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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는 말은 언제라도 늦지 않다
김재진 지음 / 김영사 / 2020년 11월
평점 :
표지가 아름답다.
내지도 아름답다.
글도 아름답다.
다른 모든 디자인도 아름답다.
선물하고 싶은 그리운 이들을 떠올리게 하는 힘을 가진 선물 같은 책이다.
수많은 착각과 변명 속에 인생이 간다.
더럽고 탈색한 옷을 입고 있는 고양이처럼
내게도 언젠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간이 올 것이다.
인생은 무심한 날이 있는가 하면 눈물 흐르는 날도 있다.
눈물 흐르는 날이 있는가 하면 불꽃처럼 타오르는 날도 있다.
각자 살다 보니 어느 순간 내게도 주변에게도 경사보다는 조사가, 만남보다는 헤어짐이 더 잦은 시기가 왔다, 벌써 꽤 오래 되었다. 바라는 것, 하고자 하는 것, 성취하는 것과 관련된 에너지를 늘 감당할 수 없었던 부모님은 어느덧 기저질환과 노환과 함께 일상을 이어가고 계시고, 나는 그 중 어떤 것이라도 도울 수 없다. 매일 하루씩 더 나이 들어가며 그만큼씩 기운이 쇠하는 부모를 바라보는 일은 이렇게 무력하고 미안한 마음이 떠나지 않는 일이구나 싶다.
그 마음이 아무리 복잡하고 깊어져도 사랑한다는 말을, 그 표현 그대로 하게 될 시간이 올까. 염려하는 마음을 놓지 않고 의심할 바 없는 애정을 신뢰하는 관계이지만, 그토록 명쾌하고 솔직하게 문장으로 말이 나올지는 모르겠다.
꼬리가 잘리는 학대를 겪은 새끼고양이를 뜻밖에 부모님이 입양하셨다. 평생 고양이를 좋아하지도 원하지도 않으신 분들이라 자손들은 그 일대사건에 한동안 어리둥절하거나 음모처럼 숨겨진 다른 이유를 알아보고 싶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트라우마가 극심할 텐데 낯선 환경에서 고양이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과 어떻게 지낼까, 고양이 걱정을 많이 했다. 어린 생명의 생명력은 참으로 기적처럼 발현되기도 하는지, 건강하게 자라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데, 건강하고 씩씩하게 심지어 상냥하고 표현을 잘 하는 개냥이로 성장하고 있다. 아직도 작디작은 몸뚱이가 얼마나 따뜻한지 고양이가 품에 들어오면 불면으로 고생하는 아버지께서 금방 잠에 빠져든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말없이 서로의 체온을 나누고 불안을 어루만지는 사랑이 느껴진다.
꽃잎보다 가벼운 눈도 쌓이면 무거워지는 법이다.
무게 없는 생각도 쌓아두면 무거워지는 건 마찬가지이다.
눈이건 생각이건 털어내야 젖지 않는다.
삶에서 미끄러지지 않으려면 마음에 살얼음이 끼도록 내버려둬선 안 된다.
중심을 가지되 가볍게 살아야 한다.
아주 오래 묵은 짐을 정리하다가 아주 오래 전 손으로 꾹꾹 눌러 써서 보내준 그리운 이들의 편지들이 잔뜩 나왔다. 내용을 읽기 전 편지봉투의 글씨에 눈물이 차오른다. 내용은 뻔하다. 그 시절이었으니, 사랑한다고, 걱정된다고, 다 잘될 거라고, 그렇게 마음을 가득 담아 서로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 시간은 언제부터 멈춰있었을까.
그 오랜 세월 동안 연락을 주고받아 현주소를 아는 한 친구에게 아주 오랜만에 손으로 꾹꾹 눌러 쓴 편지를 보내볼까 싶다. 가을이 깊어졌고 비가 오고 곧 겨울이고 연말이고 다들 떨리고 힘들고 마음이 흔들거릴 테니……. 네 생각을 하며 길을 나섰고, 편지지를 골랐고, 지금도 네 생각을 한다고……. 조금만 덜 힘들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고, 끝까지 응원할거라고 그렇게 써서 보내 볼까 싶다.
인간이 인간을 이해한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지만,
이해하기엔 너무나 에너지 소모가 큰 대상은 안 보는 것이 좋다.
피해 의식으로 똘똘 뭉쳐 공격적인 이는 치명적인 유형이니
맞서서 싸우기보다 피하는 것이 현명하다. 중략.
모든 피해 의식은 치명적이지만 그 밑엔 사랑받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언제라도 늦지 않겠지만,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들기 전에 할 수 있으면 더 좋겠다.
사랑한다는 말은 언제라도 누구에게라도 늦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