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일 - 동물권 에세이
박소영 지음 / 무제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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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하잘 것 없는 글이 아이들에게 밥 주고 물주는 것보다 가치 있는지나는 여전히 결론 내지 못했다. 23

매일 이런 생각에 마음이 따끔거리면서 인터넷 접속을 합니다.

 

문제는 내가 서 있는 곳이 아니라 그곳을 보는 태도였다. 64

왜 저쪽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냐고 사람들을 미워한 적이 있습니다.

 

자칭 동물권 옹호자인 내가모든 생명을 소중히 여긴다고 자부하는 내가 생명을 임의의 기준으로 나누고 누군가에게 혐오의 딱지를 붙여왔다고 생각하니 머쓱했다. 80

아주 작은 날벌레를 재미삼아 현미경으로 보았는데믿을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완벽한 신체구조였습니다내게 무한한 예산을 주고 만들어보라고 해도 할 수 없는 생명체란 생각이 들었지요그 순간 이후로 누구의 생도 중단시키는 일은 늘 괴로웠습니다그래도 파리는 모기보다 백만 배나 더 싫고 살아서 한 공간에 절대 있고 싶지 않습니다…….

 

단지 고기를 먹지 않기로 한 것뿐인데 이상하게 자주 외로웠다. 88

아주 오래 전 일인데 아직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한 달 전 온 중도 고기를 먹더라걱정 말고 고기 드세요” 라고 끈질기게 설득하던 식당 사장님어쨌든 호의라는 걸 알지만…… 제가 알지도 못하는 승려가 한 달 전 고기 먹은 일이 저와 무슨 상관이……오래 전 일입니다.

 

내게 채식은 신념에 가깝지만타인에게는 그저 기호에 불과할 수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아무리 그렇다 해도 상대방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기대할 수 있는 것 아닐까? 91

사실 우리가 다른 일로 짜증이 난 상태가 아니라면 비난을 예의로 바꾸는 일쯤 다 잘 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이 산불 역시 온난화로 인한 이상 고온 탓임을 생각하면 동물들 앞에 머리를 조아려야 할 것 같은 심정이 된다. 104

호주의 상황을 볼 때마다 끔찍했고 매일 두려웠는데 어느 새 또 잊고 살았네요.

 

그러니 이전의 내가 어떤 사람이었든 내게 중요한 것은 현재와 현재를 충실하게 살려는 의지일 것이다. 108

언젠가 좀 더 단단해지고 싶습니다.

 

누군가를 담보로 얻는 것을 아름다움이라 부를 수도 없지만설사 그렇다 해도 그 아름다움과 수천수만 마리 토끼의 목숨을 바꿀 수 없다여기까지 쓰고 나니아름다움이 대체 무엇인지 묻고 싶어진다. 119

큰 영향을 받은 피켓 시위 장면이 있습니다. “표범 가죽은 표범이 입어야 가장 아름답다.” 당위와 팩트로 설득하는 일에 지쳐가던 때라서 단 비처럼 반가웠습니다때로는 미감감수성에 물어 보면 답이 더 분명할 때가 있는 것을.

 

다른 생명의 목숨줄을 밟고 그 위에 서서 숨 쉬는 것은 멈춰야 한다어디서 시작해야 할까바로 잡을 수 있는 사람은 당신과 나뿐이다. 119

소비하는 모든 상품의 정보를 모으는 일이 힘들고 불가능할 때가 많습니다그러니 적어도 열심히 나서서 활동하시는 분들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배우고 기억하고 선택하려 합니다.

 

무언가를 할 수 있었음에도 모른 척한 것은 맹세코 아니다내가 발 벗고 나섰다 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그러나 그런 노력조차 해보지 않은 것이 오래 죄책감으로 남았다결국 나는 나를 위해 세미나에 간 것이었다내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해서위로 받기 위해서동물권 공부는 그저 핑계에 불과했다나는 도망치듯 스터디를 빠져나왔다. 123

못지않게 비관적인 편이지만꾸준히 끈질기게 하는 일이 모든 것을 달라지게 할 수 있다고 어느새 믿게 되었습니다불혹의 나이에 겨우 하나 건진 성과라고 믿고 싶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생각이 있다. '내가 해야 한다'는 것. '누군가가 하겠지', '돌보는 사람이 있으니 그가 하겠지같은 건 통하지 않는다무언가 해보고 싶어도 어느 순간 돌이킬 수 없이 늦고 만다. 124

