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들의 세상
혜영.Kim 지음 / 지식과감성# / 2020년 4월
평점 :
절판


하늘을 널리 날아

언덕을 높이 올라

세상을 멀리 뛰어

바람에 깊이 새겨

인생을 달리 살아


 

눈 먼 과학은 위험하다는 담론이 거세던 시절이라 전공을 제외한 교양과목을 철학과 전공으로 채우고 대학원에서 과학철학을 전공했다. 1차서적을 읽는 것이 당연했던 시절 뇌기능이 정지할 것 같은 순간까지 철학서를 읽었지만 철학 에세이,라고 분류된 책을 읽어본 기억이 없다철학이 없는 이야기가 어디 있을까마는 유난히 무력하고 우울했던 날 이 철학 에세이를 펼쳤다원래 철학 에세이는 이렇게 귀엽고 친절한 것인지 아이들과 함께 읽기에도 좋은 내용들이다오랜 세월 교육자로 사신 무척 진지한 프로필을 가진 분이 저자인데 분위기는 알콩달콩 다정다감하다.

 

행복한 삶의 철학 에세이라는 설명이 있는 책을 매 시간이 힘겹고 마음이 허허롭다 못해 탁 손을 놓고 싶기도 하고 공공연히 펼쳐진 허들에 진저리나는 날에 만나다니이번에도 어떻게든 넘기고 견디라고 하는 세찬 위안을 받는 것만 같아 그 이율배반에 웃음이 난다일단 식사를 챙겨야 뭘 하든 기운이 날 것이라고 눈물과 함께라도 삼키라는 그런 음식을 받은 것도 같다.

 

책이 있다는 것은 어느 때는 그 자체로 시간을 완전히 채워주는 기분이다예전에 가능한 많은 것을 배우려 했고 나아갈 방향을 찾으려 했지만이제는 아무 것도 알려 주지 않아도 괜찮다이 책은 그렇게 잔잔하게 묵직한 내 시간을 조금씩 밀어내며 등을 토닥인다때마침 시원한 바람이 불어 들어오고 여름다운 무더운 날에 시원하고 요란스럽게 비가 내린다.

 

저자는 인생에서 희망점이 최종적으로 자기 존재에 대한 행복함이면결코 아쉽지 않은 길을 걸어가는 것이라고독서로 충만함을 느낀다면 바람직한 길로 들어서게 된다고 하지만이는 역시 자신이 그것을 절실히 원하고 마음속을 그런 소망으로 가득 채워야 시작할 수 있는 일이다나는 사는 일이 즐겁고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낙천가도 아니고 세상을 밝고 희망적으로 보는 낙관론자도 아니다.

 

다행히 자의반 타의반으로 더 이상 부질없는 분투와 불필요한 패배감으로부터는 자신을 분리시켰지만문제는 내가 사는 일에 이보다 더 의미 있고 중대한 것을 찾기가 지난하고 지친다는 점이다한 때의 유행 문구처럼 아무 것도 안 하고 싶다 내가 아무 것도 안 해도 삶을 유지하려면 누군가가 무엇인가를 반드시 해야 하니 그 또한 이율배반.

 

저자는 다정한 말투로 목적을 가지고 마음의 길을 계속 걸어라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그러다 만난 오늘 마음의 새 길에 행복의 씨앗을 잘 심고 내일 피어난 새싹을 보고 그러다 그 길 위에서 목적을 이루게 된다는 희망을 늘 간직하라고 속삭인다.

 

콩들의 세상에서 콩다운 행복이란 무엇일까함께 살아가는 세상이지만 누구나 다른 인생을 살아간다같은 기준으로 보여도 누구나 다른 빛깔의 의미를 담아낸다그러니 모든 콩의 행복 또한 저마다의 독특한 모습으로 펼쳐진다.

