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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우리 이제 떠나자
정예원 지음 / 지식과감성# / 2020년 10월
평점 :
선입견이란 참 대단한 것이, 제목을 보고는 성인이 된 딸이 연세가 드신 어머니를 모시고 여행을 떠난 이야기 아닐까 하는 생각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갈등 상황과 진심 알아가기, 각자의 삶에 대한 좀 더 깊은 이해와 존중을 바탕으로 하는 화해 등등, 마치 드라마 공식처럼 떠오르는 플롯들이 있었다.
이런 생각을 표지의 상큼한 문구 - 엄마와 딸의 행복한 여행이 시작되었다- 가 내용을 들춰 보기도 전에 날려 버렸고, 나는 비로소 내 감성이 어디에 위치했는지 통렬한 실감을 했다. 비록 고3 시절 의논 없이 보름씩 해외여행을 즐겁게 다녀오시는 부모와 살았으나, 대한민국에서 10대 학생인 딸과 어머니가 오랜 여행을 하는 것은 여전히 부재하거나 아주 예외적이란 판단이 굳건하게 내재되어 있던 탓이리라 변명을 마련해본다.
아무리 오늘밖에 살지 못한다, 내일을 살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 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통계적으로 우리는 늘 가깝고 먼 미래에 대한 대비를 해두어야 하고, 그런 행위가 많은 경우 더 합리적인 판단이기도 하다. 내일 당장 죽는 인구보다는 살아 있을 인구가 더 많을 것은 자명하다. 어쨌든 딸은 모르겠으나 엄마는 미래에 미칠 영향까지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받아들인 뒤에야 가능한 결심이 필요했을 것이다.
열세 살에 혼자 미국 유학을 떠난 당찬 딸, 34개 나라, 61개 도시를 여행한 씩씩한 모녀, 언제나 이런 이들은 먼저 부럽고 감탄스럽다. 더구나 그 경험을 책으로 출간까지 하시다니.
아주 예전 20대에 친구들이랑 하던 두 시간 행복한 놀이가 있는데, 복권 일등 당첨되면 뭐할 건지 서로 계획을 얘기하는 것이었다. 집을 산다, 저축한다, 투자한다 등등 많은 상상 속 계획들이 난무했지만 나는 늘 - 친구들 표현에 의하면 철딱서니 없이 - 여행가방을 싸겠다, 였다. 지구에 태어났으니 한번쯤 다 둘러보고 싶었다.
아무도 복권 당첨되었단 소식은 없지만, 누군가는 집을 사고, 저축을 많이 하고, 투자도 하고, 나는 조금 과장하면 지구 반 바퀴쯤은 돌아 다녀보았다. 환경부담으로 인해 불가피한 일이 아니면 여행을 다니지 않겠다고 결심한 후에도, 마음이 훌쩍 동하면 언제든 나머지 반 바퀴도, 육지보다 광대한 해양도 다녀보리라, 그럴 수 있다고 믿었다.
코로나 판데믹으로 이제는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꿈이 되었다.
긴 여행 속에서 이 두 분은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 갔을까 무척 궁금해 하며, 전혀 다른 상황이지만 괜스레 그리움이 떠오르는 기분으로 읽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