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형은 제시카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15
존 보인 지음, 정회성 옮김 / 비룡소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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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보인 작가의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을 영화로 먼저 보고 원작을 읽었다예민한 내용들을 더할 수 없이 섬세하게 차분하게 들려주는 원작의 내용도 감동적이고상상해보던 장면을 아름다운 영상으로 재탄생 시켜 준 영화 또한 부족함이 없었다철조망이라는 차가운 소재를 사이에 두고 독일 국적과 유태인 소년들이 나누는 대화들이 아련하면서도 아름답다쉽게 잊혀질 작품은 아니지만 그 감동이 조금이라도 더 사라지기 전에 신작 소식을 들어 정말 반갑다.

 

작가의 작품 경향을 짐작해서 이번 주제 또한 예민하면서도 아프고 힘든 내용일 거라 짐작하면서 읽었다여러 캐릭터들을 상징적으로 돋보이게 드러내는 것이라 분노를 유발하는 내용들도 있지만 너무나 따뜻하고 유쾌한 분위기도 함께여서 조마조마한 마음 한편 재밌고 감동적으로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청소년과 성인 독자들이 함께 읽고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가장 좋을 책이다선입견과 자기 성취 욕구에 강하게 몰입한 성인들의 모습과 사랑과 진심과 이해에 유연한 성장기 아이들이 대비되고 어우러지는 수작이다언제라도 기회가 되면 꼭 여러 세대의 대화를 들어 보고 싶은 주제이다.

 

국회의원을 거쳐 장관이 된 어머니와 보좌관으로 일하는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동생은 뇌에 조그만 구멍이 있어서 인큐베이터에 머물렀다동생이 태어나길 고대하고 기뻐하던 형은 네 살일 뿐인데도 그 옆을 지키고 싶어 한다문화적 차이일지 개인적 차이일지는 모르겠으나 상상 이상의 건조한 대화 내용에 나는 도입부터 이 부모가 놀랍고 충격적이다.

 

한 간호사가 말했다.

누군가 곁에서 자기를 지키고 있다는 걸 아기가 느낄 수도 있어요아기한테는 좋은 일이죠.”

 

적어도 큰애의 안전은 걱정할 필요가 없겠네요.”

엄마가 말했다뒤이어 아빠도 한마디 거들었다.

게다가 오페어에게 야근 수당을 주지 않아도 되고요.”

 

이 형제는 자신의 직업적 성공을 이뤘지만 타인에 대한 애정도 이해도 건조하기 짝이 없는 부모와 살면서 서로에 대한 애정과 신뢰를 키워간다특히 동생 쪽은 형이 자신을 걱정하다 생긴 흉터를 볼 때마다 자신을 가장 아끼고 사랑해주는 존재가 형이라고 느낀다.

 

제이슨 형이 열네 살이 되었을 무렵엄마는 더는 오페어를 둘 필요가 없다고 선언했다형이 축구 연습을 하지 않는 날에는 나를 학교에서 집으로 데려오면 되고축구 연습을 하는 날에는 끝날 때까지 내가 관중석에서 숙제를 하며 기다리면 된다는 것이었다형은 엄마의 제안에 찬성하면서 오페어와 똑같이 보수를 줄 거냐고 물었다그러자 아빠는 형이 이 집에 살면서 월세도 내지 않고먹는 것도 공짜로 해결하는 데다 축구화와 더러운 운동복으로 집 안을 어지르기까지 하니까 그것으로 보수를 받은 셈 치자고 말했다.

 

형이 축구를 잘 하자 부모는 그 점이 유권자들에게 어필될 것이라고 좋아하고 막상 형이 축구를 취미로만 하고 싶다고 하니 이기적이라는 막말(?)까지 한다읽을수록 참신하게 이기적인 부모라 재밌기도 하다이런 장면이 어린 동생의 시점에서 이야기되는 점이 현실감을 더한다.

 

내가 무언가를 잘한다고 해서 꼭 그 일을 죽을 때까지 하고 싶어 해야 하는 건 아니야그 일 말고 하고 싶은 일이 많을 수도 있다고.”

그날 형이 했던 말은 어린 내게도 무척이나 논리적으로 들렸다.

 

동생에게 형은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다학교 글짓기 숙제에서 동생이 형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다섯 가지 이유를 적었는데정말 사랑스럽고 재미있다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형은 성정체성과 관련한 큰 변화를 겪는다일차적으로 당사자가 자신을 받아들이고 심정을 다스리고 진짜 자신의 모습대로 살아가는 일에는 수많은 어려움이 가득할 것이다그런 미래를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아프고 걱정이 많이 되지만차곡차곡 쌓이고 커나가는 동생의 형에 대한 사랑이 큰 힘과 위안이 되어주지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이 커진다어쩌면 그런 대단한 존재에 대해 자신이 기대한 것과 다른 모습을 보고 더욱 반발하고 저항하게 될 지도 모르지만그렇게 되면 정말 쓸쓸한 장면을 맞닥뜨리게 될 것 같아 미리 마음이 무거워진다.

 

내가 형을 찾을 때형은 늘 그 자리에 있었다어린 시절 악몽을 꾸고 겁에 질린 나를 자신의 곁에서 자게 해 주고 아무 걱정도 하지 말라고 달래 주었다내가 글을 읽는 데 어려움을 느끼기 시작하자 아빠는 나를 병원에 데려갔고결국 난독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그때 매일 밤 내 옆에 앉아서 숙제를 도와준 사람도 제이슨 형이었다나는 책장에 적힌 낱말과 글자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춤을 추는 것처럼 보였고깊은 좌절감에 빠졌다형은 그런 내게 결코 짜증을 내지 않았다아빠처럼 젠장여기 적힌 글자를 읽어 보라니까!”라며 소리를 지르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형은 늘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야내가 도와줄게항상 네 옆에 있어 줄게우리는 형제고아무것도 우리를 갈라놓지 못해.”라고 말했다나 역시 형의 말을 믿었다.

