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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만드는 소녀 - 제4회 NO. 1 마시멜로 픽션 수상작 ㅣ 마시멜로 픽션
이윤주 지음, 이지은 그림 / 고릴라박스(비룡소) / 2020년 6월
평점 :
절판
몇 주 전인가 비룡소 아동 도서를 우연히 추천받아 읽고 아이들은 멀쩡한데 혼자 통곡을 한 일이 있었다. 비룡소에서 출간되는 책들을 훨씬 더 오래 많이 읽어 오신 이웃분이 그 밖에도 좋은 책들이 정말 많다고 해주셔서 가끔 눈길을 주다가 우리 집 10대 두 명이 원하는 책을 읽게 되었다. 마시멜로 픽션 대상 수상작이라는데 무지해서 상의 성격은 잘 모르지만 일단 작품의 수준을 보장받은 느낌이다.
생각보다 내용은 파격적으로 시작한다. 몸속에 낯선 행성의 친구가 들어오면서 놀라운 사건들이 벌어진다. 외계인과 합체한 로나는 헤로인이 되어 지구를 차지하려는 악당에 맞선다. 배경은 아주 친숙한 동네와 학교이다.
지루한 어른인 나의 시선으로 포착한 교훈적인 내용은 외계인이 모두 적대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점과 함께 모은 힘으로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이다.
목차에서도 보이는 바와 같이 10대들에게 더욱 친숙할 듯한 유튜브, 톡, 스마트폰 앱, 단톡방이 등장한다. 우정을 쌓아가는 내용, 경쟁하고 사랑하는 내용, 꽤나 가슴 아픈 사연까지 골고루 어우러져 있다.
나 자신도 10였다면 두근거렸을 만한 지구수호프로젝트! 이에 더해 아이들의 맘을 조종해서 지구를 노린다는 설정의 와우톡 - 소원을 이루어 준다고 유혹하고, 세뇌도 시킨다. 충격적이게도 나쁜 소원을 빌었던 아이들은 죄책감으로 스스로 소멸하려고도 한다. SNS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수록 책에 대한 집중력도 높아질 듯한 구성이다.
순전한 아동 판타지물은 처음이지 않나 싶다. 그 점이 아이들뿐만 아니라 내게도 상당히 신선했고 아이들 또한 진심으로 놀라고 감탄하면서도 친근하기까지한 내용을 몰입해서 따라가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외계인이 반영하는 모습이 현실의 어른들이 보여주는 행태를 반영하나 싶게 이기심과 질투, 수치심을 모르는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어 혼자 조용히 부끄럽기도 했다.
버거운 문제를 앞에 두고 어른이라면 모른 체했을 수도 있지만, 아이들은 순수함과 집중력을 가진 존재답게 정면 돌파를 선택한다. 상상을 해보건대 나로서는 무시무시하고 적극적으로 말리고 싶은 결정이다. 아이들은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하고 최선의 해결책을 찾기 위해 갖은 애를 쓴다. 결국엔 다른 의지처를 찾지 않고 노력에 노력을 더한 결정이 기적이라는 결과를 낳게 된다.
로나, 네가 이 기적을 만든 거야.
동네 친구들을 사귈 기회가 없고 제도권 교육 기관에 참여해야만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아이들이 개학도 입학도 못하고 각자의 집에서 준자가격리를 당했다. 들뜬 마음으로 날짜를 꼽아 특별히 설레면 준비한 것들을 가방에 담고 나간 학교는 일주일에 하루, 혹은 홀짝수로 갈 수밖에 없다.
그래도 올 해 들어 처음 학교를 다녀 온 아이들의 얼굴이 빛나고 다음 날까지 목소리에 힘이 충전된 모습을 아프게 본다. 간단하고도 분명하게, “참 좋았다"고 한다. 그 말이 기뻐서 어른들은 서둘러 작은 파티를 마련했다. 그 모든 과정에 눈물이 솟구치다 마르다 했다. 이런 세상을 살게 하려던 것이 아닌데.
사람을 만나는 일, 낯선 이를 알아가는 일, 운이 좋게 마음이 맞는 친구를 사귀는 일. 이 모든 것이 실은 아이들을 성장시키고 기쁘게 하는 일이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는다.
현실에서는 모일수록 코로나라는 관리 불가능한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이 줄어들지만, 물리적 거리를 유지하는 일과 사람들 간의 거리를 줄이는 일은 전혀 다른 방식의 일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는 이 시기야말로 ‘함께’ 좌충우돌 동분서주하며 해결책을 찾고 기적을 찾아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애써야 하는 바로 그 시기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참 좋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날들을 이어가고 하루하루 더 늘리고 마침내 함께 성장해야만 하는 시기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