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블러드
임태운 지음 / 시공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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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IRUS……PARA……SITE

 

SF를 좋아하고 우주에 궁금한 게 많고 관심에 비해 환경에 무지한 나로서는 저항할 수 없는 좀비아포칼립스* x 스페이스오페라** 작품이다오염된 지구와 새로운 선택지전 세계가 실제로 전시상황인 요즘에 선택지도 없는 독자로서 어떤 마음으로 읽게 될까 궁금하기도 했다.



아포칼립스(Apocalypse) : [SF 용어세계종말을 테마로 하는 장르인류 문명이 거의 멸망한 뒤의 세계관또는 그런 세계를 배경으로 삼는 픽션 작품을 뜻함.

** 우주를 무대로 전개되는 활극적인 우주 공상과학소설의 총칭



인류는 먹이사슬의 정점에 선 이래 그 어떤 맹수에게도 왕좌를 내준 적이 없었지만 정작 그들에게 체크메이트를 선언한 주인공은 이빨도발톱도 없는 존재였다특수 광견병 Z19. 모든 대륙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창궐한 초거대 역병이었다전 지구적 방역은 실패로 돌아갔고 치료제 개발 역시 성과가 없었다속도가 문제였다전염되는 속도가 대비책을 만드는 속도를 가볍게 앞지를 정도로 빨랐던 것이다살아남은 자들은 죽지 않는 자들로부터 안전해지기 위해 스스로를 격리했으나 그로 인해 조금씩 고사해갔다.

 

바이러스 창궐이란 문구가 확 마음에 와 닿는 만큼 걷잡을 수 없는 감염 속도’, ‘방역 실패이런 문구들에 기사가 아니란 걸 알지만 불안에 두근거린다어떤 디스토피아건 SF의 이야기 속에서 신나고 재밌기만 했던 좋았던 시절은 영원히 지나버렸다그래도 최선을 다해 즐기며 읽어 보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지구에서의 신분과 재력은 게르솜 탑승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다뛰어난 두되를 갖고 있거나 아니면 강한 면역력과 신체 조건을 타고나야 했다최상위권의 두되를 가진 천재라 하더라도 공감 능력이 결여되었거나 공격적인 성품의 소유자라면 탑승할 수 없었다.

 

어쨌든 살아남은 인류가 있고 이들은 새 행성으로 이주를 시도하다 의문의 재난을 만나 우주를 표류하는데…… 끔찍하다이런 절망 가득한 상황에서 화이트블러드 즉 백혈인간 이도가 등장한다상처 많은 영웅이 주인공감정 동조가 쉽다주인공이니 당연히(?) 성장 배경활약상생각과 고민 등등을 알려주는 배분이 많다무척 서사적이고 신비한 인물이다.

 

대방벽을 계획했을 당시 기아나 우주센터장은 평등과 박애를 벽돌 삼아 장벽을 세우겠다고 설파했다 한다하지만 벽을 지나치게 높이 쌓은 모양인지 대방벽 안에서 가장 먼저 품절된 것이 바로 그 두 가지였다신체 등급에 따라 계급이 나뉘고 누구의 밑에서 태어나느냐에 따라 인생의 격차는 말할 수 없이 커졌다친구를 죽이고 은인을 배신해야만 살아남는 암흑가의 논리가 이도에게는 요람에서 듣는 자장가였다.

 

그 외 다양한 캐릭터들도 모두 매력적이다훌륭한 액션 능력이 있고 시원 불편한 독설들도 마구 뿜어내는 연령과 종족의 다양성에 AI도 등장한다. 1993년 개봉작 [블레이드 러너]를 몇 번이고 보면서 인간다움과 품격을 지닌 복제인간과 비겁하고 저질스런 인간들의 대비에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을 무엇인지깊은 고민에 빠졌던 기억이 곤란하게도 다시 난다.

 

[...... 저는 현재 여러 명의 인간과 동시에 대화를 나누고 있어요그 덕분에 저의 대화술도 풍부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27초 전에 새로운 욕설도 하나 습득했어요......]

말해봐.“

[지네 신발 벗기다가 굶어 뒈질 새끼.]”

 

무척 흥미로우면서도 고민이 되었던 투표 장면생사를 건 선택의 상황에서 현실에서 잠들 것인가 수면파아무런 보장은 없지만 희망을 찾아 나갈 것인가 비행파으음......

 

분명히 탈출했는데 어째서 다시 이곳에 왔지?]

 

기억의 역류와 감각의 혼재사내는 언젠가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교육받은 적이 있었다중략태풍이 지나간 자리의 호수처럼이것은 냉동 수면에서 강제로 해동될 때의 자연스러운 각성 과정이다중략.

 

반란입니까!“

 

모세가 두 아들을 가리켜 이르기를 하나의 이름은 게르솜이라

이는 내가 이방에서 나그네가 되었다 함이요.

하나의 이름은 엘리에셀이라

이는 내 아버지 하나님이 나를 도우사

바로의 칼에서 구원하셨다 함이더라.

(출애굽기 18:3-4)

 

당신의 추축은 옳았습니다우리 엘리에셀이 우주 한복판에 멈춘 이유는 게르솜을 마주쳤기 때문이에요.” 중략.

동생이 형을 따라잡고 만 거죠.”

 

지구엔 누가 남아 있을까요.” 중략.

누가 남아 있든지그걸 인간이라 부를 순 없을 겁니다.” 중략.

“‘무엇이라고 불러야겠죠.”

 

인간은 합리적이지 않지특정 상황에서는 밧줄 없이 빌딩에서 뛰어내리거나 불타는 기름 위에 몸을 던질 수도 있어.”

[어떤 특정 상황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공포에 질렸을 때.”

 

언급하는 내용마다 스포가 될 듯해서 두렵다.  절대적인 재난그래도 찾아야할 희망상황은 수용하지만 더욱 강해지는 생존 욕구그리고 가족애이 모든 것들은 잘 버무려질수록 실패 없는 재미를 보장한다나는 이 작품에서 보이는 클리셰도 재미있게 읽었다친구와 적이 선명한 작품이 재미있었던 어릴 적에 비해 나이가 들수록 어느 한 사람도 온전히 비난할 수 없는 점들이 보인다다 나보다는 멀쩡해 보이는 점도 한 몫을 한다안타까운 점은 정답이 없는 상황에서는 나와 생각이 같은’ 사람들만 내 편이 되고 나머지는 모두 일단 적이 된다는 절박함이다.

 

우리에겐 이도와 같은 주인공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생존력전투력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능가하는 의지와 이유하지만 지금도 함께 살아남기 위해 있는 힘껏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수많은 분들이 계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나는 그분들과 함께 지금 살고 있다는 것에 내 희망을 걸어 두겠다.

 

인간은 성장이 멈춘 후 아이를 낳는다신생아가 커가는 속도는 상상을 초월한다마치 아이와 부모가 다른 시간을 살고 있는 것처럼업는다는 것은 아이가 자라는 속도를 부모가 함께 느낄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중략어깨 너머로 세상을 배우는 것은 자녀의 전유물인 것 같지만부모도 어깨 너머로 자식을 느끼며 같은 시간을 살아보려고 노력한다.

 

"죽이지 말고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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