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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싱킹 - 속도를 늦출수록 탁월해지는 생각의 힘
황농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11월
평점 :
[몰입, 황농문 2007]을 재밌고 흥미롭게 읽은 독자들은 저자의 이름이 무척 반가울 것이다. 특히 몰입하지 못하면 금방 지루해하는 뇌를 가진 이들이라면 당시의 몰입적 사고 열풍 역시 반가웠을 것이다. 출간 당시 나는 한국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는데, 깨달음을 얻으려면 반드시 인도로 가야한다는 듯이 너도 나도의 인도 여행기가 출간되고, 명상과 요가가 웰빙과 더불어 레저가 되는 분야에 산업 자본이 몰리는 때여서 솔직히 몹시 당혹스러웠다. 100만 명쯤이 성공 체험을 발표한다해도 안 맞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그 흐름은 욜로와 소확행에 이르러서도 마찬가지이다.
‘인도는 핵강대국이고 한국보다 산업기술이 발전되어 있고 실리콘 밸리 기술자들은 인도인들이 무지하게 많습니다.’
‘웰빙well-being은 웰두잉well-doing을 비판하는 용어로 사용되며, 이렇게 살아야 한다면 인간도 휴먼비잉human-being이 아니라 휴먼두잉human-doing이라고 해라! 노동과 사회에서 번 아웃된 사람들의 절규가 담긴 말입니다.‘
‘You only live once. 정확히 뭘 제안하시는 겁니까? 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지요.’
‘소확행……. 긴급 처방으로 필요할 때도 있겠지만, 문제에서 시선만 돌리고 내버려둔다면…… 불가역적인 비극이 닥쳤는데 내 돈 다 어디 갔어! 의 고통도 감내해야하는 사태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뭐, 이런 반감이 줄줄 들었다. 물론 자기검증을 반복하며 혼자 머릿속으로만 생각했다.
저자는 슬로싱킹 장기 몰입의 원칙 11 중에서 ‘1초도 생각을 놓지 않는 연습’과 ‘하루 30분씩 규칙적인 운동’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운동은 산책이나 걷기로 바꿔서 2021년 [작심삼일이라도 도전하고 싶은 목록]에 올려 볼까 싶다. 1초도 생각을 놓지 않는 연습은 표현만큼 무시무시한 방법은 아니다. 처음 읽었을 때는 이 무슨 확실히 가능성 제로인 제안인가! 싶었다. 실은 산만한 습관을 바꿔보라는 권장이다.
슬로싱킹은 집중된 상태를 유지하되, 생각이 한곳에 머물지 않고 문제 해결을 위해 역동적으로 두뇌 활동을 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집중과 다르다. 슬로싱킹을 연습하고 익숙해질수록 다급하게, 얕게 생각하던 기존의 습관을 천천히 깊게 생각하는 습관으로 교체하게 된다. 28
집중력, 혹은 몰입을 지속할 수 있는 능력은 연령에 따라 다르고 개인마다 다르고 처한 환경과 관계도에 따라 천변만화할 것이다. 예를 들어 갓난아이를 양육하는 부모에게는 아무리 좋은 의도와 결과가 있다고 해도 어지간한 용기가 아니고서는 - 어쨌든 겁쟁이인 나는 - 감히 제안하기가 어렵다.
과학 전공 연구자들에게 부러움을 산 발견을 한 과학자들이 역사에 존재하는데, 그 중 초등시절에도 자주 등장한 인물은 독일의 화학자 아우구스트 케쿨러이다. 그는 현대 유기 화학의 주요 창시자 중 한 사람으로 평가 받는데 그의 가장 큰 업적은 벤젠의 고리 구조를 발견한 일이다. 물론 여기에도 복잡한 이야기와 사정들이 얽혀 있긴 한데 - 일단 차치하고 - 그가 꿈을 꾼 것이 사실이라면 왜 꾸게 되었다고 설명해야할까.
당시엔 케쿨러의 특별히 뛰어난 직관 능력이라고도 불리고 심리학 연구에서도 자주 인용되는 일화로 다뤄지고, 창의력이나 통찰력에 꿈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등의 이론이 있었다. 그런데 슬로싱킹 - 지치지 않을 강도로 산만하지 않게 꾸준히 하는 사고 습관 -을 읽다 보니, 이는 늘 벤젠의 구조를 고민하고 궁리하던 그의 뇌가 필요한 정보와 실험이 쌓여가자 어느 순간 이론적 정답을 도출해낸 것이란 생각이 든다(순전히 제 개인 의견입니다).