누군가도세상도결론도 생각하지 말고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마음이 편해집니다그러니 고민되고 괴롭고 불안하면 뭐든지 아주 작은 일이라도 일단 해보길 바랍니다예를 들면 배달메뉴에서 육류를 하나 줄이시거나사고 싶은 것들 중 막 그렇게 갖고 싶지 않은 것 하나 목록에서 삭제하고 뿌듯한 성공을 맛보시길진심입니다.

 

하지만 내가 보고 경험한 세계를 외면하지 않는 것은 작으나마 내게 주어진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그것 하나라고 제대로 감당할 수 있기를오늘도 희망한다. 132

박소영 작가께서 작다고 하며 감당한 역할과 제가 감당하는 작은 역할의 실제 크기는 다르겠지만작은 역할들을 꾸준히 하는 이들이 더 많아지길 바랍니다이미 정말 많은 분들이 계신 줄 압니다.

 

우리가 문학과 영화를 접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우리는 '생득'을 벗어나기 어렵다인종성별성적 지향 등 타고난 조건이 사고를 지배한다내 입장과 처지를 벗어나 다른 이의 삶을 상상하는 것은 쉽지 않다그러나 문학과 영화는 이것을 가능하게 한다딛고 선 자리를 벗어나 다른 사람의 자리에 서보는 것불완전하게나마 그들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책과 영화를 통해 우리는 다시 태어나지 않고도 타인의 존재를 감각할 수 있다. 147

그런 책들 중 하나가 [살리는 일]이고 만나게 되어 반갑고 감사합니다.

 

'별다른 도리가 없었을 것'이라고 썼지만부끄럽게도 이렇게 생각하게 된 지는 오래되지 않았다홈리스들을 볼 때면 그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텐데책임을 방기하며 살아간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다그러나 누가 감히 타인의 삶을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그 누구도 삶을 시작부터 내려놓지 않는다세상 어디에도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다. 234

그렇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소비는 지구를 망가뜨리는 문제적 행위다환경친화적인 소비도생태적 소비도 모두 소비일 뿐이다. (나 역시 이 문장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 부끄럽다.) 163

12월에도 꽤 많은 소비를 했고 모두가 불가피한 것들은 아니었습니다.

 

누구를 의식한 것도무엇을 바라고 한 행동도 아니었다그저 그렇게 되었다그렇게 해서라도 내 마음의 부채의식을 조금이나마 씻을 수 있기를 바란 것 같다. 170

살다 보니 그저 이렇게 되었을 뿐입니다저도원한다고 억지를 부린다고 되는 일은 별로 없었습니다.

 

지구를 인간만이 아닌 다른 생명체와 나눠 쓰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224

코로나가 제대로 가르쳐준 것들 중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작가는 혼잣말을 하듯일기를 쓰듯자신에게 들려주듯 그렇게 글을 쓴다.

아무리 내 쪽을 보고 나를 쳐다보고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해도,

끝까지 선언도 강의도 아닌 채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 나도 듣고 있나의 여부가 중요하지 않게 혼잣말을 달아 보았다.

그러니 부디 이 책을 읽기 전부터 인간만 비난하고 죄책감을 무기 삼아 동물보호를 강요하는 책이라고 생각하지 말아 주시길 바란다.

 

캣맘으로 살면서 겪은 일들을 조용히 적고 사례들을 충실히 기록할 뿐이다.

선택지가 있는지 없는지할지말지는 모두 각자의 몫이다.

생명이 소중하다는 말이 작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조용히 깊이 성찰하는 이야기이다.

그 의미가 설득력이 있어 꾸준한 관심을 가지고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다.

비열한 악당들인 인간들은 죄사함을 받으려면 유기동물을 도우러 당장 뛰어나야 한다고,

육식은 얼마나 역겹냐고 채식주의자가 되라고,

화장품을 사용할거라면 비건을 사용하라고고함치지 않는다.

