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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수를 놓는 마당에 시를 걸었다
공상균 지음 / 나비클럽 / 2020년 5월
평점 :
시인의 산문집, 시처럼 간결하면서도 마음을 울리는 문장들이 시인의 세상살이와 더불어 환하게 펼쳐지는 글이 아닐까 그런 따뜻한 상상을 해본다. 구체적으로 그리워하는 고향은 부재한 상태로 살지만, 고향이란 단어를 늘 휴식처로만 소비하는 좁고 얕은 감상이 부끄럽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삶의 터를 잡고 단단하고 올곧게 사시는 분이 이야기는 늘 듣고 싶다. 읽기만 한다고 더 좋은 사람이 되지는 못하겠지만 더 못난 사람이 되지도 않겠지.
천천히 둘러 보듯 읽는 시간, 가장 처음 등장한 이상국 시인의 <국수가 먹고 싶다>를 읽으며 퇴직하고 집에 머무는 시간을 힘들어하시던 아버지와 비빔국수를 함께 먹던 기억이 난다. 마음에 쌓인 힘겨운 내용은 달랐지만 아버지께도 나에게도 국수가 주는 위로가 절실했던 한 시절이 있었다.
30편이 되는 시도 산문도 모두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함께 하는 푸르른 사진들을 보며 흐린 일요일 아침, 여기저기에서 느껴지는 몸의 통증을 잠시 잊어본다. 코로나가 진정되고 나면 시인이 계시는 곳에 가서 한동안 머물 수 기회가 언젠가는 그런 생각도 슬며시 마음에 품어 본다. 참 아름다운 세상살이, 농사와 시작을 함께 어울려낸 삶이 부럽고 존경스럽다.
다감하고 포장 없는 글 내용에 부럽기도 하고 낯설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다. 특히나 이런저런 이유들로 아주 친밀한 일차적인 관계를 만들지 못해서 누군가에게는 판단할 새도 없이 가장 가깝게 느껴진다는 관계들이 때때로 낯선 내 일상의 순간들이 자꾸 떠오른다. 나 빼고 다들 있는 것같은 사소하고 구체적인 그리움과 애착이 부족하구나, 하는 생각이 짙어지는 때엔 사회적 고아가 된 기분잋 찾아와 나는 참 추억이 가난한 어른이 되어 살고 있는 것 같다. 추억이란 자주 미화되고 왜곡되지만 한 시절 완벽하게 안전하고 편안했던 그 세계는 사라져 버렸다. 이제는, 혹은 이미 오래 전에 다른 이들을 안아 주고 맛난 것도 대접하며 살아야 하는 시간이 왔을 텐데, 나이만 들고 제대로 된 어른이 되지 못해 지혜보단 후회가 가득 한 세월이 쌓여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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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공들여 기억하는 늘 따끈하고 배부른 그런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참 좋기도 하고 아프기도 한 글을 찬찬히 읽으며 만나는 연둣빛이 펼쳐진 풍경이 많은 위로가 된다. 특히 도서관을 좋아해서 직접 만들고 '달빛 도서관'이라 이름 지은 작명 사연이 들려오는 일화가 마음을 떨리게 한다. 농사란 달보다 해와 더 가까운 일이 아닐까 했던 선입견이 부서진다. 그래서 밝은 시간 읽는 글이 한 밤에 읽고 있는 듯이 고요하고 아련하다.
시인이 직접 만들어 많은 이들에게 대접했다는 뻥튀기와 녹차 식혜를 읽으며 허기가 차오른다. 세상에서 하나 밖에 없는 1초 느린 더 맛있는 뻥튀기가 태어나던 그 길목에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위안과 웃음과 즐거움을 주셨을 거라 생각하니, 가본 적 없이 사라진 그 시간과 공간이 몹시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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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보다 그림에 머무는 시간을 더 많이 마련해주는 이 책에 감사하며 단아하게 서 있는 소나무와 풍경을 한참 바라본다. 과문하여 그 모양새가 떠오르지 않는 자운영과 독새풀을 찾아가며 다시 보고 다시 읽는다. 참 쉬운 말로만 써 주신 글을 쉬고 멈추고 천천히 읽을 수 있는 시간이라 더 좋다. 이렇게 느리게 사는 일이 글도 인생도 더 맛나게 한다.
대학 시절 내내 점심밥과 바꿔도 그리 억울하지 않고 마음을 가득 채우던 시집들이 자주 눈에 띄었고, 욕심을 한껏 부려 아직도 곁에 두고 산다. 시인이 올려 주신 시들에 그리운 시인들도 다시 읽고 싶은 시집들도 있어서 처음인 듯 매양 반갑다. 얼마나 연습을 하면 부들부들 떨지 않고 차분해질까 절망스러운 손글씨, 시인의 필체가 참 아름답다. 소곤거리고 팔랑팔랑 거리는 생명체처럼 보인다. 한국 사람으로 평생을 살아도 한국어를 참 모른다는 생각이 꾸준히 든다. 그래서 시를 읽다 새로운 단어들을 배우는 기회가 반갑다.
한결같이 개울물이 조용히 흐르듯 정갈하게 갈무리된 이야기들만 들려주시는 것 같지만, 그래도 여전히 갈등이 존재하고 그럴 경우 분투도 하실 터인데, 반드시 그 충돌 에너지가 원하시는 꿈을 이루시는 길로 흘러가길 기원한다. 화려하거나 남에게 손해를 끼치면서 나아는 길이 아님에도 각자의 꿈 하나 이루는 일이 왜 이라 어렵고 좌절이 많나 사는 일이 참 고되다는 생각도 든다.
공시인의 시들이 높이 날아 놀라 축하받으며 출간하실 때, 그 소식을 저도 늦지 않게 들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그 구절들에는 달빛과 바람과 나무와 흙과 고운 사람들이 잔뜩 채워져 있을 거라 행복한 상상을 해봅니다.
사박사박
장독에도
지붕에도
대나무에도
걸어가는 내 머리 위에도
잘 살았다
잘 견뎠다
사박사박
<눈> 윤금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