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시툰 : 용기 있게, 가볍게 마음 시툰
김성라 지음, 박성우 시 선정 / 창비교육 / 2020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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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다고 말해주는 시들이 필요한 저녁, 354쪽이라는 얇지 않은 책을 펴들었다. 

그런데 웹툰 1편을 읽으니 20쪽이 지나간다. 

한 시간도 안 되서 남아 있는 분량이 얇아졌다.

이러면 안 되는데......


저녁에      김광섭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 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질투는 나의 힘       기형도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선택의  가능성                   비스와봐  쉼보르스카


   영화를 더 좋아한다

   고양이를 더  좋아한다

   바르타 강가의 떡갈나무를 더 좋아한다.

   도스토옙스키보다 디킨스를 더 좋아한다

   인류를 사랑하는 나 자신보다

   사람들을 사랑하는  나자신을 더 좋아한다.

   실이 꿰어진  바늘을 갖는것을  더 좋아한다.

   초록색을 더  좋아한다.

   모든  잘못은 이성이나 논리에 있다고

   단언하지 않는 편을 더 좋아한다.

   예외적인  것들을 더 좋아한다.

   집을 일찍 나서는 것을 더 좋아한다.

  의사들과 병이 아닌 다른 일에 관해서 이야기 나누는 것을 더 좋아한다.

  오래된 줄무늬 도안을  더 좋아한다.

  시릉 안쓰고 웃음거리가 되는 것보다

  시를 써서  웃음거리가 되는것을 더 좋아한다.

  사랑과 관련하여 매일매일을  기념하는 것보다는

  비정기적인  기념일을 챙기는 것을 더 좋아한다.

  나에게 아무것도 섣불리 약속하지않는

  도덕군자들을 더 좋아한다.

  지나치게  쉽게 믿는 것보다 영리한 선량함을  더 좋아한다.

  민간인들의 영토를 더 좋아한다.

  정복하는 나라보다 정복 당한 나라를 더 좋아한다.

  의심을  가지는 것을 더  좋아한다.

  정리된 지옥보다 혼돈의 지옥을 더 좋아한다.

  신문의 제 1면보다 그림형제의 동화를  더 좋아한다.

  잎이 없는 꽃보다 꽃이 없는 잎을 더 좋아한다.

  품종이 우수한 개보다 길들지 않는 똥개를 더 좋아한다.

  내눈이 짙은 색이므로 밝은 색 눈동자를 더 좋아한다.

  책상서랍들을 더 좋아한다.

  여기에 열거하지않은 많은 것들을 

  마찬가지로 여기에 열거하지않은 다른 많은 것들보다  더 좋아한다.

  숫자의 대열에 합류하지 않은 

  자유로운 제로(0) 를 더 좋좋아한다.

  기나긴 별들의 시간보다  하루살이 풀벌레의 시간들을 더 좋아한다.

  불운을  떨치기위해 나무를 두드리는 것을 더 좋아한다.

  얼마나 남앗는지, 언제인지  물어보지않는 것을 더 좋아한다.

  존재, 그자체가 당위성을  지니고 잇다는 

  일말의  가능성에 주목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시를 찾아 웹툰을 훌훌 넘기다 앞으로 다시 돌아와 그림 한 칸씩 천천히 들여다본다.

박성우 시인인 300편이 넘는 시들을 읽고 골라 담았다고 하는데 

실리지 않은 시들이 읽고 싶어 마음이 괜시리 초조해진다.


문득 외워서 적어볼 수 있는 시가 있을까 생각하다, 

허수경 시인의 절창이 그리워 시집을 들춰봤다가, 

그의 수필에 머무른다. <그대는 할 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


불안하다. 이런 날은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무엇 때문에 불안한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더 불안하다. 빨래를 할수도 없고 집안 청소를 할 수도 없고 책을 읽거나 텔레비전을보기나 하는 일마저 할 수가 없다. 마음속에서 뭉게뭉게 나오는 불안 구름 좀 봐, 왜 불안하지? 107

실은 나도 할말이 많다. 이렇게가 아니라 저렇게 살고 싶었다' 라든지, 그때 내 잘못이 아니라 네 잘못이었다' 라든지 하는 것들, 내가 내 얼굴을 사납게 노려본다. 그래, 좀더 잘하고 살 수도 있었겠지. 그런데, 꼭 그렇게 잘살아야 되겠니? 내가 나에게 말을 건다. 무엇 때문에 사납게 주름 잡힌 상판을 들고 그렇게 잘살아야 하겠니? 이치를 따져가며, 잘잘못을 물어가며...... 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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