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너 (초판본, 양장)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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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소설!’ 평론가가 이토록 극찬한 소설이라니 의심(?)스럽다취향에 절대적으로 휘둘리는 것이 문학작품이고더구나 감상 능력은 다 제각각일 텐데……물론이런 딴지는 최고의 소설을 알아보지 못할 지도 모르는 독자로서의 나를 위해 미리 쳐두는 방어막 같은 비겁함에서 비롯한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닉 혼비*유학 시절 한심한(?!) 인간들을 같이 마구 헐뜯는 듯 뒤틀리고 꼬인 병리학적 공감을 느끼며 가장 크게 웃게 해준 작가라 무조건적인 애정이 있다나만 나이 든 건 아닐 텐데…… 닉 혼비도 나이 따라 고상하고 말랑하고 시시해졌을 가능성이 있지만…… 어쨌든 경애하는 작가가 <스토너>를 애정하고 극찬하니 제 맘에 드는 사람들 의견에는 귀가 얇다 못해 투명하다는 평가를 받는 나로서는 저항감이 스르르 내려간다.


찬란하고가차 없이 슬프며 또 아름답다현명하고 우아한 소설닉 혼비

 

묵묵히 자신을 길을 걷고자 했던 인물에 대한 이야기출세에 뜻도 없었고조용하고 소박하게그러나 쉼 없이 열정을 좇아가는 인물, 존경해야할 인물 유형이지만 궁금하지도 않은 유형이라 다시 망설이게 된다그래도 이 책을 추천한 분들의 면면이 워낙 설득력이 있어 책 정보를 오르락내리락하며 읽어보았다.

 

어머니는 삶을 인내했다.

마치 생애 전체가 반드시 참아내야 하는 긴 한순간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위와 같이 살았는데도 굳이 말하자면 실패에 가까운 삶이라……삶에 주어진 1인분의 고통을 받아들인다는 태도의 캐릭터주류에 속하는 인생이거나 꽤나 많은 남성들에겐 낭만적일 이런 태도를 나는 주변의 무수한 여성들의 불행한 삶에서 숨 쉬기가 갑갑할 만큼 빈번하게 목격했다비겁한 변명이지만 꼭 알아야할 의무감이 동반되지 않는 상황이라면 자세히 알아보고 싶지 않다는 기분이 먼저 드는 내용이다.

 

영문과 교수 윌리엄 스토너를 추모하는 뜻에서 그의 동료들이 미주리 대학 도서관에 기증.”

 

가끔 어떤 학생이 이 이름을 우연히 발견하고 윌리엄 스토너가 누구인지 무심히 생각해볼 수도 있겠지만그 이상 호기심을 충족시키려고 애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스토너의 동료들은 그가 살아 있을 때도 그를 특별히 높이 평가하지 않았고지금도 그의 이름을 잘 입에 올리지 않는다노장교수들에게 스토너의 이름은 그들을 기다리는 종말을 일깨워주는 역할을 하고젊은 교수들에게는 과거에 대해 아무것도 일깨워주지 않고 동질감을 느낄 구석도 전혀 없는 단순한 이름에 불과할 뿐이다.

 

주인공의 마지막을 첫 페이지에 밝히다니안 그래도 망설이는 마음에 온갖 거부할 이유들이 들끓는다……그래, 50년 만에 극적 부활한 드라마에는 분명한 이유가설득력이 있을 것이다에세이도 아닌 소설이과장도 없이 실제 삶과 가장 유사한 질감을 재현한다는 정말로 그렇다면 이 작품은 비소설로 분류되어야 마땅하다매력 파괴의 평범함이 어째서 감동을 주고왜 많은 독자들이 인생 소설이라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지 그 이유는 솔직히 궁금하다그리고 결정적으로 읽지 않고 쌓아 둔 책 타워에서 이 책의 아름다운 표지가 빛나고 있다.

 

(원하는줄거리가 없다. (마땅히기대하는 내용이 없다주인공은 세월이 흘러도 배경이 바뀌어도 관계가 변해도 편안해지지도 행복해지지도 않는다한결같이 어렵고 지난한 삶이 계속계속 흘러간다답답하고 갑갑하다분통이 터질 듯하다묵언 수행의 의무가 있는 양 입을 앙다물지 않으면 후회할 말이 터져 나올 것 같다제발 이 주인공의 삶에서 꼴 보기 싫은쓸데없이 불행만 끼얹는 한 명이라도 치워 달라고 작가에게 연락이라도 해야 견딜 듯하다그러다 호흡 사이에 잠시 정신이 들면(?) 이 정신 나간 작가는 왜 소설에서 주인공을 이토록 학대하는 거냐며 작가에 대한 원망으로 감정의 물꼬가 방향을 틀기도 한다.

