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단편들이 다 이토록 쓸쓸한 느낌을 남기다니. 내 선입견이 간직한 은희경 작가의 작품답다고 해야 할까……. 덕분에 볕도, 빛도, 바람도 좋은 날이었는데 내내 암막으로 가려 둔 실내에 머무는 기분이다.
비너스를 보며 나는 생각했었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나를 멸시한다고.
The Birth of Venus. Sandro Botticelli
야생동물한테 먹이를 주면 안 돼.
스스로 먹이를 찾지 않고 점점 남의 것을 뺏으려 하거든.
아니면 구걸을 하거나. 훈련된 곰을 야생에 풀어놔봐.
적응을 못하고 먹이를 얻기 위해서 등산객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놈이 반드시 나오지.
인간이든 곰이든 마찬가지야.
친구가 되려고 하면 안 돼.
타인으로 대하는 게 서로 살아남는 길이야.
아아, 인생은 얼마나 많은 암호로 가득 차 있으며 우리는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수수께끼를 풀어야 하는 것일까.
청소년기에 비가역적인 충격을 가한 사건들 중 하나가 암흑 우주 속에 떠 있는 지구 사진을 본 일이었다. 그러니 <유리 가가린의 푸른 별>이란 단편 제목은 그 시절 어느 오후에 느껴졌던 공기 속을 떠도는 향기마저도 남김없이 떠올리게 하는, 압도하는 놀라움과 반가움으로 다가왔는데, 이 단편은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쓸쓸하다.
그래도 난 말이야.
앉은 채로 끝나버리고 싶지는 않았어.
한번쯤은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살아봐야 하는 거 아냐?
아직 그 정도 시간은 남아 있겠지?
덕분에 예전 일기장을 들춰보듯, 흑백텔레비전의 장면을 복기하듯 그 시절을 떠올려본다. 인류 최초로 지구 상공의 우주궤도를 돌고 귀환한 시간은 108분이다. 유리 가가린은 1961년 4월 우주발사기지와의 교신에서 “지평선이 보인다. 하늘은 검고 지구 둘레에 아름다운 푸른색 섬광이 비친다”고 전했다. 암흑으로 가득한 우주에서 지구는 푸르다고 처음 알려온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태양계의 항성, star는 태양 하나 뿐이지만, 하나의 은하계는 약 1,000억 개의 항성으로 이뤄져 있고, 우주에는 은하계가 약 1,000억 개가 있다고 한다. 약 137억 년 전에 하나의 점이 엄청난 폭발을 하며 탄생한 우주는 지금도 계속 팽창하고 있다. 약 130억 광년 떨어진 은하가 관측되고 있으니 - 관측이란 빛이 인간의 시신경에 도착해서 정보를 얻는 일 -, 이 빛은 약 137억 년 전에 떠난 빛(1광년 9조4,608㎞×137억)이고, 지금 우주의 길이와 넓이는 훨씬 더 커졌고, 더 커질 것이다. 우리의 단 하나의 운명은 서로 멀어지며 식어가다 사라지는 것이다.
다행(?!)인 것은 6월 15일, 크리스토퍼 콘셀리스 영국 노팅엄대학교 천체물리학과 교수가 “우리 은하계에 모두 36개의 외계 문명이 있을 수 있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한 일이다. 유일한 지적 생명체라는 진저리쳐지는 절대 고독이 아니라고, 다른 문명이 36가지나 더 있을 수 있다고. 나는 기사 제목을 보고 새로운 문명 게임이 출시된 소식을 본 것 마냥 현실감이 들지 않았다. 일요일 아침, 기차가 어둠을 헤치고 은하수를 건너면~ 이란 주제곡이 흘러나올 때처럼 가슴이 마구 떨렸다. 외롭지 않다는 기분이 번지기 전에 복통처럼 두려움이 번졌다.
천문대를 방문한 지도 백만 년 전인 듯하고, 내 낡은 천체망원경은 언제나 달 표면만을 비춰주고 있으니, 차라리 세종대왕이 모델인 지폐를 꺼내 뒷면을 바라본다. 이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지폐 바탕 그림과 문양은 전 세계에 없을 것이다. 나는 바탕을 이루는 ‘천상열차분야지도각석(天象列次分野之圖刻石)’의 이름을 아직 못 외우고 있으며, 익숙한 오늘날의 광학망원경 옆의 혼천의 또한 설명을 들어도 그 원리를 배우지 못했다.
소설을 읽다가 몇 문장을 적다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또 다시 갈피도 두서도 없는 글이 되었다. 6개의 단편 모두가 완독 후 쓸쓸함으로 회류하는 탓이라고 해둔다.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날씨와 생활
지도 중독
고독의 발견
유리 가가린의 푸른 별
의심을 찬양함
* 해당 논문은 < #천체물리학저널 (The Astrophysical Journal)>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