물론 과학의 창시자기 되기 위한 뇌훈련을 주장하는 것도 의미 부여하는 것도 아니다. 각자의 지향 목표나 달성 레벨은 모두 다르고 상대 비교 채점을 하는 경우는 없으니, 스스로 비교하는 일만 하지 않으면 어쩌면 각자에게 유용한 툴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기억 저장 위주의 주입식 학습은 각성 상태에서, 기억 인출 위주의 생각하는 학습은 이완 상태에서 하는 것이 유리함을 알 수 있다. 즉 단어를 암기하거나 강의를 들을 때는 각성 상태가 유리하고, 내용을 이해하거나 미지의 문제를 풀 때는 이완 상태가 더 유리하다. 바로 이런 이유로 미지의 문제를 해결하고 아이디어를 얻는 데 슬로싱킹이 유리하다고 하는 것이다. 72
내 연령대는 이미 뇌가 퇴화의 단계로 접어들었다는 것이 정설이고, MRI로 스캔하지 않아도 뇌의 여러 기능들이 떨어진다는 것은 실감하는 중이다. 뇌를 단련할 여지가 있나, 퇴화 속도를 줄일 방법이 있나 책을 두어 권 들춰 보기도 했다. 내용 중에는 뇌의 가소성이란 키워드로 나이가 들어도 뇌의 능력은 변화할 뿐만 아니라 발전할 수도 있다는 주장도 있고, 심한 뇌손상을 입은 이가 음악 치료로 언어를 되찾는 예를 들어 나이와 정비례하지는 않는 뇌의 변화 가능성을 강조하는 내용도 있었다. 나날이 발전하는 뇌과학 분야에서는 이미 뇌에 담긴 지식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한다.
슬로싱킹은 어쩌면 이 모든 이론서들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이야기를 제안하는 지도 모른다. 기본은 언제나 중요하고 그것이 도전 가능한 종류라는 것은 더 중요하다. 몸과 마음이 스트레스 없이 편안하게 이완되도록 자신을 돌보고 원하는 생각의 끈을 놓지 말고 산만해 지는 대신 지속적으로 생각을 유지해보자! 라는 느긋한 제안.
우리가 하고자 하는 몰입은 일상을 살면서 마주치는 크고 작은 문제를 해결하고, 나의 역량을 최대로 발휘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완된 상태에서 내게 주어진 일에 고도로 집중함으로써 창의적인 깨달음을 얻고, 평온하고 행복한 정신 상태에 도달하여 마침내 가치관의 변화에까지 이른다는 점에서 그 효과는 간화선이나 정좌 수행에서 추구하는 바와 크게 다르지 않다. 104
김장철이라 갑자기 떠오른 생각인데, 재료가 똑같아도 만드는 사람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것은 김치만의 신비가 아닐 것이다. 슬로싱킹 역시 활용하는 주체에 따라 어쩌면 놀랄 만큼 넓은 스펙트럼의 결과들을 보여줄 지도 모른다. 시간이 흐를수록 원하는 결과, 기대 이상의 결과를 만났다고 이야기하는 이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나도 슬로우 슬로우하게 흉내는 내보려한다. 예를 들면 정좌 수행보다는 걷기 명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행위 자체에서 흥분과 재미가 느껴지고,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기적 같은 아이디어가 높은 빈도로 떠오른다. 그럴 때마다 희열과 전율이 느껴진다. 그럴 때 삶은 눈부시게 찬란해지고, 이 경험은 계속되어 자기 삶에 스스로 감동하며, 깊이 숨겨진 잠재능력을 끄집어내는 자아실현을 경험하게 된다. 323
이런 효과는…… 내게는 스케일이 지나치게 크다. 네, 전 못합니다.
지적인 도전이 즐겁고, 몰입할 수 있는 대상이나 과제가 반갑고, 가능하다면 피부 주름이 쪼글거려도 뇌는 천천히 퇴화되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뇌를 자극하고 단련시키는 일을 막 조바심내고 긴장하고 결과를 예단하면서 하고 싶진 않다. 특히 게으름을 가장 뚜렷한 특징으로 이제껏 살아 온 습관이 있는지라 - 친구들은 내가 거짓말을 안 하는 이유가 단지 게으르기 때문이라고 늘 비웃는다. 스스로 한 거짓말 몽땅 기억하는 게 귀찮아서.ㅠㅠ 오래 생각하는 건 할 수 있으니 쉬고 싶을 때는 쉬면서 망상에 가깝더라도 평생 즐겁게 생각하는 힘을 기르고 싶다.
이렇게 쓰다 보니 이 얼마나 순둥순둥한 계발서인가 싶어 호감이 좀 더 상승한다. 마지막으로 실천할 가능성이 없어 가장 안타까운 매력 넘치는 제안은 ‘아이디어를 폭발시킨다는 낮잠’이다. 낮잠을 자라니! 허나 밤잠도 얼마 못자는 지라…… 기면증의 도움 없이는 넘지 못할 장벽이다. 이루 말할 수 없이 속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