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마감 일기 - 공포와 쾌감을 오가는 단짠단짠 마감 분투기
김민철 외 지음 / 놀 / 2020년 11월
평점 :
혹시 파킨슨 법칙이라는 경제학 용어를 아십니까?
일을 완수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주어진 시간에 비례해 늘어난다는 이론이지요.
마감하는 인간들은 모두 뼈저리게 공감할 겁니다. 중략.
마감이란 닥치면 해결되는 일. 이라고 생각한 적이 저도 있습니다.
그런데 살다 보니 ‘닥치면 ’이 아니라 ‘닥쳐야’ 해결되는 일이더군요. 38
무시무시한 제목이다.
타협 불가 마감이 있는 거대 프로젝트 - 직접 참여하는 인원만 100여 명 - 에 참가한 살벌했던 그 해가 폭설처럼 떠오른다. 1년짜리 프로젝트인데 잘 마무리되어야할 시기에 이르러 팀원들에게 개인적인 불가피한 사정들이 마구 터졌다. 근로기준법, 인권 그런 거 없는 세상에서 누워 자는 수면은 격일로 하고 밤새 하는 카페에서 더블 에스프레소와 얼음물 들이 마시며 일하다 의자에서 졸며 아침을 맞았다.
그해를 어찌 살아남아 마감하고 사표 쓰고 공기 좋고 조용한 곳(?)으로 일하러 일 년 간 떠났다. 일단 수입이 20분의 1로 줄었으니 2년 평균 연봉을 따지면 이런 방식으로 일하는 것은 세상 미련한 일이다.
이후에 혼자 마감을 지키면 되는 일은 10여 년이 넘게 한 번도 연기하거나 어긴 적이 없어 냉혈마감인 취급을 받기도 했다. ‘냉’한 거라곤 없이 땀 흠뻑 흘리며 수명을 불살라 지키는 마감인데, 도무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소음 하나 없이 적요한 공간에서 숨만 조용히 쉬며 작업하는 동안 테이블과 의자 주위로 머리카락이 투둑.투둑. 빠져서 떨어지는 무시무시한 소리가 이어진다. 이런 경험 없으시다면 그저 부러울 따름입니다.
어쨌든 재깍거리는 환청이 들리면서 누군가의 피가 얼어붙을 것 같은 제목이다.
출판사가 계약금을 보내놓고 기다리는 동안 첫 문단만 스물두 번 쓰고 나머지 시간은 잠을 자거나 게임을 하면서 현실에서 안간힘으로 도피한 저를, 누구보다도 혐오하는 것은 저 자신입니다. 그런 저 자신을 위해 변명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중략. 왜 글쟁이들은 항상 돈 안 된다, 마감이 끔찍하다, 업계 상황이 치사하다, 앓는 소리를 하면서도 글을 끊지 못할까요? 중략. 너무 걱정을 마세요, 마감은 끝나거나 안 끝나거나 할 겁니다. 책도 팔리거나 안 팔리거나 하겠지요. 하지만 우리 인생은 언젠가 확실히 끝납니다. 우리 그냥 사랑을 해요. 이 우주를, 가련한 중생을, 마감 늦는 작자들을요. 숨바에서 온 편지
진심으로 그 심정을 다 이해하지만 결론에 대해서는 반만 동의하겠습니다.
그때 생애에서 가장 중대한 첫 마감을 앞두고 있었던 나는 무의식적으로 알았던 것 같다. 무엇을 마감하기 위해서는 그 마감 앞에서 혼자여야 한다는 걸, 절대적인 고독이 필요하다는 걸, 그것은 누구와 나눌 수도 없고 나누어서도 안 되며 심지어 누구에게 엿보이거나 들켜서도 안 되는 나만의 내밀한 직면이어야 한다는 것.
인생이 한 방으로 결정 날 수도 있는 대한민국의 입시 풍경이다. 권여선 작가의 글 - 스물에도, 마흔에도 마감 - 이라 뭔가 더 심오한(?) 상황인가 했다. 그래도 이런 풍경과 심정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공통적이고 대중적인 마감의 경험일 수도 있겠구나 싶다.
