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아이 - 무엇으로도 가둘 수 없었던 소녀의 이야기
모드 쥘리앵 지음, 윤진 옮김 / 복복서가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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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뇌세포들은 매일 SNS 세계로 사라져만 가는지…… 정확한 과정은 흐릿한데…… 김영하 작가의 글을 오랜만에 읽었고북클럽 얘기가 나왔고[완벽한 아이책소개를 읽고 경악해서 읽어낼 자신이 전혀 없었는데뭔가 발칙한 관련 글을 남겼는지 복복서가*에서 책이 왔다롯토가 당첨된 양 놀랐습니다감사합니다마음의 준비가 덜 되었어,란 핑계로 며칠을 흘끔 거리기만 하다가 표지의 아이가 뇌 속에서 계속 달리고 있는 느낌을 떨칠 수 없어 책을 펼쳤다.



<On the Run>

출생 전부터 인질로 살도록 정해진 감옥을 박차고 달려 나온 아이배경이 무엇으로 보이시나요.

 

[완벽한 아이]는 소설이 아니라 작가가 4세부터 19세까지 겪었던 사실이다작가 모드 쥘리앵은 자신의 이름을 등장인물에 붙인 것이 아니라 그가 모드 본인이다. 1960년대 프랑스에서 실제로 발생한 알려지지 않은아는 이들은 모른 체한 극악한 범죄이다모드는 부모에게서 탈출한 뒤에도많은 도움을 받으며 새로운 삶을 살게 된 후에도두 아이의 어머니이자 심리치료사가 되어 살게 된 후에도더 필요했던 모든 세월이 지나, 38년이 흐른 뒤에야 이 글을 썼다.

 

나는 깨달아야 한다나는 아버지의 원대한 계획으로 태어났고 아버지가 나에게 맡길 임무들을 완수해야한다내가 아버지의 계획만큼 해내지 못할까봐 두렵다나는 너무 허약하고 서툴고 어리석다나는 아버지가 무섭다거인 같은 몸집강철도 뚫을 듯한 눈길의 아버지 앞에서면 오금이 저리고 다리가 후들거린다.

 

그가 퍼부어대는 욕을 듣고 그가 날리는 따귀를 맞아가면서 나는 아코디언과 피아노 외에도 기타클라리넷바이올린테너 색소폰 그리고 트럼펫을 배운다여덟 살이 될 때면 나치의 수용소에서 살아남기에 충분한 무기를 갖추게 될 것이다.

 

아버지는 자신이 무엇을 하든 전부 다 나를 위해서라고 되풀이해 말한다자신의 삶을 온전히 나를 위해예외적 존재가 될 운명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나를 키워내는 일에나의 형체를 빚고 조각하는 일에 바치고 있다고 말한다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나를 사랑했다고도 한다.

 

아버지라는 자 루이 디디에의 교육 방침은 학대와 고문이다그 방식대로 아이를 양육하면 초인이 완성된다고 믿는다이렇게 진지하게 미친놈이 있어! 그런데 그 미친놈이 계획한 대로 결혼출산양육이 아무 제재도 받지 않고 죄다 진행된다이쯤 되면 이 정도 미친놈이 살기에도 더없이 좋은 세상인 것이다.

 

6살짜리 여아 자닌 를 구매해서 제 자식을 초인으로 양육하기에 (저 혼자 생각에)필요하다고 여기는 것들을 교육시키고, (저 혼자 생각에)아이 낳을 준비가 되었다고 판단해서 아이 낳고, (저 혼자 생각에)보충이 필요하다고 믿는 다종다양한 학대를 첨가해서 초인키우기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모드가 탈출하기 전까지 어머니는 아이의 보호자가 아니라 남편의 충실한 조력자 역할을 한다깊은 충격과 슬픔과 울화를 동시에 그리고 반복해서 느끼며 읽는다.*

 

아동학대는 근절된 적이 없으니 최근까지도 아동학대 사건이 발견되면 발생률에 비해 드물게 사건화 되는 현실남편을 왜 말리지 않았냐고 아는 것도 생각도 없어 보이는 난폭한 질문을 하는 경우들이 드물지 않게 있다자닌의 경우처럼 6살 때부터 완벽하게 통제된 삶을 산 경우라면 더 말할 것도 없지만성인이라 하더라도 지속적인 폭력을 당하며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살아남은 온통 망가진 또 다른 피해자에게 그 말밖에 할 말이 없는 건지물론 어머니 쪽이 주범이나 적극적인 공범으로 밝혀진 사건들을 모조리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이런 부모가 만들어 놓은 세계가 전부였을 아이인데그래도 모드가 탈출했다는 사실이그 생명력이 비현실적일 만큼 대단하게 느껴진다망가지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굴복하지 않은 모드의 판단들과 행동들을 내가 뭐 아는 게 있어 평가할 수 있을까단지 확신범에 대한 단죄와 처벌의 부재가 견디기 힘들게 짜증나서 눈도 마음도 흐려진다정성스럽게 미친 인간이 정말 1960년대 프랑스에 살던 루이 디디에 하나뿐일까모드의 표현에서 연상되는날개가 잘린 채 새장에 갇혀 피에 젖어 있는 수많은 인질들의 모습이 번뜩 떠올라서 소스라친다.

