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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캐슬 교육위원 이야기
문일룡 지음 / 지식과감성# / 2020년 10월
평점 :
세대란 것이 30년으로 합의되었을 땐 편했다. 그저 대략 30살을 전후로 다음 세대가 탄생한다는 사회적 통계에 다름 아니었으니까. 70년대 생인 나는 태어나보니 아스팔트 세대니 사이언스 세대니 하는 호명들이 이미 마련되어 있었다. 꼭 그래서만은 아니지만 그런 사회문화적 분위기 속에서 성장하며 나는 우주비행사가 될 꿈을 꾸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세대명은 일관적으로 생애 주기를 따라 오지 않는다. 20대에는 오렌지족이니 X세대니 하는 새로운 분류법이 생겼고, X세대인 나는 어떻게 사는 게 X한 건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30대 중반 쯤엔 정치적인 성향과 거주지를 묶어 부르는 구별에도 속했고, 눈 깜짝할 사이 부정할 수 없는 꼰대 연령이 되었다. 이쯤 되면 인간은 S자형 곡선을 그리며 사는 게 아니라 생애별 변태를 거쳐 변신하며 사는 생물인 것처럼 들린다.
잔소리의 생애주기를 겪으며 지긋지긋해하던 젊은 내가 떠오른다. 4대쯤 가뿐히 거슬러 올라가는 기나긴 세월이 담긴 잔소리들. 사랑하는 마음과는 별개로 그땐 진짜 수용하고 이해하고 공감할 의지도 능력도 없었다. 지금 10대들이 잔소리는 기분 나쁘고 충고는 왜인지 더 기분 나쁘다고 한다는데, 나 역시 그랬다. 심지어 “제가 도움을 청하지 않았잖아요. 그러니 조언도 사양합니다.” 이런 못된 말도 해봤다.
생과 사를 넘나들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상황, 조선시대,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군부독재, IMF……. 장편대하소설전집으로나 다 담을 수 있을까. 그런 세월을 살아남은 분들의 이야기인데 가치를 몰라 기록으로 남기지 못했고, 당신네들이 못한 것들이 안타까워 보통의 행복을 누리고 살려면 이러저러한 점을 주의하라는 걱정을 고마워하지 않았다. 물론 내가 지금 청소년들을 보며 안타깝고 염려되어 마음이 아픈 것처럼, 내 조상들도 다 이해할 수 없는 새로운 기준들에 따라 휘둘리고 애쓰는 후손들이 염려되었을 것이다.
많은 분들이 소천하셨고 남은 분들도 고령과 질환으로 기운 좋게 잔소리를 하지도 긴 긴 이야기를 들려주지도 못하신다. 이렇게 되고 보니 잔소리만 사라진 것이 아니라 만날 때마다 주시던 사탕과 과자, 간식거리들……, 나이가 들수록 탐탁지 않아 했던 것들도 모두 사라졌다. 어느 해 어느 날 ‘그렇구나, 이제 아무도 나를 만나면 당연한 듯 달달구리를 손에 쥐어 주지 않는구나’, 란 실감이 밤에 강바람을 맞고 선 듯 춥고 서걱거리는 기분으로 돌아왔다.
많이 사랑하는 친구이자 동생 부부가, 출산 때마다 불가피한 내 일과 겹쳐 한 번도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는데, 해외에서 해외로 이사 다니면서 산 세월이 점점 더 길어진다. 그새 큰 아이는 자라 미국에서 진학을 했다. 직장과 교육이란 중차대한 고민으로 이민을 결심할 듯하다. 코로나로 만나는 시간을 더 요원해질 것이다. 그쪽 생활을 아는 바가 없어 별 도움이 안되는 형편이니 그곳에 오래 사셨고 놀랍도록 많은 성취를 하시기까지 경험이 풍부하고 질문에 편하게 해답을 들려 줄 듯한 어른의 이야기를 읽고 상상이라도 하고 싶었다. 질문들조차 아직 서투르겠지만, 나도 준비가 필요하다, 그러니 이렇게 시작한다.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출간해 보는 책이다. 중략. 나의 25년의 공직 생활 중 이 지역 동포언론에 기고했던 700편 가량의 글들 가운데 10 퍼센트 정도를 선정해 다시 가다듬어 엮은 것이다. 그 중 워싱턴 한국일보에 실렸던 글들이 가장 많다. 한국일보에는 지난 10년간 꾸준히 칼럼을 기고했었다. 올 봄 까지는 매주 한 편씩. 중략. 외에 기고되었던 글들은 AM1310 라디오에서 방송 칼럼과 주간지였던 워싱턴 미디어에 실렸던 글들이다. 중략. 거의 23년에 걸친 기간 동안에 썼던 글들이다.
책 제목에 ‘스카이캐슬’이 포함된 것은 작년에 한국에서 높은 시청률을 보였던 TV 드라마에서 페어팩스가 언급되고, 그 드라마에서 나오는 여러 교육 관련 이슈가 내가 5선 교육위원으로 20년 이상 일했던 페어팩스 카운티에서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 출판의 의도는 나의 자랑을 위함에 있지 않다. 중략. 60대의 나이에 들어서 살아온 인생을 뒤돌아볼 수 있는 시점에 다다른 한 인간이 그래도 열심히 살아오며 생각하고 경험했던 것들을 자신의 자식들과 후손들에게 그리고 혹시 관심을 갖고 읽어 줄 독자가 있다면 그들에게 이민자로, 학생으로, 부모로 그리고 이웃으로 살아가며 참고해 볼 수 있도록 제시하고자 함이다.
문의는 skycastlemoon@gmail.com으로 하면 된다.
여행이나 유학과는 다르게 온 가족과 함께 ‘미국에서 이민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가장 큰 주제이고, 그 점이 가장 알고 싶었던 내용이다. 물론 SNS로 알아보고 소통하는 방법도 있지만, 순도 높은 정리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시대와 환경이 다르다고 해도 사는 일은 의외로 그리 별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
다시 한 번 절감하는 것이 누구에게도 산다는 일은 참 쉽지 않구나, 하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삶이든 아니든,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삶이든 혼자이든.
자식과 함께 이민 간 부모라면 생각할 여지가 많은 글이기도 하다.
사명감과 책임감은 물론이고, 성취지향적인 삶 이외에는 의미 있는 삶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못하실 아버지 얘기를 오랫만에 오래 들은 기분이 든다. 더는 발작적인 저항감도 불편함도 없다.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