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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중국인의 상술 - 상인종 열전
강효백 지음 / 지식과감성# / 2020년 10월
평점 :
품절
과문해서 강효백 저자에 대해서도 저서에 대해서도 모르고 살다가, 올 해 봄에 <세상을 바꾸고 싶은가 제도를 바꿔라>를 무척 인상 깊게 읽고 많이 배웠다. 뜻밖에 나뿐만 이아니라 가족과 친구들도 내용과 논조에 동의한다는 의견이 많았던 것이 기억이 난다. 아직도 덜커덩 거리는 행정처 개설과 정비에 관한 보도를 접할 때면, 기억에서 빠져 나간 부분들이 궁금해서 한 번 더 읽어 보고도 싶다. 어쨌든 주제의 묵직함에도 불구하고 잘 읽을 수 있었다는 점이 저자의 소식을 듣고 반가운 마음이 들게 한 중요한 요인이었다.
미처 기억나지 않는 이력을 다시 찬찬히 살펴보니 그야말로 최고의 중국전문가들 중 한분이신 듯하다. 26권이나 저술하시는 동안 한 권도 읽은 적이 없어 조금은 민망하다. 정말 운 좋게도 8권의 책 중 상인종 중국인 관련 이야기의 에센스와 업데이트한 내용들을 모아 한권으로 출간하셨다니 이 기회가 아니면 언제! 라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 시절은 익숙한 것들을 멈추게 하는 대신, 생각해 본 적 없는 것들을 마련해 주기도 한다. 구태여 찾아듣지 않아도 한동안 연일 미중 무역전쟁에 대한 보고가 들리고, 그럴 때마다 등이 터질 것만 같은 대한민국의 처지는 어떨까 걱정이 들었다. G2니 차이메리카니 하는 이야기들이 다 캐치용 언론 용어 아닌가 했는데 백신 개발에 대한 전 세계의 관심이 들끓게 되면서 인구와 개발 규모에 관한 냉정한 경제 분석 결과를 알게 되었다. 아주 간단히 요약하자면, 인구수는 여전히 국력이었다. 대한민국의 인구 규모로는 신약 개발은 수입보다 덜 매력적인 일이며, 따라서 자체 개발은 경제 원리를 아예 배제하는, 비합리적인 투자이다.
이런 대한민국의 형편과는 대조적으로 중국은 하고 싶은 거 다 해도 내수만으로 투자비용을 가뿐히 초과해서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것이 나라이다. 다시 말해, 중국은 내수만으로 전반적인 경제 운용이 가능한 나라이다.
중국 갑부 상위순위 2천 명의 총 재산이 우리나라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두 배에 육박하게 되었다. 2019년 글로벌 500대 기업 중 중국 기업이 129개, 세계 TOP200 갑부 가운데 21명이 중국인이었다. 지금 중국 땅에는 8만 명의 억만장자(개인자산 190억 원 이상)를 비롯한 121만 명의 천만장자 군단들이 ‘아직 나는 배고프다’ 식인지, 세상의 모든 돈을 싹쓸이할 작정인지 계속 돈을 쓸어 담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현 제13기 전국인민대회 대표(국회의원) 2,987명 중 기업가의 수는 900여 명에 다해, 당정관료(1,500여 명)와 함께 G2시대 중국을 웅비시키는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날 명목상 ‘노동자 농민 연맹국가’에서 중국은 영락없는 ‘당정 관료 기업가 연맹국가’로 변신한 것이다.
올해 상반기 한국에 대한 외국인직접투자에서도 중국은 주요국 중 유일하게 금액과 비중이 함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의 올해 상반기 대한국 직접투자금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 3억달러에서 184.4% 늘어난 8억5,600만달러를 기록했다. 전체 외국인 직접투자 중에서 차지하는 비율 역시 3%에서 11.2%로 껑충 뛰었다. 전체 외국인 직접투자 규모는 미국·일본·유럽연합(EU) 등 주요국 투자액이 일제히 감소하면서 전년 동기 대비 22.4% 줄어들었다.
특히 중국이 그 동안 금융·부동산 중심으로 대한국 투자를 해오던 것과 달리, 바이오·비대면 업종에 투자를 집중, 투자패턴의 변화가 일어나는 조짐을 보였다. 지난해 상반기 대비 의약은 약 7만4,000%, 전기·전자는 3,800% 급증했다. 부동산 투자액 증가율은 95.9%였다.(한국일보 9월13일 기사요약)
강효백 저자는 상인종 열전이란 부제를 달았다. ‘장사를 하기 위해 태어났다’ 할 만큼 상술에 뛰어난 중국인들의 모습을 근현대에서만이 아니라 오랜 역사를 통해 자세히 살펴 볼 수 있다. 하나의 중국, 하나의 대륙, 하나의 체계로 고공관찰을 하는 건조한 이론서도 아니고, 각 지방의 특성을 개별적으로 다루는데, 이런 구성이 생생하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큰 매력으로 작용한다. 그렇다고 사례 나열은 아니고 역시 탄탄한 이론과 분석이 도저히 깔려 있다. 전반적인 역사의 테두리를 잡아 주면서도 구체적이고 지역적인 차이점들을 짚어 주는데, 그 중에서도 자체로 역사가 된 유서 깊은 상점들은 가독성을 높이는 흥미롭고 실제적인 사례들이다. 그 중 한 상점의 역사는 조선왕조 오백년…….
그러고 보면 우리 민족의 역사는 지독하게 사농공상의 신분제를 유지해 왔고, 식민지와 한국전쟁이라는 역사적 단절을 감안하더라도, 그 때문인지 역사 속에서 역사를 자랑할 만한 기업이 없다.
읽는 재미가 줄지 않는 꽉 찬 저서라서, 저자의 박식함에 감탄하느라 술술 읽히는 부분도 많다. 나는 덕분에 행정학 전공인 친구가 그토록 자주 찬미하며 언급하던 사마천의 사기의 내용중 일부를 만난 순간이 기뻤다.
부자가 되는 길은 농업이 공업보다 못하고 공업은 상업보다 못하다.
자수를 놓아 문장을 희롱하는 일은 시장바닥에 앉아 돈을 버는 일보다 못하다.
비록 말업이라고들 하지만 부자가 되는 지름길은 뭐니 뭐니 해도 상업이 최고다.
화식열전(재산을 모은 사람들) 중에서.
저자는 마지막 장에 ‘대한민국 국민’이 중국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고, 판매 전략은 어떤 식으로 수립하면 좋을지에 대한 조언을 담았다. 비록 사업가가 아닌 독자이지만 끝까지 챙겨 읽었다. 이 책은 가장 단순하게 요약하자만 중국인과 중국 경제, 역사와 인물들, 대표기업들에 대해 소개하고 분석한 비즈니스 가이드북이라 볼 수도 있다. 하지만 평생을 관련 연구를 하고, 실제 근무를 하고, 그 모든 경험들을 바탕으로 오랜 세월 저술한 저자의 연륜이 느껴지는 재미있고 의미 있고 흥미로운 내용들 - 넓고 깊고 정확하고 실무적인 - 이 한 가득이다. 해박한 지식이 한 가득 펼쳐지는 먼 나라 이웃나라의 글판, 이라고나 할까. 읽기 전에 마음을 단단히 먹고 성실히 읽어보자 했는데,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