나는 곧 마흔이었고, 마흔은 일곱 살과 다를 바 없이 세상이 하라고 시키면 할 수밖에 없는 무력한 나이였다. 불혹의 다른 이름인 ‘부록’처럼. 본문의 삶을 못 가진 나 같은 인간은 기꺼이 부록의 삶을 받아들여야 했다.
마감을 한다는 것은 끝내기로 한 것을 끝냄으로써 약속을 지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크든 작든 그건 내 삶의 흐름에 하나의 이정표를 세우는 일과 같다. 삶의 시간을 이쪽과 저쪽으로 구획 짓는 일이다. 마감 이전에는 내 모든 것이었던 하나의 세계를 그곳에 놓아두고 떠나는 일, 마감을 지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려고) 했던 자신을, 어쩌면 시간이 더 주어졌다면 더 나아졌을지도 모를 그 세계에서 단호히 끄집어내 그 너머의 세계로, 더 이상 손쓸 수 없는 전혀 다른 차원으로 데려가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마감이란 말 앞에서 언제나 깊은 경외와 두려움을 느낀다.
권여선 작가의 글만 자꾸 되읽고 쓰고 있다. 이리 될 줄 아예 몰랐던 건 아니지만……, 어쩔 수 없다.
사랑하는 일을 계속해서 사랑하려면 목부터 곧게 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랑하는 일로 나를 해치고 싶지 않다. 무너진 몸으로 글 쓰는 일을 지랄이라 폄훼하고 미워하면서도 여전히 사랑할 걸 알기 때문이다. 대상이 무엇이 되었든 그것을 향한 사랑이 애증으로 변하는 것은 슬프고 고된 일이다.
알콩달콩하고픈 마감에 나는 항상 앓고 닳고
웃다가 눈물도 나고 다시 웃기고, 마지막 문장에 홀린 기분이다. 강이슬 방송작가의 작품들을 막 찾아보고 싶으다.
주어진 일을 그저 일로서 맞이하는 것과, 그 일에서 나도 모르는 다음의 나를 얻어내는 것은 전혀 다를지도 모른다. 나아지고 싶다. 이 일로 인해 또 한 번의 다음이 있다면 좋겠다. 아직은 모르는 일을 할 수 있게 되는 과정을 또 만나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마음을 잃지 않고 지금의 직업을 넓게 유지하고 싶다. 168
읽기 전에 미처 생각 못했던 것인데, 다양한 분야, 다앙한 직종은 마감 역시 다양하구나, 하는 것이다. 또 저만 몰랐나요. 그리고 마감 상황보다 더 재미있게 읽히는 것은 저자들의 생각이다. 내 마감은 어떤 모습일까……. 조금 궁금하다.
나는 어떤 마감 스타일일까?
1. 사랑이 넘치는 박애주의자
"마감이 우리 인생에서 그렇게 중요한가요? 우리 그냥 사랑을 해요."
2. 자신에 대한 신심이 깊은 Believer형
"마감요? 내일의 내가 하겠죠!!"
3. 살아있고, 고로 마감하는 데카르트 형
"마감이란 그런 겁니다. 살아있다. 마감을 한다."
4. 마음이 콩밭에 가 있는 소작농형
"마감 때만 되면 자꾸만 '딴짓'이 하고 싶어져요."
5. 믿는 구석이 있는 베짱이형
"마감이 어디 있어? 내가 원고 주는 날이 마감이지!"
좋은 욕심을 가진 사람들일수록 걱정을 하며 산다고, 중략. 인생을 윤택하게 하는 수고와 부지런함은 실은 실패에 대한 걱정과 불안으로부터 오는 거라고 했다. 쓰는 동안 이유 모를 불안함에 뒷목이 서늘해질 때마다 삶을 더 괜찮은 쪽으로 끌어당겨주는 걱정의 힘을 믿었다. 더 잘하고 싶어서 나는 지금 불안한 거라고. 그러니까 걱정 없이 마음껏 걱정하라고 스스로를 달랬다.
휘리릭 읽으며 발췌한 책들도 그냥 읽었다 쳐주자며, 그런 후한 막바지 기준으로 분류해도, 올 해 읽자고 했던 책들 중 9권이 덩그러니 남았다. 그리고 다시 읽지 않겠다, 고 기증할 책들이 4상자에 가득하다.
...
그래 이제 그만 마감이다,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