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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 만든 공간 - 새로운 생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0년 4월
평점 :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몇 해 전에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었는데, 이후에 방송에도 출연하시고 유튜브 강의 영상들도 찾아볼 수 있어서 매번 반갑고 재미있었다. 이 후 <어디서 살 것인가>는 순전히 제목에 마음이 울려서 한동안 이 문제로 마음을 졸이고 고민만 하다 결국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와 합치하는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사장된 기억으로 인해 내용이 사뭇 다를 것이라 짐작했지만 역시 읽어 보았다. 이전에 건축과 관련된 글을 읽은 적이 떠오르지 않은 것을 보니, 적어도 내게는 유현준 작가의 글이 건축 관련 독서 경험을 가능하게 한 유일한 계기인 듯하다.
아는 바 없이 그저 건축이면 디자인이나 시공과 관련된 분야로 한정해서 생각했는데, 덕분에 인문 건축학이라는 분야에 대해서 배우게 되었고, 단순히 나의 집과 건축물만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공간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해 볼 수 있었다. 개별 연구도 쉽지 않은데 통합 학문을 깊이 있게 연구하고 고민하시는 모습이 존경스럽고 그러한 생각들을 말로도 글로도 잘 전달될 수 있도록 풀어서 전해주시는 점이 늘 감사하다. 일상의 모든 것이 인문학적 사고의 대상이 되는 것이란 뒤늦은 배움도 얻었다.
모더니즘이란,
기술에 의해서 만들어진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과
문화 전반에 걸친 새로운 변혁을 말한다.
새로 출간되는 책 <공간이 만든 공간>이란 제목도 철학적이면서도 전혀 생각해볼 수 없었던 많은 주제들에 대해 새롭고도 인상적인 이야기들을 들려주실 거란 기대에 반가웠다. 우선 문화의 탄생과 기술혁명을 연결 지어 설명해주시는 부분을 읽으며 단어나 명칭에 대해 얼마나 한정적인 개념을 가지고 이해하고 있었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어릴 적 부모님과 함께 박람회, 엑스포 전시장을 구경 갔을 때에는 정말 아무런 사전 지식이 없었구나 새삼 깨닫게 된다. 사회의 모든 구조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문화 교류가 일어나고 새로운 문화가 변종 유전자처럼 탄생하고 진화한다는 설명이 이미지처럼 생생하게 느껴져서 이해를 돕는다. 공간이란 그렇게 마치 생물처럼 탄생하고 성장하고 이동하기도 하는 것이구나 싶어 건축적 요소에 집중해서 더 자세한 인문학적 문화적 교류에 대해서 배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욕심도 생긴다.
회화나 음악과는 다르게
건축만이 가지고 있는 소통의 도구는
비어 있는 공간인 보이드 공간이다.
시대적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건축양식들과 건축물들의 이름을 한 때는 외우기도 했는데, 건축은 실은 그 빈 공간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라는 발상이 재미있다. 건물은 건축 목적과 사용 용도에 따라 내부 공간이 다른 분위기를 갖도록 설계된다는 것을 유럽의 대성당들을 방문하면서 느끼는 수준이었는데, 심리적으로도 어떤 영향을 미치기는 하는구나,라고만 생각했지 대화를 해볼 생각은 못 했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몇 해 전부터 장애를 가진 사람들, 혹은 나이가 들면서 체력이 약해지는 사람들, 혹은 아이들을 모두를 위한 건축 디자인인 유니버셜 디자인에 관심을 갖고 자료들을 잠시 공부했다. 그러다보니 잘 알던 건물도 어떤 사람을 기준으로 삼아 만든 것인지 누구를 배제하는지가 절절하게 느껴져서 다르게 보였다. 그래서 적용된 디자인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 사회의 법과 정책과 의식의 내용과 수준을 알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현대 건물만이 아니라 통시적인 관점에서 역사 속에 건재 하는 건물과 건축을 이해하는 폭은 확연히 더 넓을 것이라 생각한다.
