
중국 본토에서는 출간되지 못한 책이 한국에서 번역 출간되었다는 소식에 정말 놀랐다. 문학동네가 아니었다면 읽어볼 생각이 전혀 없었을 것이다. 단순한 팩트라 하더라도 제대로 전달되었을 지를 신뢰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오래 전 과거의 사건이라도 관련된 인물이 남은 경우, 알아도 ‘진상’을 제대로 밝히기가 얼마나 지난하고 고단한 일인지 보고 들은 경험이 지겹도록 많아서 더 그렇다.
......
[우한일기]는 우한 지역에 최초로 코로나가 확산되고 봉쇄된 76일 간을 다루고 있다지만, 이 짧은 제목처럼 단일 사건도 특정 지역에서 그친 일도 아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인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사스도 메르스도 신종 코비드19에 비하면 얼마나 만만한 상대였나 싶다.
일 년이나 지났는데, 지난해의 마지막까지 믿고 싶지 않아서 믿기지 않아서 그래도 순진한 희망을 품고 기다렸다. 솔직히 지금도 계속 그러고만 싶다. 그래서 지금도 매초마다 전 세계 누군가의 생사를 가르는 이 판데믹 재난의 시작을 읽을 준비가 된 것인지 책을 받아 들고도 고민을 멈추지 못했다.
재난이란 무엇인가?
마스크를 쓰거나 며칠 동안 밖에 나가지 못하거나 단지에 들어갈 때 통행증이 필요한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재난이란, 병원에서 예전에는 몇 개월에 한 권 쓰던 사망자 명부를 지금은 며칠에 한 권씩 쓰는 것이다.
재난이란, 예전에는 화장터에서 관에 담긴 한 구의 시신을 한 대의 운구차로 옮겼다면, 지금은 비닐로 싼 시체 몇 구를 포개어 쌓아서 화물트럭에 실어가는 것이다.
재난이란, 당신의 집에서 한 명이 아니라 가족 전체가 며칠 혹은 보름 안에 전부 사망하는 것이다.
재난이란, 당신이 아픈 몸을 끌고서 춥고 비가 내리는 날 사방을 뛰어다니며 자신을 받아줄 병상 하나를 찾아다녀도 끝내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재난이란, 새벽부터 병원에서 줄을 서고 번호표를 받아도 다음날 새벽에야 진료 순서가 되거나 혹은 순서가 여전히 오지 않아 길바닥에서 갑자기 쓰러지는 것이다.
재난이란, 당신이 집에서 병원의 입원 통지를 계속 기다리다가 통지가 왔을 때는 이미 숨을 거둔 것이다.
재난이란, 병원으로 이송된 중증 환자가 사망하면 병원에 들어간 그 순간이 가족들과 작별한 순간이 되어 서로 영원히 다시는 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재난 속의 세월은 고요하지 않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환자들의 죽음과 가슴을 도려내는 가족들의 아픔, 죽음을 향한 생존자들의 삶이 있을 뿐이다.
며칠 전 한국의 의료에 대한 고민을 다룬 책을 읽으려 관련 자료들을 보다가 중국 우한의 상황에 대한 보도 자료를 읽고 처음 알게 된 사실들이 놀라웠다. 이전까지는 우한의 ‘사람들’에 대해 진지하게 염려하고 궁금해 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도 새롭게 깨달았다. 판데믹을 겪으면서 글로벌한 문제의식이 필요하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실제로 나의 시야와 관심의 집중도는 점점 더 구체적인 사적 공간과 사적 관계들로 좁혀지고 있었다.
명목상 여전히 사회주의 국가라는 중국의 의료가 거의 민영화되었다는 사실도 코로나를 겪으며 처음 알게 되었다. 인구 1200만 명이 사는 우한시에서 코로나 확산 시기에 환자를 받은 병원은 단 3개, 나머지는 다 영리병원, 즉 민간병원이었다고 한다. 전 국민 건강보험이 없을뿐더러 국가가 의료문제를 포기한 상태라는 의견도 들었다. 끔찍하다.
