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레시피 - 딸에게만 알려주고 싶었던 비밀
나카가와 히데코 지음 / 이봄 / 2020년 11월
평점 :
절판



사람 입에 들어가는 것을 만드는 데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되니까.”

 

실수란 건 의도한 일이 아니라 있을 수도 있는 일인데그것마저 조심하며 살아온 분의 인생과 레시피라 절로 경건해지는 기분이 든다.



각종 레시피북들은 저엉말 많지만, [나폴리탄 스파게티]가 이렇게 반가운 책은 처음이다그 음식에 대한 따뜻하고 향긋하고 배부르고 걱정 없이 나른한 그리운 추억이 있어서 더 그럴 것이다.

 

레트로라 이름 붙인 메뉴들이 내 현실에선 미슐랭보다 귀하게 느껴진다재료도 맛도 다를 테지만 맛을 아는먹으며 성장한 메뉴들과그리운 이들그리운 시절에 모두 떠오른다.

 

디저트를 빼고는 모두 다 요리할 수 있을 메뉴들이라 감개무량하기도 하다.




시공간을 초월한 맛이라는 근사한 표현을 읽자 40여 년 전 처음 맛본 [비엔나롤빵]과 흡사한 빵 맛이 떠오른다가끔 빵집에서 소시지빵에 막 끌리는데 무척 예스런 입맛이라고 친구들에게 놀림도 받았다 어린 시절 덜컹덜컹 기차 여행 당시의 훈제 소시지 향도 생각나고 처음부터 거부감이 없었던 머스터드 향도 떠오르고 그런다.

 

자금에서야 생각해보니 그래서 한 때 쏘야 소시지야채볶음 같은 훈제 향이 나는 음식을 맥주 안주로 막 좋아했나 싶기도 하다재료와 만드는 법이 놀랄 만큼 간단해 보여벌떡 일어나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뭉게뭉게 해지는 위험한 레시피이다.




[나폴리탄 스파게티] 이 메뉴는 들을 때마다 허기가 돈다.

 

어릴 적조부모님 댁에서 지내던 시절오후에 두 분 산책가시는 길에 따라 나서면 동네한방차집에 가셔서 주인과 담소를 나누곤 하셨다매캐한 한약재 향이 떠도는 장소에서 유일한 어린이메뉴 나폴리탄 스파게티를 해주시면 언제나 만족스럽게 배불리 먹고 그림을 그리거나 책을 읽다 잠이 들기도 했다.

 

재료나 만드는 법을 여쭤본 적은 없지만아버지의 레시피의 스파게티보단 케첩 양이 더 많았을 거라 짐작해본다비엔나소시지에 이어 케첩 중독 역시 아주 오래전에 시작된 것이었구나새삼스럽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허기가 느껴진다매일 무언가를 핑계로 만들어 먹고 싶은 메뉴이다.




초등학생중학생 때까지 방학 중에 그냥 저 크레이프만 구워서 속재료 없이 잼을 발라 먹기도 했다구울 때 왜 자꾸만 가장자리가 말려 올라오던지……지금도 이유를 모른다어쩌다보니 크레이프보단 월남쌈을 더 자주 먹고 살았다보드랍고 상큼하고 달콤한 행복한 맛일 거란 생각에 언젠가 반드시 시도하고 말 테다!라고 결심해본다.




원래도 좋지만 겨울에는 특히 묵직한 느낌의 파운드케이크가 더 끌린다체온 유지를 핑계로 살찌우는데 이만한 음식도 없는 듯.ㅎㅎㅎ 버터 듬뿍에 구운 아몬드 잔뜩레몬 껍질이 상큼하게 씹히는 [아몬드 파운드케이크]는 겨울에 최적화된 메뉴이다죄책감이 들 정도의 두께로 잘라 따뜻한 소금 약간 우유나 산미가 있는 커피나 달지 않은 글루바인과 함께 먹으면 추위가 가시고 몸보다 마음이 더 노곤해진다.

 

아버지와 함께 베이킹을 해본 기억은 없어서저자의 기억 속 시간들이 어땠을까 상상만 해보았다.

누구랑 만들든혼자 만들든 갓 구운 빵이나 케이크가 오븐에서 나올 때 퍼지는 향기는 정말 황홀할 것이다.

행복하고 따뜻하지만 그리운 일들이 잔뜩 생각나서 슬픔도 차오르는 특별한 책이다.

그래도 이 책은 책장에 꽂을 장식이 아니라 만들고 먹을 수 있는 메뉴들이 가득해서 정말 신이 난다


최고 최애의 레시피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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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럼 현실은......



나폴리탄쯤이야, 자신만만했는데,
이 그냥 토마토 스파게티는 뭔가요.
제가 만든 기억은 납니다만......
재료가 달라져서라 위로해봅니다.
자신만만했던 레시피 하나 실종!


레몬 없어서 오렌지 껍질 썼어요.
음... 처음 맛보는 케익이예요.
아몬드 다 어디로 갔어,
버터 다 어디로 갔어,
오렌지 왜 너만 느껴져......
레시피 두 개째 실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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