 

나는 죽음의 냄새가 떠다니는 그 지하실에 갇혀 있는 시간이 죽도록 싫다허리가 아프고구역질이 난다고기들은 아무리 싸도 끝이 없다하지만 최악은 송아지를 잡을 때다고기가 '질겨지지않게 하려면 평온하게 긴장을 푼 상태에서 잡아야 하는데송아지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편안하게 해주는 일이 나에게 주어지는 것이다도축꾼은 치아가 하나밖에 남지 않은 입으로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그렇다니까요동물 진정시키는 일은 어린애들이 잘해요특히 여자아이가 최고죠!"

 

나는 린다에게 오리깃털을 자르는 끔찍한 가위질 소리겁에 질린 오리가 똥을 지릴 때 나는 냄새 얘기를 해준다사실나 역시 우리 집 연못의 오리와 다름없는 신세다아버지와 어머니가 내 한쪽 날개의 깃털을 피가 나도록 바짝 깎아버리고 나머지 한 날개의 길고 아름다운 깃털을 지니게 만들었다.

 

모드에게 밀착해서 읽다 보니 완벽이 어찌나 폭력적으로 들리는지살면서 완벽을 경험한 사람이 있나흠이 없다는 건 또 뭔가사물에는 몰라도 적어도 사람에게 자질로서 요구할 말은 아니어야한다고 단어에도 감정이 마구 투사된다다 읽고 나니 미치광이 아버지가 바라던 초인 자식을 완벽한 아이라 여겼다는 정보를 주려고 이 제목을 정하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면서 안 그래도 헝클어진 마음이 더 갈팡질팡한다어쨌든 누구든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잖아대상도 없이 화를 내며 소리를 지를 뻔했다.

 

아르튀르한테 가서 두려움에 대해 이야기하는 순간이 나에게 주어지는 유일한 위안이다나는 아르튀르에게 빠짐없이 얘기한다중략전부 다 한다내가 옆에 앉아 이야기하면 아르튀르는 조용히 귀를 기울인다귀에 입을 대고 말하면 아르튀르도 린다처럼 간지러울 텐데그래도 내 말을 끊지 않고 가만히 들어준다내가 나의 슬픔을 속삭이는 동안 아르튀르의 귀는 미세하게 전율하고그 전율에 내 마음이 풀어진다.

 

도스토옙스키의 인물들은 보고 있기 힘들 정도로 아름답다중략도스토옙스키의 인물들은 삶을 두려워하거나 의심하지 않고삶에 맞서 벽을 세우지 않는다반대로 삶을 사랑하고그 안에 잠기고필요하다면 아예 깊숙이 빠져버린다그들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뭐든지 겪어볼 만한 가치가 있어더 이상 두려워하지 마."

 

어느 날 처음 보는 도스토옙스키의 책을 찾아낸다나는 충격에 빠져 읽고 또 읽는다내 마음을 그토록 강하게 흔든 주인공은 바로 내 아버지의 모습이다. “그에게서 아무 것도 기대하지 마그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위험한 사람이야도망쳐!”

 

나에게 리스트 헝가리 랩소디 2번은 소중하다오래 전에 데콩브 선새임이 악보를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 곡을 목표로 나아가렴언젠가 같이 하자꾸나.“ 헝가리 랩소디는 나에게 다른 미래가 가능하다고 영원히 이곳에 묶여 있지 않을 거라고 말해 주는 것만 같았다.

 

셰퍼드 린다집 오리 피투말 아르튀르조랑말 페리소, <적과 흑>의 마틸드, <지하로부터의 수기>, <페스트>, <레미제라블>, <파리의 노틀담>의 주인공들이그리고 탈출 동아줄 역할의 몰랭 선생길에 마주친 누군가의 미소와 조건 없는 친절도움을 받은 수많은 사람들생물학적 가족 이외의 생명들과 음악과 문학이 모드의 진짜 가족이고 친구이고 선생님이었다.

 

아버지의 손이 내 얼굴로 다가오고아버지의 긴 손가락이 내 이마 위에서 열을 확인한다이제 그 손이 내 뺨을 어루만져주길 나는 온 힘을 다해 기원한다손가락 끝으로라도 한 번만 만져준다면 바로 그 순간 이 집과 철책과 담이 사라지리라우리는 함께 바깥에서 자유롭고 행복하리라하지만 손길은 없다아버지의 손가락은 내 이마를 떠난다.

