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꾸고 싶은가 제도를 바꿔라
강효백 지음 / 지식과감성#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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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이 접해서 누군가에겐 지긋지긋할 수도 있는 문장을 다시 떠올린다.

 

The Personal is Political.

Carol Hanisch

 

기억이 흐릿할 만큼 오래 전에 이 제목으로 쓰인 논문을 읽었는데당시에는 공적 영역에서 다루지 않는다고 배제된 사적인 상황 역시 공론화시켜야 한다는 내용이 중심이었다고 기억에 남아 있다특히나 사생활이라는 명칭으로 관리되지도 처벌되지도 예방되지도 않는 가정폭력의 문제들은 그때도 그렇고 현재에도 진행되고 개선되어야할 대상이다.

 

텍스트에 집중한 이런 해석 이외에도 나는 살아가면서 정치적이지 않은 것은 아무 것도 없구나하는 깨달음을 얻었다살아가는 일의 모든 면면이 정치적 결정의 결과이다한편으로는 그럼 개인의 노력만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별로 없겠구나 기운이 빠질 수도 있지만다른 한편으로는 정치로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신정이 아닌 다음에야 사람이 하는 정치를 주권자의 합의가 모이면 바꾸지 못할 이유도 없다.

 

그런 세세하고 섬세한 삶의 일면들에 대해 고민하고 바른 정치를 위해 입안 의견을 내고 법안을 만드는 일은 사실 미디어에 노출되는 일이 거의 적다그리고 우리는 미디어 노출 빈도로 중요도를 결정하는 거의 무의식적인 습관이 있어서 실제로 생활밀착하는 법안들에 대해서는 찾아보거나 관심을 가지는 일이 거의 없다나도 마찬가지이다당면한 일내 이해관계와 만난 조항들만 건별로 겨우 뒤적여보는 수준이다.

 

그런 와중에, 2016년 대통령 탄핵이라는 거대한 사건을 경험하고 국정농단이라는 말을 강제학습했다권력을 위임하는 대의제와 선출직에 대해 국민으로서 시민으로서 관심과 감시를 잊으면 이런 꼴을 봐야하나라는 자각을 이토록 자극적으로 배운 일은 처음이었다.

 

온갖 비본질적인 소란스러움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중에국정농단보다 내게는 더욱 충격적인 사법농단 소식을 들었다선출직도 아닌 자들이 공적직업윤리가 없는 자들이 마피아처럼 공고한 카르텔을 이루어서 조직보신주의와 출세이기주의를 위해 그토록 열정적으로 불법과 탈법을 도모한 것만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시행해왔다는 사실.

 

사법체계는 그야말로 특혜도 자산권력도 없는 이들이 마지막으로 기댈 곳이 되어주는 사회시스템이어야 한다도덕보다 기대치를 훨씬 낮춘 기준으로 마지노선 위에서 절대 하지 말아야할 일을 알려주고 바로잡는 일이다. 그 말은 어려운 형편에 있는 이를 적극적으로 돕지 않았다고 법적 처벌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윤리보다 훨씬 낮춘 기준이다. 우리가 윤리적 비난을 가할 수 있는 일 중에는 법적 처벌이 가능하지 않은 일들이 많다. 나처럼 적당히 게으르게 사는 인간은 윤리적 기준은 높지 않지만 그래도 하지 말아야 할 일은 무엇인지가 판단과 행동의 기준이다그런데!

 

최초로 대법원장 출신이 기소되는 애초에 직에 걸맞는 인물이었는지도 신뢰할 수 없지만 낯뜨겁고 치욕스런 역사를 쓰는 일이 불가역적으로 발생했고, 이후 혼돈의 비바람이 가라앉고 제자리를 잡아가리라 기다렸지만저질 드라마도 아닌데 거북할 정도로 노골적인 행태들 이후에도 이어져갔다사법개혁의 여지와 희망은 어디에 누구에게 있는 건지 깜깜하기만 하다벌써 수차례 뼈를 깎은 탓에 더 이상 깎을 뼈가 없는 것인지 자체 개혁은 실종된 상태다작은 이익도 아니고 수도승도 아닌 이들이 끈질기게 버티기만 하면 앞으로도 공고한 이익을 스스로 포기할 리는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

 

내가 사법체계와 조직에 원한과 원망이 있어 이런 입장이 된 것은 아니다임명 이후 거의 살인적인 업무량을 견디며 최선을 다해 직무를 다하는 그런 검사가 있고 금수저가 아닌 탓에직업과 재산을 거래하는 결혼을 하지 않았기에, 아직 전세를 사는 검사 지인도 있다 - , 출세와 상관없는 한직을 마다하지 않고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하고 피의자와 피해자의 이후 삶을 염려하는 그런 판사가 있다는 것 역시 알고 있다 어릴 적에 이후 판사가 된 당시에는 야학을 하던 대학생 친척 언니를 따라 다녔다이런 개인적 이야기를 하는 것은 무슨 근거로 얘기를 하냐는 비난을 피해보고자 함이다 -. 개인적으로 아는 분들 말고도 말도 안 되는 강의료를 마다 않고 요청 받으면 시민강좌를 꾸준히 해주시는 분들장애인 단체의 일에 가장 먼저 달려와 주시는 그런 법조인 분들도 계시다.

 

그래서 이 책을 받아 들었을 때 처음 생각은 1장 공수처 관련 내용을 집중해서 읽고 제대로 배워서 입장을 정리해 보고 싶었다. 소란스러운 소동에 등장하는 내용 정도밖에 모르고 솔직히 잘 알고 싶지도 않았다. 다행이 아주 쉽게 써 주신 덕에 책의 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말끔하게 기초 지식이 정리된다그런데 문제는 온라인상에서 찾아본 의견들이 너무나 혼란스럽다는 점이다처음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일에 의견 충돌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지만어째서 이토록 증오에 찬 막말과 욕설이 가득한 것일까무슨 일인지 판단이 도저히 안 되고 어리둥절할 따름이다다만 이들이 폐지를 주우며 삼성그룹을 걱정하는 그런 입장은 아니기만을 바란다그런 장면을 목격하는 일은 너무나 마음이 아프다부디 이들은 법률적 특혜와 탈법권 권력을 누리며 승승장구하는 분들이길 진심으로 바란다그렇다면 이렇듯 격한 반응 역시 온전히 이해가능하다.



꼭 필요한 개혁의 요구에 시의적절하게 저자가 시대적 소명의식을 담아 실체적인 진실과 제도개혁을 위해 공들여 적은 내용들을 통해 배우고 이해하여 전체적인 조망을 본 듯하다. 소개하지 않은 2장은 못지 않게 중요한 [개헌] 관련 내용이다. 누군가 함께 읽은 다른 분들이 개헌 내용 중심의 서평을 올려 주시면 참 좋겠다.


총선 이후 아직 정비되지 못한 정치권, 20대 국회활동을 업무 실적으로 평가하면 해고해야 마땅할 이들이 어떤 모습으로 일하게 될지 일단은 기대해 보려한다. 이제껏 그래왔듯 다른 대안이 없기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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