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원 삼대
황석영 지음 / 창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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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호는 잠자리에서 되도록 먼 곳인 원형 통로의 반대편 구석에 용변 장소를 정해두었다처음에는 난간을 잡고 시도해보았지만상체가 앞으로 쏠렸다쭈그리고 앉은 자세를 유지하려면 엄지발가락에 힘을 주어야 했다그래야만 앞으로 쏠리거나 뒤로 자빠지지 않을 수 있었다.

 

작년부터 연재된 글을 일주일에 두 번 빠지지 않고 읽었다. 한 여름의 어느 날 땀이 차는 것을 느끼면서도 자리에 붙어 반복해서 읽던 그 시간이 후각처럼 생생하게 떠오른다마치 오래 기다린 누군가를 비로소 소개받는 것처럼 출간 소식이 반갑다. 100년에 이르는 세월 동안 한 집안이 겪는 시간을 현대사에 녹여 그려내는 시공간적 배경을 담은 이 글은 나보다 부모님이 더욱 반갑고 흥미롭게 읽으셨다. 현재는 낭만과 편리로 대표되는 이동수단인 ‘철도’를 상징물로 삼아 작가는 식민지 시대의 산업 착취에 대해 역사서 못지 않은 설명과 설득을 탄탄하고 구체적으로 이어나간다. 

 

철도는 조선 백성들이 피와 눈물로 맹글어진 거다.“



한일합방 이전 일본 제국주의는 경인선과 경부선을 이미 개통하고중국 진출을 위해 호남선과 압록간 철교를 개통한다그 와중에 조선인들은 철도 건설을 위해 주변 부지를 수탈당했고덧밭조상의 무덤까지 헐값에 강매당한다친일파가 운영하던 토건회사들은 일본인들이 차지했으며더 나아가 농가에서는 소와 말닭과 돼지들을 강제로 탈취 당하고 장정들은 강제 동원된다농어촌 사회는 붕괴되고 나라를 읽고 터전과 생산수단마저 빼앗긴 이들은 제대로된 저항을 할 여유도 없이 삶의 방편을 마련하고 생존하느라 온갖 발버둥을 쳐야만 했다이렇게 수백만명의 삶을 망치며 건설된 철도는 아이러니하게 누군가의 기회가 되었고이런 산업 구조는 해방 후 산업화 과정에서 반복된다. 이 때 도시로 모인 이들은 도시 노동자가 되어 위장 파산불법 해고일상적인 강제 노동만연한 폭력에 시달리며 살아가게 된다.

 

소설의 시작이 어째서 25년 간 공장노동자로 일하다 해고된 이진오가 하늘도 아니고 딸도 아닌사람이 거처하는 공간이 아닌” 곳에서 100일 넘게 농성을 벌이고 용변을 처리하는 방법을 고심하는 장면이 등장하는가는 이런 작가의 역사적 추적에 의한 구성이다개별적인 모습은 다양해도 우리가 삶아 온 삶의 양상이 이런 구조 속에서 필연적으로 태어난 것이라면 굴뚝 농성의 장면과 우리 삶의 모습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나 싶다.

 

코로나 시절을 견디며 다른 이슈들은 해결되었는지 아닌지 잘 관심이 가지 않기도 했고 노출되지 않는 상황들을 애써 찾아가며 알아보려는 노력도 없었다그러나 코로나 이전부터 지금까지어쩌면 앞으로도 한동안 길 위에 선 이들과 탑 위에 올라간 이들은 사회와 격리되어 지치도록 이야기를 들어 보라며 견디고 있을 것이다.

 

보이지 않지만 막강한 자본주의(와 결탁한 다른 권력들)의 힘이 작용하여 진작 삶이 멈추고 사회와 격리되어 철탑으로 오른 이들과신종 바이러스에 휘둘려 자발적 준자가격리를 하며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는 우리들의 살아가는 모습이 겹치기도 하고 갈라지기도 하는 느낌이다만약 우리가 일상을 결국 회복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고세계 경제가 작동 방식을 바꾸어 결국엔 생존조차 보장받지 못하게 되면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 존재가 된 우리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불안과 함께 차오르는 생각에 문득 문득 위가 비어 긁히는 느낌이 드는 듯해 초조한 기분으로 읽기도 했다.

 

이 글을 읽은 이들은 이진오가 왜 굴뚝에 올라가야 했는지 대답을 찾을 수 있을까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함께 읽은 독자들이 자신의 위치에서 찾은 질문과 답들이 궁금하다.

 

부침이 심한 근현대사를 살고 있지만어쨌든 나는 국적을 가지고 태어난 세대라정부의 부재와 치열한 독립운동을 글로 배울 수밖에 없다어느 덧 정부수립 100년이 넘었지만제대로 마무리 되지 못한 일들을 제대로 찾아내면 감당하기 힘들 만큼 산재해 있을 듯하다당사자들은 물론 국내외적으로 복잡한 이해관계가 있어 바로바로 해결될 일은 드물 것이다그래도 피해자들이 분명이 존재한다는 것은 잊지 말고가능한 근현대사에 대한 보다 정확하고 깊이 있는 이해는 기회가 있는 대로 열심히 배우고 생각해보면 좋겠다이는 현재 우리의 위치를 확인하는 데에도 꼭 필요한 일이다.


이것은 유년기의 추억이 깃든 내 고향의 이야기이며

동시대 노동자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는 이 소설을 한국문학의 비워진 부분에 채워넣으면서

한국 노동자들에게 헌정하려 한다.


뒤돌아보면 까마득하게도 느껴지는 세월을 작가는 글을 쓰고 나는 읽어 왔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황석영의 신간 소식은 언제나 반갑고 기대로 가득하다적어도 이 작가는 자기복제를 하지 않는다세세하고 치밀한 전개 방식에도 언제나 유쾌하고 시원한 퉁찰들이 빠지지 않고 인식과 관심의 지평이 마치 친한 친구들의 이야기를 모아 놓은 것처럼 현실감이 있지만 사회와 역사의 무대에서 내려 온 적도 없다혹자들은 요즘은 대서사적인 장편소설은 경향이 아니라고 하지만나는 언제나 서사 장편이 반갑다도전과 배움과 먹먹한 감동을 받을 결연한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되는 그 기분이 좋다시작부터 극적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고 치밀하게 연결되는 장면들이 좋다연재가제본정식 출판 본까지 시간을 따라가며 함께 할 수 있어 기쁘다.

 

이재유라는 이름은 몇 년 뒤 시문의 일면을 가즉 채우며 체포 탈출 잠행 지명수배’ 등의 머리글자와 함께 조선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들었고그는 체포되어 오랜 세월 구금되었다중략용산에서 접촉하던 사람은 이이철과 종씨이자 일본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인텔리로 나중에 서대문형무소와 예심 재판정에서 만나게 되었지만 그것도 수년 뒤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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