이 책을 읽으며 내내 답답했던 건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곳에 국가라는 시스템의 비가시성 혹은 부재였다. 그에 비해 지나치게 게으르고 손쉬워 배려라곤 없이 시행되는 공권력의 행위들에는 더욱 분노하게 된다. 뒤늦게 방역을 한다고 나선 당국이 한 일이라곤 인구 1000만 명이 살고 있는 거대 도시를 통째로 완전히 봉쇄하는 것이었다.
"사람 간에 전염이 되지 않는다. 막을 수 있고 통제할 수 있다"는 중국 정부의 주장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기사 보도로 이름만 기억하는 의사 리원량은 코로나19의 ‘위험성을 과학적으로 인지하고 최초로 경고한 죄’로 중국 정부로부터 탄압을 받았다.
코로나에 기인한 병증으로 인한 비극보다 더 끔찍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릇된 혹은 무능력한 대처방식으로 인한 피해들이다. 일일이 적기에는 너무 잔혹한 참상들이다……. 바이러스는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될 때까지 정면으로 대항할 방법이 없지만, 상식을 갖추고 거짓과 선동을 멈추는 일은 훨씬 더 쉽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닌가, 더 어려운 일인가……. 지옥의 한복판에 버려진 채로도 독거노인들의 간장 뚜껑을 열어 주기 위해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리던 사람들 이야기에 울컥하고 눈물이 고인다.
이 책의 저자이자, 이전부터도 작가인 팡팡은 중국 정부를 고발하고 비난하는 일에 모든 힘을 쏟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런 사회와 권력이 코로나 판데믹과 같은 비극을 언제든 재발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반복해서 전하려한다. 제발 해야 할 일을 하고 하지 말아야할 일은 하지 말라는, 그렇게 하지 못했을 때, 그 반대가 되었을 때 어떤 참상이 벌어지는 지를 바로 보라고 전 세계에 메시지를 전하려한다.
한 나라의 문명 수준은
높은 건물, 강한 무기, 위협적인 군대, 진보한 과학기술, 경제력에 달린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다.
바로 약자들에 대한 국가의 태도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고개를 들고 희망이 있는 곳을 바라보는 것이다. 중략.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스스로를 지키고, 가족을 돌보는 것이다.
지시에 따르고 절대적으로 협조해야 한다.
이를 악물고 문을 닫아야 한다.
우리는 이미 오랜 시간을 버텨왔다.
그래서 우리를 위해 목숨 건 사람들의 노력을 절대 헛되이 할 수 없고,
또 이렇게 버틴 스스로의 노력도 허투루 만들 수 없다.
비상사태가 닥치면 인간의 본성에 내재한 거대한 선과 악이 전부 드러난다.
당신은 그 안에서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당신은 경악하고 탄식하고 분노하고, 그리고 익숙해질 것이다.
나는 생필품을 파는 상인들에게 이럴 때 문을 열면 감염될까 무섭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들의 대답은 덤덤했다.
“우리가 여기서 버티고 있어야 당신들도 버틸 수 있잖아요.”
코로나 판데믹이 멈추지 않은 것처럼 작가 팡팡이 감당해야할 고초도 아직 진행 중이다. 나는 이 작가의 근황에 관심을 기울이는 일도 할 일에 포함시키려 한다.
“정말 다른 의도로 이용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책이 우한일기든, 대국항역이든 무슨 상관인가. 무슨 책을 내든 이용하려 할 텐데. 안 그런가? 누군가 이용할 거라서 책을 안 낸다고? 언제부터 중국인들이 그렇게 외국인을 두려워했나? 음모론 얘기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저 소설 쓰는 데 소질이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겠다.”
이 책은 반려견과 집에 단 둘이 남게 된 작가 자신을 위한 생존 일기이고,
고통스러운 고발 보도 자료이고,
죽거나 상처 입은 이들을 위한 추모와 위로의 문학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나는,
이 재난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다시는 이런 비극을 반복하지 않을 새로운 생활방식으로 즐겁게 지내면서 [우한일기]를 2020년의 역사적 자료로 다루는 미래를 희망한다.
2020년 9월 작가 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