 

젊다 못해 어렸을 때 스토너는 사랑이란 운 좋은 사람이나 찾아낼 수 있는 절대적인 상태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어른이 된 뒤에는 사랑이란 거짓 종교가 말하는 천국이라는 결론을 내렸다재미있지만 믿을 수 없다는 시선으로부드럽고 친숙한 경멸로그리고 당황스러운 향수로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제 중년이 된 그는 사랑이나 은총도 환상도 아니라는 것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그는 지혜를 생각했지만오랜 세월의 끝에서 발견한 것은 무지였다.

그리고 또 뭐가 있더라?

그는 생각했다.

또 뭐가 있지?

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는 자신에게 물었다.

 

맙소사…… 이미오랫동안아무도믿지 않아도우리는 이전보다 뭐라도 나아질 거라고최선을 다해있는 힘껏자신을 속이면서까지 견디며 사는데이 작가가 끝끝내 아무 희망의 실마리도 위안이 되는 환상도 배치하지 않는다변함없이 힘겨운 하루하루거기에 대중소의 고난과 시련들이 다채롭고 지속적으로 번갈아 들이친다그러다 거의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인물로 스토너의 삶이 마감되었다라고 쓰여 있다체온보다 높은 온도로 울화가 치밀고 이 소설은 금서가 되어야 천만번 마땅하다는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릴 지경이다.

 

그에게는 지금까지 내면을 성찰하는 버릇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의도와 동기를 찾아 해매는 일이 힘들 뿐만 아니라 살짝 싫다는 생각도 들었다자신이 자신에게 내놓을 것이 거의 없다는 생각내면에서 찾아낼 수 있는 것 또한 거의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마침내 결정을 내리고 나자 결국 이렇게 될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기분이 들었다.

 

스토너는 견디기 힘든 맹렬한 폭풍 속을 지나갈 때처럼 고개를 숙이고옷깃을 단단히 여미고생각은 한 발 한 발 앞으로 내딛는 데에만 고정시킨 채 그 시절을 겪어냈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는 다시 생각했다.

기쁨 같은 것이 몰려왔다.

여름의 산들바람에 실려 온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이 실패에 대해 생각했던 것을 어렴풋이 떠올렸다.

그런 것이 무슨 문제가 된다고.

이제는 그런 생각이 하잘것없어 보였다.

그의 인생과 비교하면 가치 없는 생각이었다.

 

그는 순전히 자기만의 즐거움을 위해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읽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의 머리는 그가 원하는 곳으로 이끌려 가려고 하지 않았다.

생각은 그가 들고 있는 책에서 멀어져 방황했고그가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는 시간도 점점 늘어났다

마치 그가 알고 있던 것들이 때로 머리에서 싹 비워져버리는 것 같았다.

 

이미 날마다 부족한 체력을 마지막 장과 더불어 말끔히 소진시키고심장이 부풀어 올라 목에 걸린 듯해서 애써 삼키는 서글픔을 기어코 빼내려는 불온한 소설이다이런 결말이 내 현실이 될까 눈을 감고 견디는데딱 그런 결말을 말끔하게 보여주는 인물에 정신적 빙의가 되어 체험하는 잔인한 시간을가장 효과적이고 거의 유일한 피난처인 독서로 경험하다니.

 

마지막 종지부는 옮긴이의 말이다.

 

잘 생각해 봐라스토너의 삶이 실패한 슬픈 이야기인가우리 대부분은 이보다 못한 삶을 산다스토너처럼 하고 싶은 일도 자각하지 못하고그 길을 스스로 선택하지도 못하고평생 그 일에 머물지도 못하고애정과 보람은 부재하고의미도 못 찾고매일을 충실하게 삶을 살아내지 못하는 주제에그런 주제에 누구를 동정하는 건지!*”

 

옮긴이가 직접 표현한 내용 그대로가 아니라

분노에 엉클어진 제가 해석한 과장된 어투의 표현입니다

내용상 일치하거나 합의에 이를 내용은 그대로입니다(라고 믿습니다).