건축물은
그 시대의 지혜와 집단의 의지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결정체로,
그 시대와 그 사회를 대변한다
우리나라의 궁궐을 방문하면서 이전에 해 주신 이야기에서 배운 바가 있어서 건축물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안에서 바깥 경치를 보게 하는 공간으로서 건물을 이해하고 그렇게 완성된다는 점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산사를 방문할 때 가끔은 너무나 알록달록하게 새로 칠한 느낌이 강한 단청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느껴서인지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지 못했다. 단지 낡아 보이는 건물을 시주를 받아 새로 칠하고자 한 의도가 아니라 단청 자체가 자연이라는 풍경을 담은 액자의 프레임이다. 채도가 생경한 녹색과 자주빛 또한 풍경의 연속을 위한 장치였다니, 그러면서도 건축과 자연이 서로의 일부처럼 느껴지게 하는 배치였다니 놀랍다. 설명해주시는 내용을 이해하면서도 명도가 높은 색상의 단청이 자연과 건축의 경계를 명확히 하는 동시에 일부로 여겨지게 하는 중의적 기능에 어리둥절하고 감탄이 나온다. 또한 인간이 만든 공간 내부에 있지만 거기에 갇히지 않고 바깥을 보도록 하는, 그 사람의 1인칭 시점을 상상하고 판단한 디자인이라니. 제대로 배울 기회가 있을까 싶긴 하지만 당대의 인간과과 세계관, 건축철학을 더 배워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이집트 문자 → 시나이 문자 → 페니키아 문자 → 그리스 식 알파벳 → 라틴 알파벳순으로
변천되어 내려왔다. 알파벳은 26개의 문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의 알파벳은 변화되지 않는다.
한자의 또 다른 특징은 알파벳의 경우 모든 글자가 한 방향으로 나열 되는 반면, 한자는 글자가 상하좌우 어느 쪽으로도 덧붙을 수 있는 여러 가지 방향성을 가진다는 점이다. 위의 예에 나오듯이 ‘一’자는 ‘木’자 위 에 붙기도 하고 때로는 아래에 붙기도 한다. 그 외의 다른 한자들 역시 왼쪽, 오른쪽, 위, 아래 복합적으로 붙어서 새로운 의미의 글자를 만들어 낸다.
다시 말해서 한자는 자유로운 성장 패턴을 띠게 되는데, 이와 같은 성격은 동양의 건축 평면에서도 나타난다.
한글도 알파벳도 한 번도 문자 자체의 디자인과 형성 원리를 건축의 관점에서 생각해보지 못했기에, 관련 내용 또한 눈이 번쩍 뜨이는 듯하다. 한자가 자연의 모습을 본 떠 만든 그림과도 같은 글자들이 있으니, 거기에 의미와 철학과 세계관이 합쳐져서 그런 디자인과 활용이 가능한 것이었나 보다. 도산서원도 여러 번 방문했는데, 걸어가며 보이는 시선과 공간만 볼 줄 알았지, 이렇게 고공 관찰하듯 디자인 전체를 살펴볼 생각은 전혀 못했다.
그에 대비되는 서양 건축물의 좌우대칭과 일방향성을 지니는 디자인이 일직선으로 달리는 것처럼 역동적이면서 단정하고 깔끔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 글을 읽고 나니 건축 주체인 인간의 의도가 주변 환경과 어울림 없이 돋보이게 구별되게 하는 방식이었다.
이집트는 같은 스타일의 건축과 미술이
수천 년 동안 계속해서 반복되어 만들어지고 그려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서양 건축과 미술에서는 황금 분할의 역할이 큰 반면,
동양 건축과 미술에서는
만들어진 구조물보다 빈 공간 혹은 여백이 더 중요하게 취급되어 왔다.
자연과학을 전공한 지라 황금분할이나 수학적 표현들이 아름답고 익숙하다고 느꼈는데, 이것을 회화의 여백과 건축물의 공간이라는 주제로 다시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지니 그 차이가 분명하고 완연히 다른 느낌을 가지게 된다.
건축물 내에서 생활하는 이들의 외부를 향한 시선을 상상하여 디자인했듯이, 동양의 여백과 풍경을 향한 시선의 확장은 확실히 우리의 시선이 머물 수 있는 거리와 공간을 무한히 넓혀주는 역할을 하게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흥미로운 내용들을 풀어 놓는 방식들이 마치 신선한 공기가 계속해서 유입되는 공간처럼 시원한 기분이 든다. 건축(관련 철학)은 재미난 것이었다.
픽처레스크 정원 디자인은 서양 문화에 있어서 경직된 기하학에서 탈피하여 상대성에 가치를 두는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점이 된 아주 중요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내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외부의 색다른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문화권이
새로운 변종을 만들어 내게 되고,
그것이 시간이 지나면 시대를 이끄는 매력적인 문화가 된다는 것이다.