 

정말 마음에 안 들었지만…… 생존에 꼭 필요한 부모의 애정과 손길을 온 힘을 다해 갈구하는 어린 아이의 기원이 찔리는 듯 아프고 슬퍼서 한참 울음이 났다마침 혼자여서 금방 그치지도 못했다울고 나니 사는 일이 허정하게 느껴지는데생각만은 업무 이행 중인 듯 또렷하다.

 

살면서 정정당당 공명정대 허심탄회하게만 상대를 대하고 의견을 나누고 설득을 하며 살지는 못하거나 안한다특히 아직 제대로 된 대접을 받을 존재가 아니라고 암묵적으로 생각하는 아이들을 대할 때는 솔직담백진실한 태도보다는 살짝 살짝 악의 없이 속이거나 교묘하게 설득하거나 과장하거나 약간의 조작을 가하는 방식이 보다 쉬운 혹은 영리한 선택일 경우가 있다.

 

자세히 읽지도 않았는데문득 전교 일등만을 원하고 강요한 어머니를 살해한 고수험생 사건이 떠오른다좀 더 오래 전손톱속옷가방 검사를 하던 시절머리칼과 치마 길이를 정하고 규정 위반이라 판단되면 인신을 구속시키던 시절그 모든 일들의 결이 루이 디디에가 한 짓과 다르지만 완전히 다른 것도 아니다.

 

그저 한번의 미소가 누군가의 삶을 바꿀 수 있음을,

공격적인 말 혹은 눈길이 한 사람의 세상을 어둡게 할 수 있음을 모두 알게 되기를.

 

살면서 내가 의도가 없었거나 무지의 소치라 하더라도 학대한 이는 없나식은땀이 흐른다못된 말은 참 많이 하고 살았다딱히 남을 공격하려는 심사는 아니었다고 변명해본다 나는 먼저 뭘 하는 타입이 아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공개적으로 합의한 것도 발표한 것도 아니라 남들은 모르는데혼자 딱선을 그어 놓고 누가 조금이라도 침범하면 마치 내가 너를 오래 인내했으니 이건 네 책임이다이런 최후의 결전처럼 서늘한 감정을 실어 날카로운 말의 방패를 휘둘렀다정당방위라 믿었다.

 

몇 달 전 아동학대를 같이 잘 지켜보자며 배지들이 몇 개 도착했다여기저기에가방에도 달고 다니지만충실히 행동한 적이 없다여러 아이들이 눈에 띄어도 한번 살펴보려 한 적도 없다무슨 생각이었을까학대 받은 아이들이 내 배지와 인간성을 한 눈에 알아보고 스스로 다가와 사정을 조리 있게 잘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하겠지라고 정리했던 건가.

 

2020년 대한민국의 현실에서는 아동복지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본회의를 통과했다이것의 의미는 지금까지는 아동권리보장원 직원들이 아동학대 가정을 방문해 조사를 하려 해도 부모가 완강히 거부하면 집에 들어가는 것조차 어려웠는데이제는 재학대 방지 조치에 실효성이 더해졌다는 것과아동학대는 더 이상 가정사가 아니며학대는 체벌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될 수 없다는 사실을 주지해야 한다는 뜻이다내 집구석 일이라고 간섭 말라고 당당할 수 없다는 얘기다, OOO OO!*

 

우리궁수자리 태생들지구본은 나를 꿈꾸게 하는 경이로운 물건이다.

 

궁수자리 태생지구본을 보며 많은 꿈을 꾸었다.

지구본은 돌릴 수 있어도 지구의 인류 문명은 멈춰 죽어 가는 시절이다.

지구의 어디서든 탈출 결심이 선 아이들이 달려 도착할 수 있는 곳이 여전히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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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작가와 정은수 대표는 문학동네와 협업을 하는 독립브랜드 출판사를 운영하는데작가가 기획하고 발굴할 수 있는 운영 체계이기 때문에 출간할 수 있었을 작품이 [완벽한 아이]라 생각한다실없이 위치정보를 찾아보고 서울청 유실물보관센터 근처인 것도 혼자 의미심장하게 느낀다.

 

담고 있는 정서를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고 사용해본 적도 없는데, ‘빡침이란 단어가 어떤 느낌인지 감이 왔다요즘 아이들이 더 힘들게 사는 게 맞나 보다.

 

지난해에 벌어진 아동학대 사건은 총 345건으로 2015년에 비해 두 배 이상 증가했고재학대 비율도 매년 지속적으로 증가해 작년에만 3431건에 달하는 재학대가 발생했다(기사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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