 

동물권도 그렇고 다른 의제들이 등장할 때마다 사람들의 반응 속에는 참 안타깝고 서글픈 장면들이 늘 반복된다

부디 할 수 없는 일을 왜 시키냐는 불편한 마음이 들더라도,

그런 말을 하는 이들의 주장을 근거 없이 부정하지 마시길,

사람들 자체를 철천지원수처럼 증오하지는 마시길 바란다.

 

왜냐하면 그렇게 반응 하지 않아도 괜찮기 때문이다.

모두 다 정답을 몰라 다 같이 어째야할지 몰라 혼란스럽고 힘들기 때문이다.

 

기후재앙인 것은 맞다육식문화와 산업이 큰 해악인 것도 맞다.

하지만 어떻게 당장 비건채식주의자가 될 수 있고 다른 누군가를 강제할 수 있을까없다.

그러니 하기 싫은 일을 누구에게 강요당하는 것처럼 분노하지 마시길.

 

할 수 있는 일을 꾸준히 하는 것만으로도 참 좋은 일일 것이다.

아무리 사소한 노력이라도 성공할 수 있는 일들을 하게 되면 본인의 불안도 옅어지고 기쁨도 분명 늘어갈 것이다

예를 들어 육식을 즐기지만 낭비는 하지 않는다거나 과식하는 습관에서 적당히 먹는 것으로 바꿨다거나.

 

언제나 꿈이 작고 스스로의 실천도 폼 나는 게 없는지라,

나는 그런 노력들도 충분히 멋지고 기쁘고 행복하고 칭찬받을 일이라고 믿는다.

각자의 정답들을 찾아 각자의 계획대로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전체주의국가가 아니고서야 그것만이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작가가 아님에도 매우 정성스럽게 호통을 치는 목소리들이 가끔 내게도 온다.

문장들에 도사린 폭력성을 느낄 때마다 작가에 대한 걱정이 든다기우이기만 바란다.

한동안 데이터가 쌓이다보니 한 가지 눈에 띄는 점이 있다.

모두 다른 아이디인데 주장이 아주 흡사하다는 것이다.

설마 한분이 아이디를 바꾸는 성가신 수고를 감수하시면서 늘 제게 쪽지를 보내오시는 건 아니시죠?

 

동물과 인간이 살아온 방식과 무관하지 않은 이유로,

어쩌면 바로 그 방식으로 인해 발생한 판데믹 상황에서

바이러스로 생과 사가 갈리는 사람들의 숫자가 오르내리는 보도를 확인하며 매일이 지나가는 2020년의 말미에,

이제야 조금씩 정리될 것과 이해될 것과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윤곽을 드러내는 이 때에,

팩트가 어쨌든 간에 인간의 죄를 사하기 위해 그릇된 것을 바로 잡다 살해당한 성인의 탄생을 기리고 그 의미를 되새기는 날에,

살리는 일의 의미가 많은 이들의 마음에 기다리던 함박눈처럼 내려앉기를스며들기를성탄절의 밤이 포근하기를 기원하고 싶다.

그래서 흐릿하고 어둑한 미래에 간신히 사라지지 않은 희망에 반짝거리는 빛이 비추기를,

그 길에 함께 하는 이들이 가득해지길,

그래서 늘 유치하고 허망한 거짓이었던 그리고 모두가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기적처럼 가능해 지기를 오늘은 진심으로 기원하고 싶다.

 

동물들의 겨울과 여름에 대해 알게 된 지금에야 나 아닌 다른 이의 계절을 상상해본다약자를 위하는 마음은 또 다른 약자를 생각하는 마음과 연결되고 확장된다. 236

밖에 겨울바람 소리가 세차다…….



늘 그렇듯이 100분의 1도 소개하지 못하고 함축적으로 줄이지도 못한 중언부언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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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찾지 못해 '제목 없음'의 '무제'로 이름 지은 출판사의 첫 책이 박소영 작가인 것에 감사한다그녀로 인해 '무제'는 이 사회에서 소외된 무언가를 찾아내기 위해 꼼꼼히 눈을 돌릴 것이다남몰래 쓸쓸히 아파하는 존재들을 위하는 마음그 소중한 마음을 깨우쳐준 작가의 글에도 감사를 보낸다. 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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