시각과 관점의 변화, 그리고 세상과의 새로운 관계 맺음과 인식의 변화, 철학 이론에서의 의식의 변화, 이 모든 것이 모두 건축으로서의 공간의 탄생과 성장과 변이로 나아간다는 점, 그리고 마침내 새로운 문화로 구성된다는 내용을 감탄과 경이로 읽었다.
또한 대학원에서 서양철학을 전공하며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는 순수이성비판을 애써서 읽었는데, 지나고 나니 배울 기회가 있었던 점도 이렇게 다시 전혀 새로운 분야와 융합되는 내용으로 만날 수 있다는 점이 모두 기쁘다. 순수이성비판이 세상과 자아를 하나로 보는 일원론적 시각으로의 관점 전환을 보여준다는 점을 기회가 되면 동기들과 교수님과 함께 얘기를 나눠보고 싶다. 건축학만이 아니라 인문학 전반을 도저하게 흐르며 살피는 귀중한 출판물이 <공간이 만든 공간>이다.
안팎의 경계가 모호한 동양에서는
철학자의 생각도 ‘구분’보다는 ‘융합’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북유럽과 북부독일 지방을 방문했을 때 지붕의 각도가 상당히 큰 것을 보고 건축의 의도를 물어 보았더니 강설량이 많아서 눈 무게로 집이 무너지지 않게 각도를 그렇게 잡는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난다. 그저 합리적인 방식이라고 생각했는데, 단순히 강설량 하나만이 아니라 다른 지역의 다른 건축 디자인들도 강수량, 일조량, 바람, 기후변화 등에 대해 인간이 생각하고 적응하고 대응하는 방식을 드러낸 것이었다.
기후, 농사법, 공간의 성격 그리고 이를 통해서 만들어진 생각. 이 네 가지가 필요로 따라 방향성을 달리하며 오랜 세월 영향을 주고받아 아름답고 고유한 문화의 특징으로 구현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다. 덕분에 앞으로는 사진이든 실사이든 단일 건축물만이 아니라 환경과 문화로 이어지는 시각과 사고로 더 깊이 바라보고 감상할 수 있을 듯하다.
또한 ‘이종교배’라고 표현하신 다른 분야들 간의 합종의 한계가 정말 없구나,라고 느껴질 만한 내용이 담겨 있다. 완전히 문외한인 분야의 새로운 이야기를 알게 되어서 무척 놀랍고 흥미로웠다. 3D 프린터로 건축 자재들 정도를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30년 가까운 과거에 이미 디자인 자체를 새롭게 창조하는 수준이었다는 점이 인상 깊다.
다만 상상과 생각을 디자인으로 고안하는 데까지는 나아갔지만 시공 기술의 속도와 맞지 않아 현실화되지 못한 것은 안타깝다. 예전에 바르셀로나의 가우디 건축을 보고 직선이 없는 공간이 주는 생경하면서도 몽환적인 느낌이 낯설지만 좋다고 느꼈는데, 언젠가 앞으로는 곡선과 직선의 한계 없이도 디자인과 시공 기술이 발맞추어 탄생하는 공간들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단 기대가 생긴다. 주체자의 생각과 건축과 다른 분야의 기술들도 끊임없이 만나고 상호 변화하여 그 시대와 사회를 표현하는 문화로 변모할 수 있으리란 기대와 상상을 높여주는 새로운 시각을 얻게 되었다.
<공간이 만든 공간>을 읽기 전에는 인칭에 따른 관점이란 단순히 건물에 들어가서 사용하는 사용자들이 용도에 맞는 방식으로 공간을 분할하고 활용하는 내부 공간을 보는 시선만을 생각했다. 언제나 한정된 공간 속에 미치는 거리만이 유의미할 것이라 생각하고 내부 공간의 높이와 넓이 색감과 질감이 사용 시간에 따라 사용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그런 생각을 가끔 했다. 덕분에 이제는 1인칭 관찰자의 시선이 건물 밖으로 확장되는 부분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고 주변 환경과 풍경에 어떠한 영향을 받게 되는지 혹은 주게 되는지 둘 사이의 어울림이란 어떻게 구분되면서도 연장되는지 그런 부분들도 조금 보일 것 같다.
애초에 다르다고 해서 이종교배나 혼용이 불가능한 분야들이 없다는 생각도 든다. 그야말로 사람이 생각하는 모든 것이 건축이 될 수 있고 그러한 건축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게 되니 이전과는 또 다른 시각과 관점으로 세상을 보게 되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재미있게 읽느라 즐거웠지만 정리하다보니 쉽지 않은 텍스트임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