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읽는 여행지리, 파리 문화예술 탐방기
이두현 지음 / 지식과감성#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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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를 보고 저자의 생각이 얼마간 짐작된다고 느끼는 경우가 있다이 책도 그러한데 여행가이지만 누구보다 더 파리의 지리역사감수성까지 상세히 담아 주려는 에너지 가득한 시도가 빼곡하다당연히 도시 공간으로서만이 아니라 파리의 문화와 예술 콘텐츠들을 아우르는 작업이기도 하다


신난다제 여행을 가서는 한 줄도 글을 쓰지 않으면서 남의 여행기 읽기를 무진장 좋아하지만 힐링 여행기는 안 읽는다.

 

그 장소를 몇 번을 갔건 얼마나 오래 살았건 그곳을 안다는 것과는 또 다른 것이다한 때 틈만 나면 영국을 벗어나고 싶어서 기회만 있으면 가서 머물려 했으니…… 횟수로도 여러 번어느 해 겨울은 센 강 옆 세모난 아파트를 세 얻어 셰익스피어앤컴퍼니Shakespeare and Company까지 왔다 갔다 하릴 없이 강변을 걸어 다니며 지내기도 했다.



부지런함과 기록의 부재로 온갖 가지 장면들만 난무하지 그토록 배울게 지천이라는 곳에서 뭘 배우진 못했다인상주의 화가들 작품 몇 개 구경하는 것 말고는 오르세Musée d'Orsay에서도 스케치하는 화가 지망생들 작품들만 내내 구경하며 멍 때리기만 한 것 같다어차피 거대한 규모의 오르세나 루브르Musée du Louvre는 나 같은 길치가 다니기에는 아주 위험한 장소이다그나저나 유리 피라미드 뭡니까왜 그런 겁니까.

 

어느 날은 파리10대학에 유학 중인 친구와 에펠탑에서 야경 보며 수다 떨고 있는데 직원이 조용히(?) 승강기 멈추고 조명 다 끄고 퇴근해서 어둠 속 회전계단을 더듬어 1층까지 내려와서 탈출(?)한 적도 있다꽤 오래 걸렸습니다에펠탑은 높은 건축물이 맞습니다. 여행의 취향은 예나 지금이나 별 다를 게 없어서 당시에도 파리에서 머무는 일은 땅을 발로 꼭꼭 밟으며 걸어 다니는 속도에 맞추어 곳곳에 기록된 역사적 의미를 떠오르는 대로 새기는 재미가 컸다.

 

집시들이 다 사라진 몽마르뜨도 한산했고 해질 무렵의 샹젤리제 역시 천천히 걸어 지나기에 최적으로 설레는 곳이었다노트르담 대성당Place du parvis de Notre Dame은 완공된 게 아니었나 싶게 몇 해에 걸쳐 갈 때마다 공사 중이었고…… 그땐 욕 많이 했는데 작년에 화재로 첨탑이 전소되는 장면을 보고 정말 슬펐다성탄절이 가까워질수록 연주회가 많아져서 가끔 중간에 적당한 성당에 들어가 잠시 들으며 몸을 녹이기도 했고뱅쇼Vin Chaud를 여기저기서 맛보다 어느새 알코올중독처럼 매일(?) 마시게 되었다.




어디서 사먹든 빵과 오믈렛은 더할 나위 없이 맛있었지만 사람들은 불친절하고 별 매력도 없던 파리가 언제 다시 갈지 모른다 싶으니 라고 조용히 불러보는 것만으로도 두근거리고 그립다그리운 건 그 시절과 사람들일 지도 모른단 생각이 이어서 들지만어쨌든마음이 살살 에이는 것을 불안하게 감지하며 이러다 훌쩍거리는 거 아냐싶은 주책없는 생각도 하며 천천히 읽었다.




파리의 역사는 기원적 3세기경부터 시테 섬을 거점으로 시작되었다.

로마인들은 이곳을 강 중류의 거주지란 뜻의 루테티아(Lutetia)라고 불렀다.

기원전 1세기 로마의 지배를 받으며 도시로 성장하였다.

시테 섬은 센강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요새 역할을 톡톡히 하였다.

3세기부터 이름 붙여진 파리(Paris)’는 이 일대에 거주하고 있던 갈리아 부족인 파리시(Parisii)에서 유래하였다. 19

 


프랑스어로 공을 뜻하는 불(boule)은 프랑스 빵을 통칭하기도 한다.

일찍이 음식 문화에서 빵이 주류를 이루었던 프랑스에서는 제빵사를 밀가루를 공 모양으로 반죽하는 사람들이라고 하여 불랑제(boulanger)라고 불렀다.

빵은 무게와 길이에 따라 여러 가지로 구분한다바게트(baguette)는 긴 빵을불은 둥근 모양의 빵을 의미하며바게트와 불 중간을 바타(batard)라고 한다버섯 모양의 빵은 생피뇽(champignon), 길고 통통한 빵은 파리지엔(parisien), 바게트보다 가늘고 짧은 빵은 플루트(flute)라고 한다. 39

 

가장 관심이 있는 건 여전히 파리의 역사 조금과 빵밖에는 없는 건가.

보고 싶은 풍경도 여전하다.

편애와 편식은 아직도 나의 모든 출발이자 도착이다.

 

두근거림과 설렘이 없어진 건 여행을 멈췄기 때문이다란 생각이 확신범처럼 들었다이전에도 온전히 즐기기 위해 다녔던 경우는 거의 없지만 즐거움과 죄책감을 매번 저울질하다 긴 비행이 필요한 비즈니스가 아닌 여행은 그만하자고 결정한 것이었는데 어쩐지 삶의 활력도 재생과 보충을 멈춘듯했다언젠가는 심장이 정말 뛰고 있는 건가 진심으로 의심(?)이 되기도 할 만큼 그렇게 설레는 일 또한 사라져갔다.

 

아니었는데 지금도 아닌데이 모든 게 다 코로나 때문이에요, 라는 선동들도 꽤 들리는데나도 코로나를 핑계 삼아 아몰라 작전으로 예전 소원처럼 여행을 하다 길 위에서 삶을 마쳐보도록 할까사춘기도 갱년기도 아닌데 이런 무책임하고 도발적이고 발작적인 생각이 떠오른다.

 

새해가 365일 중에 5일밖에 안 지났는데 참으로 위험하고도 멋진 책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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