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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사냥꾼 ㅣ 책 먹는 고래 16
문신 지음, 찌아 그림 / 고래책빵 / 2020년 11월
평점 :
인류는 자신의 ‘그림자’를 보고 온갖 상상을 하며 살아왔고 여전히 그런가봅니다.
무채색의 윤곽만 있지만 해가 떠 있는 동안엔 한 치도 떨어지지 않고 꼭 붙어서 어디든 따라가는 그림자에 대해 문득 문득 무섬증이 드는 걸까요. 혼자인 시간엔 누구나 자기 그림자라도 보며 이런 저런 상상을 하며 견딜 수밖에 없어서일까요. 혹은 그림자에 혼자 간직할 수밖에 없는 비밀을 차곡차곡 묻어둘 수도 있겠지요.
굳이 찾지 않아도 그림자가 등장하거나 관련된 이야기들을 장르 구분 없이 끊이지 않고 만나게 됩니다.
그림자. 사냥꾼. 플루토!
제목만 봐도 벌써 으스스한 모험이 펼쳐지리라 짐작이 됩니다.
주인공의 이름은 불탄입니다.
특이한 이름이지요.
뜻이 뭘까 이리저리 생각해보았습니다.
5살 때 집에 불이 난 후 엄마가 행방불명이 된 사건과도 묘하게 연결이 있는 듯한 느낌.
불탄의 아빠는 땅속에 묻힌 광물을 탐사하는 일을 합니다.
역시 지하세계로의 연결을 자연스럽게 연상시킵니다.
할머니와 함께 사는 조손가정입니다.
사색을 즐기고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기도 하지만 씩씩하고 당당한 주인공입니다.
신기하게도 교감 선생님이 아이들을 그림자 세계로 인도하고,
불탄에게는 그림자 사냥꾼 자질이 있다고 독려하네요.
별명이 무려 ‘천 개의 눈을 가진 신 인드라’입니다.
이 외에도 신화와 판타지 작품의 등장인물다운 이름들 - 크로노스, 카이로스 - 이 더 나옵니다. 뜻밖에 엄청 철학적이지요.
마치 “너의 시간은 크로노스인가, 카이로스인가”하고 신이 두둥 나타나 갑자기 물어볼 듯합니다.*
* 고대 그리스 인들은 시간 개념을 크로노스와 카이로스로 나누어 구분 지었습니다. 크로노스는 절대적인 시간인 반면, 카이로스는 주관적인 시간, 오직 나와 관련된 시간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살아가는 일이란, 크로노스를 끝없이 카이로스로 바꾸는 일일 지도 모릅니다.
마귀산, 늪, 지하 도시에도 들어가며 비밀을 밝히고 전투를 하는 모험이 시작됩니다.
친구들과 함께하는 모험이지만, 나름 복잡한 아이들의 세계인지라 고민과 배신과 반전과 극적인 계기가 부족하지 않게 발생합니다.
그나저나 그림자 세계로는 어떻게 가는 걸가요?
바로바로 뜀틀을 뛰어 시간의 저편으로!
정말 귀여운 발상의 장치입니다.
뜀틀 번호 배열순서가 건너갈 수 있는 시간대를 선택하는 방식입니다!
장편으로 분류된 만큼 글로써 이야기 승부를 보는 작품입니다.
전개될수록 도입 부분의 일상적이고 귀여운 모습들은 모두 사라지고,
마치 해리포터가 10살에서 다 건너뛰고 15살이 된 듯 진지한 분위기의 내용이 펼쳐집니다.
뭘 말해도 스포일러가 될 것 같지만……
결말이 예상 밖으로 멋지다는 - 이것이야말로 순전히 개인 취향이겠지요 ― 말은
꼭 하고 싶습니다.
고색창연한 소품들이 등장하기도 하고, 뭔가 엄청 멋진 척 폼을 잔뜩 잡는데
또 세상 쿨한 그런 이율배반적인 매력이 있습니다.
몰입해서 재미를 느끼며 읽을 수 있었던 가히 '대모험' 이야기 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