 

그나마 매일 잊지 않는 것은 좋은 사람들이 세상에 아주 많다는 것이다그들 덕분에 엉망진창인 것처럼 보이는 세상도 망하지 않는다저자 역시 좋은 콩들이 세상에 아주 많다는 것을 안다고 한다그리고 이 콩들은 행복하기까지 하다고 한다저자의 말처럼 나도 늘 세상에 아주 많은 좋은 사람들을 생각하는 것으로 위로와 힘을 자주 얻었다.

 

아는 것은 기대하는 것의 또 다른 모습이다.

세상이 있고 시간이 있고 삶이 있고 존재가 있다.

존재를 삶을 위해 시간을 다하고 세상의 일부로 성장한다.



커피콩 모카

 

세상에 태어난 자신의 목적을 알기 위한 끊임없는 도야는 결국 생명을 진심으로 대하는 과정에서 결실을 이룬다오롯이 자신의 존재를 평화롭게 세우는 내면의 꽃밭을 가꾸는 일은 관계성이 낳은 수많은 미션에서 얻어지는 특정의 동기부여에서 비롯된다얼마만큼 깨닫고얼마만큼 자라나고얼마만큼 일어서고얼마만큼 날아오를지는 결단을 통해서이다그러려면 꿈이 미지의 세계와 조우하는 오랜 시간의 벅차 모험도 견뎌야 한다.

 

하늘을 이렇게 아름드리 만나는 시간은 모카에게 매우 중요한 삶의 시가이다무엇을 어떻게 얼마만큼 다짐하면서 살아야 할지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깃털처럼 가벼운 자유의 한때이다그저 하늘빛을 듬뿍 마음속에 담아가는 초연한 시간이다담담함보다 높고벅참보다 낮은알맞은 리듬의 조화로움이 마음을 적셔주는 올된 시간이니 이 자체로도 고마울 따름이다.

 

완두콩 투리

 

하나를 알면 열을 펼치니 나무랄 데가 없다신념으로 의로움을 다하는 듬직한 콩이다무엇보다 원칙적인 관계의 발전을 따르니어떤 일이든 수행하는 기준이 늘 명확하다중략중요한 것은 어떻게든 항상 기준을 잡고 생활한다는 것이다투리 자신이 정한 기준을 달리 넘어서는 사례는 없다.

 

땅콩 살구

 

진심을 제대로 건네는 마음씨에 더하여 배려하고 베푸는 솜씨까지 겸비한 벗이다쌓은 우정보다 중요한 것은 서로 관계에 가치를 다하는 존재인가 하는 점이다살구의 삶에서 말과 행동은 이런 가치 있는 기준에 귀감이 된다무엇이든 주기보다 어떻게 주는 것이 바람직한지를 가늠할 줄 알면서 행동하니 바탕이 지혜롭다.

 

메주콩 세모

 

세모는 무엇이든 본질을 파악하는 기질을 씨눈에 빵빵하게 담고 자라난다중략세모는 삶에서 가장 잘 하고 싶은 것이 여유를 누리는 것이며어린 마음의 배꼽으로 돌아가 여유롭게 만수무강하는 것이다중략세모가 여유를 갈구하는 것은 일에 전념하는 삶이 녹록하지 않아서다충실하게 일해도 마무리 기점이 없이 다음 일로 이어지는일이 일을 낳는 희한한 삶이다이것은 근본적으로 일을 사랑하여 일에 맹렬한 마음가짐을 세운 탓이다.

 

이티콩 퍼플

 

둥근 빵처럼 생긴 커다란 목성에서 찾아온 멋진 친구이다목성에서 이룬 명예와 지위를 내려놓고안락함 대신에 결코 해내지 못할 무게의 만만찮은 도전을 택한 콩이다중략퍼플이 지구를 찾아온 이유는 오직 하나이다미지의 세계에 존재하는 새로운 희망의 빛을 수신하여 직접 마음을 다하여 보고 싶은 세계를 확인하려던 진실한 뜻이 있다.

 

책을 다 읽고 사진을 찍어 보니 솜콩 레오레오의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는다.

신기한 일이다.

분명히 존재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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