 

나는 맏이라서 이런 형의 모습이 대단해보이고 다소 이상적으로까지 느껴진다물론 이 이유에는 나는 동생에게 이런 정도의 시간과 정성과 인내심을 들인 적이 없어서 이기도 하다동생의 글을 통해 알려진 형의 모습은 개인으로서도 상당히 매력적이고 주관이 뚜렷하다특히나 코로나를 이유로 온라인에 머무는 시간이 더 길어진 때라 더 그렇다문득 입학도 학교 생활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지내는 아이들 생각에 마음이 아프고 안타깝다.

 

형이 페이스북트위터인스타그램스냅챗 같은 어떠한 SNS 활동도 하지 않는 이유형은 정작 제대로 체험하지는 않은 채 사진에 그럴싸하게 담는 일에 몰두하고 밤낮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는 요즘 사람들을 도저히 못 봐주겠다고 했다.

 

형이 열여덟 살이 되면 엄마가 소속된 당이 아닌상대 정당에 투표할 거라고 말했던 일형의 설명대로라면 엄마 쪽 사람들은 하나같이 썩었고오직 자신의 이익을 위해 모인 이들이었다.

 

이제 이야기는 형이 자신에 대해 자각하고 혼자 있는 시간을 늘리고 우울해하고 울기도 하는 내용으로 전개된다내 기분도 마치 동생의 심정에 동조된 것처럼 걱정스럽게 변한다여전히 부모는 눈치도 못 채고 엉뚱한 소리나 한다모든 체력과 시간을 다 바쳐 아이를 양육해야하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도움이 필요할 때조차 의논상대로 신뢰받지 못하는 부모의 존재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태평스럽고 무성의한 태도적당히 안전한 울타리를 제공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역할을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함부로 판단할 내용은 아니지만 저런 성격에 왜 굳이 부모가 되려 했나 싶기도 하다어쩌면 사랑하는 상대를 똑바로 바라보고 진심으로 걱정을 하는 태도의 동생과는 달리 아버지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에서 눈을 돌려 모른척하는 쉬운 길을 택한 것인지도 모르겠다더 이상 감추기만 할 수 없는 때가 오면 어떤 대화를 하게 될까 조마조마하다.

 

그리고 그 날 오후.

 

난 네 형이 아닌 것 같아아니형이 아닌 게 분명해.”

 

형이 아니라 누나 같아…….”

 

이 장면에 이르기 전에는 몹시 긴장했는데 막상 닥치니 후련하다 - 실제로는 37쪽 내용상 아주 초반이다이제 가장 걱정되는 것은 세상에서 제일 좋은 형이란 존재가 사라진다는 것을 동생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점이다.

 

영국의 정치계상류층의 삶에 켜켜이 쌓인 때로는 아무 수치심도 느낄 수 없이 노골적으로 때로는 유구한 역사만큼이나 교묘하고 은밀하게 작동하는 여러 권력 게임 전략들과 그에 동반하는 문화적 편견과 폭력성을 담은 이 책은 337페이지나 되는 분량의 가독성을 높이는데 재미난 역할을 한다영국식 블랙 유머와 특유의 비아냥거림을 싫어하지 않는 독자라면 진지한 큰 주제가 전개되는 과정에서의 이런 소소한 장면들에도 즐거워할 것이다형에게는아니 제시카에게는 매 순간 힘들고 지난했을 시간을 지나 나로서는 참 사랑스러운 결말을 암시하는 내용을 알리고 싶지만 다른 독자의 독서를 망칠 것 같아 힘껏 참아 본다.

 

어쩌면 성애를 소재로 하는 글에는 강박적인 윤리적 편 가르기나 절박한 호소 등이 가득해서 읽기가 힘들어 내키지 않아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현실에서 이미 힘든 이들의 이야기를 더욱 돋보이도록 힘들게 쓴 글은 사실 나 역시 여러 이유로 선뜻 반갑지는 않다저자는 이 책에서 단지 성 소수자’ 문제만을 비추려고 하지는 않는다한 때 퀴어 queer라는 명칭이 널리 통용된 것처럼정상과 비정상일반과 이반이라는 이분법적 질서가 공고한 현실에서 이쪽저쪽이 분명하지 않더라도 스펙트럼의 다양한 위치에 자리한 다른’ 면을 가진 이들과 세상이 이들을 대하는 잔인한 태도를 드러내고 싶었던 것같다똑같은 사람들이 아무도 없음에도 아직도 다른 것이 이상한 것으로 조롱받고 차별받는 현실은 적어도 내게는 참 이상하고 비정상인 세상이다. 


물론 그렇다고 저자가 다른 것도 무조건 받아들이고 사랑하자란 복음을 전도하는 것은 아니다아무도 아무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고 수긍할 수도 없다하지만 다른 것만을 이유로 아무런 불법행위도 피해도 끼치지 않은 이들에게 상처를 줄 권리도 누구에게도 없다우리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고 수긍할 수 없는 사람도 사랑하며 살아간다그러니 그저 남을 그대로 인정해주는 것 정도는 원래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저자는 이 소설을 쓰는 동안 젊은 트랜스젠더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한다세상은 사회는 참 냉정했지만 이들은 놀랄 만큼 용감하게 살아간다고 한다부디 열심히 고민하고 성장하는 청소년들과 적대보다는 평화로운 세상이 조금이라도 더 맘에 드는 성인 독자들이 많이 읽고 함께 대화를 나누는 기회가 있기를 다시 한 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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