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난 사람
우치다테 마키코 지음, 박승애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7년 10월
평점 :
절판


퇴직하신 부모님의 모습이 다시 떠오르는 책이어서 당시엔 미처 헤아리지 못한 심정을 상상해보며 읽었다. 어머니는 몹시 즐겁고 행복하게 바로 자신의 영역을 바꾸고 신나하셨는데 아버지는 그렇지 못하셨다. 특히 기억이 나는 장면이 오랜 공직생활을 마치신 아버지께서 전혀 안 보시던 텔레비전 드라마를 거의 몽땅 정주행 하시더니몇 달 후 시청 소감을 발표하신 장면이다. “정말 나쁜 인간들이 어떻게 하면 남을 괴롭히나 연구하는 내용이 많더라볼 게 못된다.”

 

드라마를 엄청 사랑하는 가족이 없었기에 대단한 반발은 없었지만다소 박한 평가라는 생각은 들었고 재미있기도 했다다소 특이하게 우리 집 가족들은 중독에 면역력이 있는 지 딱히 고착된 중독을 보이는 대상이 없이 산다열정과 몰입 능력이 부족하거나 세상 심심하게 사는 방식이라고도 볼 수 있다담배미디어도박게임 기타 등등가끔 생각나면 맛있게 먹을 음식 메뉴처럼 즐기는 것들은 있지만 누구도 집착과 애착과 의존성을 보이지는 않는다그래서 아마 그런 이유로 괴로워하는 이들에 대한 이해가 아주 부족한 이들일 수도 있다.

 

어쨌든 한국 드라마에 충격을 받고 시청을 중단하신 아버지는 그 후 여러 가지 새로운 취미나 모임을 시도하시는 듯 보였으나크게 좋아하시거나 기뻐하실 일을 찾지는 못하신 듯하다젊은 시절에 시작해서 힘껏 노력하고 큰 실패 없이 일종의 성공처럼 직장생활을 마치기까지 그 세월이 가장 길기도 하고 보람 있기도 하고 의미가 크셨을 테니갑자기 그런 일상이 사라진 나날들에 적응하기가 누구라도 쉽지는 않으셨을 것이다.

 

지금에 와서야 후회되는 점은 그때 지내시기 어떠시냐고 진심을 담아 여쭤보지 못한 점이다상실허무이 책에서 묘사된 것처럼 어쩌면 생전장례식과 같은 기분이 들 수도 있었을 터인데.

 

이 책의 주인공은 이제 51세이다일본의 상황을 정확히는 모르지만이 나이면 퇴직이라기 보다는 해고에 가까운 느낌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더구나 가장 노력하고 가장 유능한 사람이 가장 책임 있는 자리에 임명되지 못하고 조직 사회에서 밀려나다 퇴직한 사례여서 서글프다이런 사례는 그야말로 열심히 살아가는 모든 이들과 젊은이들을 미리 좌절시키는 구조하고 생각한다.

 

이런 심정 속에서도 주인공처럼 자신의 억울함보다 가족 생각이 먼저 든다면 참 선하고 좋은 분이란 생각이 들었다가부장제를 찬미하려는 의도는 아니지만주인공이 가족에게 능력이 닿는 한 최고로 잘해 주고 싶다는 마음은 진심이라 믿는다굳이 남성 가장이 아니더라도 지켜야할 가족과 일상이 있다면그 모두를 평온하고 편안하게 이어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는 정말로 피해갈 수 없는 깨달음이다나는 아직도 나 하나 책임지는 일도 벅차서 허덕인다가족의 지속적인 안전한 울타리가 되어 주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고 축하받기에 충분한 성공이다.

 

다만 다른 꿈이 있고 다른 일이 하고 싶었다면 그것만으로는 마음이 다 채워지지 않았을 듯 해서 안타깝고 아프다부디 주어진 시간을 기회이자 축복이라 생각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즐거운 일 행복할 일을 찾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물론 퇴직한 다음 날혹은 실직한 다음 날의 멍할 정도로 한가한 상태가 바쁘게 살던 이들에게 얼마나 난감한 일인지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더구나 일말고는 다른 것에 관심을 두지 않고 살다가 갑자기 하고 싶은 일을 하세요,라고 아무리 격려한다고 해서 가능할 리가 없다는 것도 안다.

 

그래도 당신은우리는 끝난 사람들이 아니다시계가 움직인다는 것은 내 시간 역시 여전히 움직인다는 것이고 아무리 이상하고 불필요한 시도라 하더라도 뭐든지 시도해도 뭐랄 사람들이 없는 새로운 날들이 이어지는 것이다나 역시 휴직을 일 년하는 동안 바쁘게 살던 버릇을 어쩌지 못해 놀러 다니고 쉬기는커녕 공부하고 자격증 시험을 보고 강의를 들으며 시간을 채우기 바빴다그래도 괜찮다뭐든 놓치지 말고 보고 듣고 경험하고 그래서 새로운 자신과 새로운 시간을 반갑게 꼭 만나기를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다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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