 

6시간 30분을 꼼짝 않고 읽은 분의 간결한 서평을 읽고 추천을 받아 읽었다요란하게 망가진 심정으로 안절부절못하다혹시하며 먼저 읽었을 법한 이가 있어 연락을 했더니 7시간을 마법에 걸린 것처럼 움쩍거리지도 못하고 읽고아무도 없기에 꽤나 속 시원히 울었다고 한다.

 

그런가…… 원체 아는 바가 없기도 하지만<스토너>라는 이 작품은 내가 특히 모르는 인문학’ 작품일거란 생각이 문득 든다특정 시공간에서 살아간 지극히 평범한 인물을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작가가 단조롭게만 그려냈지만독자들은 그 이야기 속에서 오롯이 자신만의 사유를 하고 고민을 하고 공감을 하는그런 기능을 하는 매개체로서의 문학독자가 어떤 판단을 하건 강요도 비난도 하지 않는 작품메시지와 이슈와 장르의 형식성에서 가장 멀리 있는 작품……배경이 되고 토대가 될 지식이 너무 없어서 생각이 더 나아가거나 정리되지는 않는다.

 

시간이 생겨도 난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를 걸세.” 스토너가 말했다.

그런 걸 배운 적이 없으니까.”

 

스스로 대단한 기대를 한 적은 없으나 낯 뜨거워질 일은 없을수록 좋겠다싶은데그럼에도 두서없이 내뱉는 말과 별 다를 바 없는 글을 마구 끼적였다(추천해 주신 이웃분께 민망하고 죄송스럽다). 그런데…… 내면의 폭우가 그치자 수치심도 따라 흘러간 듯 멀쩡한 기분이 돌아와 한편 당혹스럽다.

 

나는 무엇을 기대했나?

 

일상에서 아주가끔자그마하고 우호적인 웜홀을 통과한 것처럼 공간이 겹치고 연결되어서아주 멀리 떨어져 무관하게 존재하던 서로 다른 세계들이 우연처럼 차례로 등장하는 신비 체험을 할 때가 있다같은 날 경애하는 한 이웃의 <마담 보바리> 서평 글을 읽고 책을 뒤적였고늘 부러운 다른 분의 서평을 읽고 <스토너>를 펼쳤다따로 실재하던 두 작품을 내가 같은 날 추천받아 읽었다는 행위만으로 <마담 보바리>에서 발견한 말들이 <스토너>를 읽은 감상인 양자리를 옮겨 달라붙는다양자역학이 아름답게 작동하는 미시 세계를 천만 배쯤 확대한 VR을 체험하는 기분이다.



등장인물과 한 몸이 되어서 그들의 의상 속에서 자신의 심장이 고동치는 것만 같아지는

 

당신은 때때로 그런 일이 없어요옛날에 가졌던 막연한 생각이라든가 아주 먼 곳에서 되살아오는 것 같은 어떤 알 수 없는 이미지또는 자신의 가장 은밀한 감정을 그대로 표현해 내놓은 것을 책 속에서 발견하는 일 말예요.’

 

불안이 바닥이 아니라 천장을 계속 치는 날들이 이어지자인내심은 마땅히 차있어야 할 모든 저장 용기가 비어가는 것처럼 가난해진다뭐가 어떻게 되는 건지 알지도 못하고 알아 낼 수도 없는 막막한 시간어쨌든 덕분에 읽는 동안에는 기운 팔팔한 생명체처럼 들끓고 뒤척이는 감정을 맛보았다울지는 못했지만 심정적으로 다 빠져 나오기 전 식료품 쇼핑을 다녀왔더니 정말 낯선생전 처음 보는 물품이 담겨 있는 뜻밖의 망각 체험도 하였다귀리우유………….

 

행복불행 포함 모든 감정과 판단이 모두 개별적 사건들이고 체험이라 종종 아무 것도 권하지 못하지만최고로 단조롭고 담담한 소설을 읽으면서 폭풍 같은 감정의 요동을 느끼고 싶다면 읽어 보시길 권합니다(반응 결과는 독자에 따라 모두 다를 수 있으니 아무런 보장은 못 드립니다만). 그리고 혹시나 무엇을 기대했는지’ ‘한 줄 평감상평서평낙서욕설(?)’ 무엇이든 쓰게 되시거든 제게도 부디 소식 전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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